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책읽기
아이들이랑 곁님하고 이틀에 걸쳐서 퍽 오래 걸었다. 자동차가 안 다니는 길만 골라서 논둑길과 숲길을 걸었다. 이 길을 걷고 난 뒤 사흘에 걸쳐서 생각에 잠겨 본다. 어떤 길이 걸을 만한 길일까? 자동차가 많이 달린다면 아무래도 걷기에는 안 좋겠지. 그러나, 자동차 때문에 안 좋은 길이 되지는 않는다. 언제나 내 마음에 따라서 좋음과 싫음이 갈린다. 마음이 넉넉하거나 푸근하거나 사랑스러우면, 어떤 길을 걷든 즐거우면서 기쁘다. 마음이 안 넉넉하거나 안 푸근하거나 안 사랑스러우니, 좋은 길이라는 데를 걸어도 즐거움이나 기쁨이 안 솟기 마련이다.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잘 자라서 풀벌레와 개구리가 노래할 뿐 아니라, 풀내음과 나무내음과 꽃내음이 흐드러지는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이 아름다운 길은 누가 지었을까? 이 아름다운 길은 어떤 손길로 태어났을까?
바람이 어루만지고 해님과 흙과 빗물이 일군 숲길을 바라본다. 풀벌레와 개구리와 숲짐승이 골고루 얼크러지면서 함께 지은 숲길을 바라본다. 나는 마음 가득 기쁜 사랑을 담을 때에 기쁜 삶이 되고, 나와 이웃인 수많은 목숨붙이는 저마다 기쁘게 노래할 때에 아름다운 길, 이른바 ‘걷고 싶은 길’을 함께 짓는다.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