말·넋·삶 65 건너뛰기, 제자리뛰기, 멀리뛰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뛸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차근차근 한 발 두 발 떼면서 나아가지만, 어느 사람은 두 발이나 석 발을 한꺼번에 건너뛰면서 나아갑니다. 한 발씩 떼는 사람 눈길로 보자면, 저 사람은 나와 같이 한 발씩 떼지 않으니 ‘건너뛰기’를 하는 듯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한달음에 나아가는 사람 눈길로 보자면, 한 발씩 떼는 사람은 ‘제자리뛰기’를 하는 듯 느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휙휙 지나가려고 하는 건너뛰기라 한다면, 제대로 알 길이 없습니다.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되어 마치 나비처럼 훨훨 날면서 하는 건너뛰기라 한다면, 제대로 알면서 길을 갑니다.


  건너뛸 수 있는 사람은 가로지릅니다. 건너뛰지 못하는 사람은 가로지르지 못합니다. 건너뛰지 못하니 ‘높은 울타리’에 스스로 막혀서 이곳으로 고이거나 저곳으로 고입니다. 건너뛰는 사람한테는 울타리가 없으니 ‘높은 울타리’도 없고 ‘낮은 울타리’조차 없습니다. 언제나 건너뛰는 만큼, 고일 만한 웅덩이마저 없습니다. 이리하여, 이쪽과 저쪽 사이를 홀가분하게 가로지르면서 한결 너른 품으로 넉넉하게 삶을 지을 수 있습니다.


  건너뛰어서 가로지르는 사람은 넘나듭니다. 고이지 않고, 울타리가 없으니, 언제 어디에서나 넘나들 수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을 넘나들고, 오늘과 모레를 넘나듭니다. 거칠 것이 없고, 거리껴야 할 것이 없습니다. 막혀야 할 것이 없고, 멈추어야 할 것이 없습니다. 넘나들 수 있을 적에는 바람처럼 홀가분합니다. 바람처럼 홀가분하기에 어디에서나 언제나 산들산들 넘나듭니다.


  제자리뛰기를 하는 사람도 땀이 납니다. 아니, 제자리뛰기를 하는 사람은 땀이 납니다. 건너뛰는 사람은 땀이 나지 않습니다.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거나 날아가니 땀이 나지 않습니다. 바람을 가르지 못하고 제자리에 고여서 폴짝거리는 사람은 땀을 옴팡 흘리는데, 막상 땀은 흘리더라도 아무것을 이루지 않습니다. 제자리에서 뛰느라 제풀에 지치고, 제자리뛰기를 하느라 바빠 둘레를 살피지 못합니다. 업은 아기를 허둥지둥 다른 데에서 찾고야 맙니다.


  제자리뛰기에서 벗어나려고 멀리뛰기를 하려 합니다. 그동안 오래 고였으니 멀리 뛰쳐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멀리 뛰어야 할까요. 1미터를 뛰면 멀리 뛴 셈일까요. 100미터를 뛰면 멀리 뛴 셈일까요. 1.1미터를 뛰거나 99미터를 뛰면 어느 만큼 뛴 셈일까요.


  멀리뛰기를 한대서 건너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먼 곳까지 뛰기는 했으나, 울타리 안쪽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일 수 있어요. 멀리뛰기를 했다지만 우물에 스스로 갇힌 채 뛰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뛰려면 옷을 벗어야 합니다. 제대로 뛰려면 모든 껍데기를 벗고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뛰어서 모든 때와 곳과 울타리와 웅덩이를 가로지르거나 넘나들려 한다면, 모든 앙금을 털고 새로운 숨결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바람을 마시면서 새로운 넋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무턱대고 건너뛰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건너뛰면, 어디에서 내려앉아야 할는지 모릅니다. 홀가분하게 건너뛸 수 있어야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압니다.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아는 몸짓으로 홀가분하게 건너뛰어야, 어디에서 내려앉아 새로운 씨앗으로 뿌리를 내려 씩씩하게 자랄 나무가 될는지 똑바로 알아차립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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