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65. 멀리 가지 않아도 사진


  사진이 태어나는 자리는 언제나 ‘바로 이곳’입니다. 사진을 찍는 때는 늘 ‘바로 오늘 이때’입니다. 사진을 오랫동안 찍은 분이든, 사진을 이제 막 찍는 분이든, 사진은 언제나 ‘바로 이곳’에서 누구나 ‘바로 오늘 이때’에 찍는 줄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사진이 언제나 ‘바로 이곳’에서 태어난다면, 사진을 어디에서 찍어야 할까요? 사진을 찍으러 어디로 가야 할까요?

  사진은 참말 ‘바로 이곳’에서 찍습니다. 어디 먼 데까지 나들이를 가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먼 데까지 나들이를 갔으면, 나들이를 간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사진을 얻으려고 먼 데까지 나들이를 가야 할 까닭이 없되, 나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려고 먼 데까지 나들이를 으레 다닌다면, 바로 ‘내 사진’은 ‘내가 늘 머물면서 삶을 누리는 그곳’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을 찍기에 좋거나 알맞거나 멋진 ‘때’는 따로 없습니다. 내가 손에 사진기를 쥔 때가 바로 ‘사진을 찍을 때’입니다. 한낮이든 한밤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흐르면서 스물네 시간에 따라 스물네 가지 이야기가 있고, 한 시간은 예순 갈래로 나누는 이야기가 있으며, 예순 갈래는 다시 예순 갈래로 더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적에는 ‘이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르거나 가리거나 추립니다. 모든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고 사진만 찍어야 하니까, 참말 사진은 ‘삶을 즐겁게 누리는 하루 가운데 꼭 한 자락’을 뽑아서 찍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사진입니다. 멀리 가도 사진입니다. 여기에 있어도 사진입니다. 저기에 가도 사진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온누리 모든 것은 사진으로 찍을 만한 이야기요, 온누리 모든 사람은 사진을 아름답고 사랑스레 찍을 수 있는 작가요 예술가이며 ‘이야기님’입니다. 4348.6.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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