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어린이 눈에
작은아이가 낮잠에서 깨어나지 않아서 큰아이하고 둘이서 읍내마실을 다녀온다. 큰아이는 읍내마실을 하는 동안 자꾸 ‘어른 꾸중’을 한다. 길바닥에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으냐고 묻는다. 길을 가면서 내내 여기에 이 쓰레기 저기에 저 쓰레기가 넘친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기다릴 적에는 어떤 아저씨가 침을 뱉거나 껌을 뱉는다고 나무란다. 그래서 큰아이한테 묻는다. “벼리는 어떻게 하기를 바라?” “응, 사람들이 쓰레기를 안 버리면 좋겠어.” 우리 집 여덟 살 어린이한테 차마 말을 하지 못하지만, 요즈음 둘레를 살펴보면 여덟 살 어린이도 여섯 살 어린이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 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어른들이 으레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니까. 게다가 우리 문명사회는 새 물건을 자꾸 사서 쓰고 버리도록 얼거리를 짠다. 버리고 다시 버려야 하는 물질문명이고 현대문명이다. 4348.4.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