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악수하는 법 삶의 시선 26
고선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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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9



풀 한 포기를 사랑하는 노래

― 꽃과 악수하는 법

 고선주 글

 삶이보이는창 펴냄, 2008.1.30.



  흰줄갈풀이 있습니다. 이 들풀이 우리 집 뒤꼍에서 넓게 자랍니다. 이 들풀이 왜 이곳에서 자라는지 잘 모릅니다. 먼 곳에서 씨앗이 날아와서 이곳에 내려앉았을 수 있고, 새가 풀씨를 먹고는 이곳에 똥을 누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뒤꼍은 무척 오래 빈터요 빈집이었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살던 사람이 심어서 길렀을 수 있습니다.


  흰줄갈풀은 곧고 길게 뻗는 잎에 흰줄이 생깁니다. 어릴 적부터 흰줄이 생기지는 않고, 차츰 키가 자라면서 흰줄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얼핏 보면 시드는 모습이지만, 가만히 보면 잎에 생기는 하얀 무늬입니다.


  그나저나 흰줄갈풀은 어디에 썼을까요? 댓잎으로 바구니를 짜듯이 흰줄갈풀로도 바구니를 짰을까요? 예부터 갈풀은 논을 갈 적에 뿌려서 땅힘을 북돋우는 거름으로 삼았다고 하니, 흰줄갈풀도 거름으로 삼는 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흰줄갈풀은 잎이 퍽 부드러우니, 집에서 소를 키우면서 소먹이로 쓸 수 있어요.



나무들이 생년월일, 연락처 없이도 / 어찌나 조화롭게 사계를 꾸려가는지, / 까마귀밥여름나무, 당단풍나무, 국수나무, 개암나무, / 굴참나무, 조릿대, 산철쭉, 소나무 / 모두 내게는 지인들이다 (나무들이 웃는다)



  먼 옛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이 땅에서는 어떤 풀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잡초’라는 한자말을 한겨레가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지난날에는 ‘김’이나 ‘지심’이라는 낱말만 썼습니다. ‘김’이나 ‘지심’은 어떤 풀을 가리키는가 하면, 사람이 손수 심은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는 풀(남새나 곡식)이 아닌 ‘저절로 싹이 터서 돋은 풀’을 가리킵니다. 김매기(지심매기)를 하는 까닭은 ‘남새나 곡식’을 더 알뜰히 돌보려는 뜻입니다. 뽑거나 베어서 없애려는 뜻으로 김매기를 하지 않습니다. 김매기를 해서 뽑거나 벤 풀은 언제나 짐승먹이로 삼았고, 잘 말려서 다시 흙한테 돌려 주어 땅힘을 북돋우는 데에 썼습니다. 김매기를 한 풀을 잘 말려서 흙바닥에 덮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풀이 다시 돋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김매기를 해서 말린 풀을 고랑마다 깔면, 저절로 ‘풀막이’가 되는 셈입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농약을 뿌리거나 비닐을 덮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는 흔히 ‘잡초’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시골에서 소를 기르는 분도 논밭을 갈려고 소를 기르지 않을 뿐더러, 고기소로 길러서 팔더라도 풀이 아닌 사료를 먹입니다. 시골 어디에서나 저절로 돋는 너른 풀은 이제 ‘풀’도 ‘들풀’도 ‘나물’도 ‘약초’도 ‘김’도 ‘지심’도 아닌 ‘잡초’일 뿐입니다.



꽃은 봄에 피지 않는다 / 십구 개월 된 딸아이 입에서 먼저 발화한다 // 한창 말하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 / 꽃, 꽃, 꽃 했더니 껏, 껏, 껏 한다 (꽃)



  고선주 님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삶이보이는창,2008)을 읽습니다. 고선주 님은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시를 쓴다고 합니다. 신문사 기자하고 시인이라는 이름은 얼핏 동떨어진 자리일 수 있지만, 시를 쓰는 마음으로 기사를 쓰고, 삶과 사람과 사회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면, 이 숨결은 언제나 고운 노래로 흐를 만하리라 봅니다.



라면 한 그릇 먹으러 그곳에 갈 때마다 / 할머니의 위태로운 날들과 대면한다 / 칠순이 되고도 식당일과 손자 육아까지 / 덤으로 얹어진 날들 / 식탁 하나 의제 네 개가 전부인 식당에는 / 할머니의 손때 묻은 것들 / 할머니와 같이 늙어 있다 (할머니 분식집)



  유월을 맞이한 시골은 밤꽃내음이 흐릅니다. 들과 숲을 밝히던 온갖 풀꽃과 나무꽃은 거의 저물면서 풀잎과 나뭇잎은 한껏 짙푸르게 물듭니다. 오월까지만 해도 노란 기운이 감돌던 감잎은 어느새 푸른 빛깔만 가득합니다. 뽕나무에서 오디가 익고, 벚나무에서 버찌가 익습니다. 유월에 피는 나무꽃은 유월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유월에 익는 나무알(나무 열매)은 유월에 싱그러운 숨결을 퍼뜨립니다.


  유월바람을 느끼면서 《꽃과 악수하는 법》을 새롭게 읽어 봅니다. 꽃하고 손을 맞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꽃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면 손을 맞잡을 만하겠지요. 꽃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꽃을 살뜰히 아끼고 너그러이 사랑할 줄 알아야겠지요. 꽃을 살뜰히 아끼거나 너그러이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커다란 꽃송이뿐 아니라 작은 들꽃도 곱게 바라보면서 돌보는 마음이 되어야겠지요.



2년이 흐른 지금, 학교는 그 어느 것도 되지 못한 채 버려졌다 학생들 웃음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금방이라도 넘어올 것 같은 교정에는 염치없는 잡풀들만 높이뛰기 시합을 하고 그간 마을의 오랜 전통처럼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교실바닥을 굴러다녔다 (폐교 가다)



  꽃하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무하고도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나무하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람은 숲에서 부는 바람하고도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꽃하고 손을 맞잡으니 꽃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습니다. 나무랑 바람하고 손을 맞잡으면 나무랑 바람이 우리한테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들어요.


  그리고, 꽃하고 손을 맞잡듯이 이웃사람하고 손을 맞잡습니다. 꽃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듯이 이웃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습니다. 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듯이 이웃사람한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기쁘게 돕고, 이웃사람한테 즐거운 일이 찾아오면 함께 웃습니다.


  꽃을 노래하면서 사람을 노래하고, 사람을 노래하면서 꽃을 노래합니다. 꽃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꽃을 사랑합니다.



나는 집 한 채 없다 / 살기는 살 뿐이지 / 어디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남의 집, 남의 회사, 남의 학교 다니는 / 나는 내 것이라곤 없지 / 딸과 아내와 살 집 한 칸 없다니 / 한참 잘못된 자본주의 아닌가  (두껍아, 새 집 줄게)



  2008년에 《꽃과 악수하는 법》을 선보인 고선주 님은 이무렵 아직 ‘내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내 집’을 장만하셨을까요? 곁님하고 아이랑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이루셨을까요?


  풀 한 포기를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시 한 줄을 쓰는 마음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곁님하고 아이랑 기쁘게 삶을 지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을는지 까마득하더라도, 들꽃이 들과 숲뿐 아니라 도시 한복판 골목길에서도 곱게 피어나서 맑게 웃듯이 아름다운 하루를 지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이 흐르는 마음으로 삶을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지구별 어느 곳이나 ‘내 보금자리’요 ‘내 쉼터’이며 ‘내 삶자리’입니다. 사랑이 흐르지 않는 마음이 되면 삶을 노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으리으리하게 커다란 집을 거느린다고 하더라도 노래 한 가락조차 못 부르는 가난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시를 써서 노래하는 사람은 ‘내 집이라고 하는 재산이 번듯하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구별을 온통 내 집으로 삼는 사랑으로 꿈꾸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4348.6.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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