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책밭 가꾸기

30. 책을 읽어 마음을 가꾼다



  책은 마음을 살찌우려고 읽습니다. 그래서 책은 ‘마음밥’이라고도 합니다. 몸을 살찌우려면 즐겁게 밥을 지어서 맛나게 먹으면 됩니다.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또는 고기밥이든 풀밥이든,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면서 먹을 때에 몸을 살찌우는 밥, 이를테면 ‘몸밥’이 됩니다.


  그런데, 몸밥을 한 번 생각해 봐요. 잔칫밥을 차릴 적에 맛있는 몸밥일까요? 잔칫밥도 멋진 몸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꼭 잔칫밥이어야 몸을 살찌우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왜 그러한가 하면, 거북하거나 힘든 자리에 앉아서 잔칫밥을 받는다면 아무래도 제대로 먹기 어렵습니다. 바늘방석에 앉으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수 있어요.


  라면 한 그릇을 김치 한 조각하고 먹는다고 해서 몸을 못 살찌운다고 하지 않습니다. 고작 라면 한 그릇이어도 고마움을 온마음으로 느끼면서 먹으면 아주 기쁘게 기운을 낼 수 있어요.


  영양소를 고루 살펴서 밥을 먹기도 해야 하지만, 우리 몸은 영양소만으로 크지 않습니다. 영양소를 ‘다루거나 어루만지거나 보듬는 손길’이 ‘따사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스며들어야 비로소 몸을 튼튼하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희인 님이 쓴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호미,2013)는 여행책이자 사진책입니다. 인도양을 둘러싼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아본 이야기를 담으면서,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곱게 보여줍니다.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앞서를 헤아리자면, 그무렵에는 인도양으로 나들이를 가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마흔 나 쉰 해쯤 앞서를 헤아리자면, 그무렵에는 바다 건너 일본으로 나들이를 가는 사람조차 몹시 드물었어요.


  인도양 둘레에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는 퍽 가난합니다. 나라 살림살이는 여러모로 홀쭉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가난한 나라에서 사는 이웃사람은 웃을 일이 없을까요? 이 대목을 곰곰이 짚어 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기쁨이나 보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가난하지 않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기쁨이나 보람이 더 클까요, 아니면 외려 작을까요?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기에 더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저 여행을 자주 다닐 뿐입니다. 여행을 못 다닌다고 해서 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여행을 못 다닐 뿐입니다.


  마음이 넉넉할 때에 언제나 넉넉하게 아침을 열고 하루를 누립니다. 마음이 넉넉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메마르거나 쓸쓸하거나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야 맙니다. 마음이 따스할 때에 언제나 따스하게 이웃을 사귀고 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마음이 따스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날카롭거나 짜증스럽게 하루를 보내고야 말아요.


  “여행의 참맛은 꼭 이름난 유적이나 휴양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우연히 맞닥뜨린 소소한 풍경 속에 있는 게 아니랴 싶습니다(114쪽).” 같은 이야기처럼, 이름난 곳에 가 보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여행을 꼭 가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을 더 헤아린다면, 우리는 꼭 대학교에 가거나 유학을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꼭 학교를 마치거나 학원에 다녀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대학교를 안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학교에 가든 말든, 이에 앞서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하려는가?’를 먼저 제대로 바라보면서 깨우쳐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즐거울까 하는 대목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대학교에 가든 안 가든 내 삶은 어수선하거나 어지럽습니다. 오늘 내 보금자리에서 어떻게 살림을 꾸리거나 공부를 해야 기쁠까 하는 대목을 스스로 찾지 못한다면, 학원을 여러 곳 다니든 학원을 아예 안 다니든 내 생각을 튼튼하게 세우지 못합니다.


  마음을 살찌우려면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마음을 가꾸려면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밥을 지을 적에 어떤 마음이 되어 밥을 짓는지 가만히 살펴보셔요. 빙글빙글 웃고 노래하면서 밥을 지으실 적에 밥맛이 어떠한지 살펴보셔요. 부엌에서 춤까지 추면서 밥을 지으실 적에 밥맛이 어떠한지 살펴보셔요. 그리고, 잔뜩 찡그린 채 투덜거리면서 밥을 지으실 적에 밥맛이 어떠한지 살펴보셔요.


  우리는 어느 때에 밥을 맛있게 먹을까요? 우리는 어느 때에 밥 한 그릇이 참으로 고맙구나 하고 느낄까요?


  “버스를 타고 아누라다푸라를 떠나는데 숲 사이를 흐르는 냇물에서 사람들이 목욕을 즐기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61쪽).” 같은 이야기를 조용히 돌아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목욕탕에 가야 몸을 씻을 수 있다고 여기지만, 한국에서도 얼마 앞서까지 골짜기나 냇가에서 몸을 씻었습니다. 한겨레 옛집에는 ‘씻는 방(욕실)’이 따로 없어요. 마을마다 냇가가 있으니 냇가에 가서 씻어요. 또는 골짜기에 가서 조용히 씻어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거나 냇가에서 빨래를 하지요. 밥을 짓는 물도 냇가에 가서 긷거나 우물에서 풉니다. 이제는 집에서 물꼭지를 돌리면 물이 콸콸 흐르지만, 이렇게 살림을 꾸린 지 그야말로 얼마 안 된 우리 겨레 삶이에요.


  예부터 물 한 방울을 고이 아끼며 살았습니다. 집안에 물꼭지가 없기에, 누구나 으레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 다녔어요. 참말 물 한 방울을 허투루 쓸 수 없던 지난날입니다. 예부터 밥풀 한 톨을 함부로 흘리지 않고 밥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누구나 손수 논밭을 일구어 쌀을 얻어서 밥을 지었으니, 게다가 나무를 해서 아궁이에 불을 때어 솥에 밥을 지었으니, 밥풀 한 톨을 허투루 흘릴 수 없습니다.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지식을 쌓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식만 쌓으려고 책을 더 읽거나 자꾸 읽거나 많이 읽는다면, 내 마음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책은 빨리 읽어야 하지 않고 느리게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고전명작을 꼭 읽어야 하지 않고, 베스트셀러나 추천도서를 반드시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을 책은 그야말로 ‘마음밥’이 될 수 있는 ‘사랑스러운 한 권’이어야지 싶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짓는 밥일 때에 몸을 살찌우듯이, 기쁘게 춤추며 꿈꾸는 몸짓으로 읽는 책일 때에 그야말로 마음을 살찌웁니다. 어느 책을 우리 손에 쥐든 늘 밝게 웃으면서 활짝활짝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8.5.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