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04) 박빙의 1


누가 이기고 있는지 아는 것이 불가능했다. 박빙의 승부라는 것은 명백했다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276쪽


 박빙의 승부라는

→ 살얼음판이라는

→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 아슬아슬하게 겨룬다는

→ 가까스로 이기거나 진다는

 …



  운동경기나 선거 같은 자리에서 으레 쓰는 “박빙의 승부”입니다. 워낙 흔히 쓰는 말투이기도 하기 때문일 테지만, ‘박빙’이라는 낱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찾아볼 마음을 품는 사람은 매우 드물겠지요. 


  한자말 ‘박빙(薄氷)’은 ‘살얼음’을 뜻합니다. 다른 뜻이 없습니다. 한국말은 ‘살얼음’이요, 한자로 옮기면 ‘薄氷’이 될 뿐이며, 이 한자말에 ‘-의’를 붙인 말투로 “박빙의 승부”가 널리 퍼졌습니다.


  ‘승부(勝負)’라는 한자말은 “이기고 짐”을 뜻합니다. 다른 뜻이 없습니다. 한국말로는 “이기고 짐”이요, 이를 한자로 옮기니 ‘勝負’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사람이 “薄氷の勝負”처럼 쓰는 말투를 한국에서 한글로만 바꾸어 “박빙의 승부”로 적는다고 하겠습니다.


 살얼음판 같은 경기

 살 떨리는 경기

 아슬아슬한 경기

 조마조마한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

 땀나는 경기


  ‘살얼음’은 “살짝 언 얼음”을 뜻합니다. 살짝 언 얼음은 쉽게 깨지거나 갈라집니다. 냇물이 살짝 얼었다면, 이 얼음바닥을 함부로 디디면 안 됩니다. 얼음장이 와장창 무너지면서 빠질 테니까요.


  살얼음판을 걸을 때에는 아슬아슬하거나 조마조마합니다. 살이 떨린다고도 합니다. 아주 살몃살몃 걸어야 할 테고, 손에 땀이 줄줄 흐를 테지요.


  곰곰이 따진다면, ‘박빙’이나 ‘승부’ 같은 한자말을 쓰든 말든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낱말을 써야 한다면 써야 합니다. 그러나 더 따진다면, 한국말로 ‘살얼음’이 있고 ‘이기고 짐’이 있으면, 이 같은 한국말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굳이 한자말을 받아들이거나 일본 말투대로 “박빙의 승부”처럼 써야 하지 않습니다.


  영어를 아는 사람이 영어를 쓰기에 ‘표현의 다양성’이 되지 않습니다. 러시아말을 잘 아는 사람이 러시아말을 섞어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해도 ‘표현의 다양성’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일본 말투가 아닌 일본말을 섞어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해도 ‘표현의 다양성’이라 하지 않습니다.


  삶이 녹아난 말을 쓸 때에 서로서로 잘 알아듣습니다. 사랑을 담아 쉽고 바르면서 아름답게 말을 나눌 때에 서로서로 즐겁게 알아듣습니다. 요즈음은 “박빙의 승부”라 말해도 “아슬아슬한 한판”인 줄 알아차리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아이들은 이런 말투를 못 알아듣습니다. 무엇보다 ‘박빙’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어설프게 “박빙의 승부 = 아슬아슬한 한판”으로 알아듣기보다는, 처음부터 “아슬아슬한 한판”으로 써서,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즐겁게 알아들을 만한 말을 쓸 때에 아름답습니다.


 우리 팀이 박빙의 우위를 지켜 가고 있다

→ 우리 팀이 가까스로 앞선다

→ 우리 편이 살짝 앞선다

→ 우리 쪽이 아슬아슬하게 앞선다


  아슬아슬한 모습을 가리킬 적에는 “아슬아슬하게 앞선다”처럼 적어도 되고, “살짝 앞선다”나 “가까스로 앞선다”나 “아주 조금 앞선다”처럼 적어도 됩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한다”나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2.3.16.달/4348.4.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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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기는지 알 수 없었다. 틀림없이 아슬아슬하게 맞붙었으리라

누가 이기는지 알 수 없었다. 살얼음판임은 틀림없었다


“이기고 있는지”는 “이기는지”로 다듬고, “아는 것이 불가능(不可能)했다”는 “알 수 없었다”로 다듬습니다. ‘승부(勝負)’는 “이기고 짐”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말뜻 그대로 “이기고 짐”으로 손질해도 되는데, 바로 앞에서 “누가 이기는지”라고 나오니, 이 대목에서는 덜어도 됩니다. ‘명백(明白)했다’는 ‘틀림없었다’로 손봅니다.



박빙(薄氷)

1. = 살얼음

2. 근소한 차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박빙의 승부 / 우리 팀이 박빙의 우위를 지켜 가고 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40) 박빙의 2


6·4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박빙의 결과가 나왔고

《고성국·지승호-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철수와영희,2015) 10쪽


 박빙의 결과가 나왔고

→ 아슬아슬하게 나왔고

→ 손에 땀을 쥐게 했고

→ 엎치락뒤치락했고

 …



  선거를 했을 적에 어느 한쪽이 살짝 앞섰다는 뜻이라면 아슬아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슬아슬한 선거였으면 손에 땀을 쥐게 했겠지요. 엎치락뒤치락하는 선거였다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4348.4.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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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도 아슬아슬하게 나왔고


“-에도 불구(不拘)하고”는 “-가 있었어도”로 손질하고, “결과(結果)가 나왔고”는 “나왔고”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참사(慘事)’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뜻합니다. ‘비참(悲慘)’은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함”을 뜻합니다. 그러니, ‘참사’ 뜻풀이는 겹말입니다. 처음부터 “끔찍한 일”이나 “슬프고 끔찍한 일”이라고만 하면 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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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21 2015-04-24 21:04   좋아요 0 | URL
이북에서 쓰는 말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