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52 동그라미와 ‘있음·없음’



  한국에서는 ‘있다’고 할 적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없다’고 할 적에는 ‘점(·)’을 찍어요. ‘있음’은 ‘가득’을 가리키니 동그라미로 나타내며, 없음은 하나도 안 보이는 모습을 가리키니 씨앗처럼 생긴 점 하나를 톡 찍습니다. 어떻게 보면, ‘없음’은 “텅 빔”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말에서는 ‘없음’을 “텅 빔”으로는 여기지 않습니다. 한국말에서는 ‘죽음’을 “없어짐”이나 “사라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삶’도 늘 새걸음으로 나아간다고 여기는 한국말이고, ‘죽음’도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고 여기는 한국말입니다.


  이리하여, ‘없음’은 ‘밤·어둠’과 이어지기도 하는데, 한국말에서 밤과 어둠은 ‘새롭게 피어날 씨앗이 있음’이기도 합니다. 한자말로는 ‘가능성’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할 수 있음”과 “될 수 있음”이 ‘없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없음’을 나타내려 할 적에 점(·)을 찍어요. 없음은 씨앗이고, 씨앗은 “새로 피어날 수 있음”입니다.


  ‘있음’인 동그라미(○)는 ‘가득’이면서 ‘온’입니다. 오롯한 모습이요 옹근 삶입니다. 동그라미는 “모두 있는” 숨결이면서, 이러한 덩어리는 ‘또 다른 씨앗’입니다. 점(·)과 대면 커다란 씨앗이라고 할는지 모르나, 동그라미(○)도 고스란히 씨앗입니다. 그래서, ‘있음’인 ‘동그라미’는 ‘가시내(어머니)’를 나타내기도 하고, ‘없음’인 ‘점’은 ‘사내(아버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밤(어머니)과 낮(아버지)이 바뀐 모습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밤은 어머니요, 낮은 아버지인데, ‘없음’인 ‘씨앗’은 ‘어둠’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생각할 수 있다면 새로운 한 가지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밤은 어머니요, 낮은 아버지이지만, 사람한테는 두 가지 기운이 함께 있습니다. 밤이 더 두드러지는 어머니이지만, 어머니한테도 낮은 늘 함께 있고, 낮이 더 두드러지는 아버지이지만, 아버지한테도 밤은 늘 함께 있습니다. 두 가지 다른 씨앗(○와 ·)은 따로 있으면 아무것도 못 낳는 씨앗일 뿐이지만, 두 가지 다른 씨앗이 서로 만나서 한몸과 한마음이 되면, 새로운 몸과 마음이 태어납니다. 새로운 몸과 마음이 태어나도록 하려면, 두 가지 다른 씨앗은 서로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밤은 낮을 받아들여야 하고, 낮은 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실마리가 ‘있음·없음’에서 드러납니다.


  한국말에서는 ‘있기’에 더 좋거나 낫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말에서는 ‘없기’에 더 나쁘거나 덜떨어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한국말에서는 ‘있음 = 없음’으로 여기고, ‘없음 = 있음’으로 여깁니다. 있기에 없고, 없기에 있다고 봅니다. 있다고 여기는 때에 곧바로 없어지고, 없다고 여기는 때에 곧바로 있습니다. 이를 중국에서는 ‘새옹지마’라는 한자말을 빌어서 나타내기도 합니다. 한국말에서는 ‘동그라미’로 이를 나타내고, ‘있고 없음’이라는 말로도 나타냅니다.


  동그라미는 ‘있음’이면서 ‘없음’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동그라미는 ‘온 것(모든 것)’이면서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씨앗인 점은 ‘없음’이면서 ‘있음’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씨앗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면서 ‘모든 것을 낳는 첫머리(실마리)’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줄 알았는데 없고, 없는 줄 알았는데 있습니다. 이리하여 흐릅니다. 물결은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물결은 앞으로 가는 줄 알았지만 앞으로 안 가고, 뒤로 가는 줄 알았으나 뒤로 안 갑니다. 늘 그 자리(제자리)에 있습니다. ‘늘 그 자리(제자리)에서 움직이면서 있고 없는’ 모습이 바로 물결이요, 이러한 물결처럼 하늘에서 흐르는 바람결이요, 하늘에서 흐르는 바람결을 숨으로 들이켜서 우리 몸에 담으면 숨결입니다. 삶이 흐를 수 있는 까닭은 ‘있고 없음’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기에 고이 흐르면서 ‘사랑’으로 깨어납니다. 4348.3.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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