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542 : 운우지락
사람이 결혼을 하면, 서로 이러저러한 일을 해 주기도 하지만, 운우지락을 나누기도 하는 거잖아
《마저리 쇼스탁/유나영 옮김-니사》(삼인,2008) 461쪽
운우지락을 나누기도 하는 거잖아
→ 기쁨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잖아
→ 살을 섞기도 하잖아
→ 사랑을 나누기도 하잖아
…
중국 옛이야기에서 따온 ‘운우지락’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낱말도 한국사람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쓰기는 쓰는데, 이런 낱말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글로 적어 놓는들,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밝힌들, 아니면 처음부터 한자로만 적는들, 말뜻을 또렷하게 헤아리는 분은 얼마나 될는지요.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풀이를 보면 “남녀의 정교(情交)”가 ‘운우지락’이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정교’를 다시 찾아보면, “1. 매우 가깝게 사귐 2. 남녀의 연애나 성적인 교합”이라고 나옵니다.
따오기는 중국 옛일에서 따왔으되, 말뜻으로 살피면 한 마디로 ‘사랑’이거나 ‘살섞기’라는 소리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니 ‘사랑’을 나누는 셈이지만, 이를 ‘중국 옛일에서 빌어 온 중국말로 옷을 입혔을’ 뿐이라는 소리입니다.
부부간의 운우지락을 맛본
→ 부부 사이에 사랑을 맛본
→ 부부가 나누는 사랑을 맛본
→ 부부사랑을 맛본
→ 서로 살을 섞어 본
남녀 사이에 맺는 사랑이면 ‘남녀사랑’이라 하면 됩니다. 부부 사이 사랑이면 ‘부부사랑’이라 하면 됩니다. 다만, 이런 낱말들, ‘남녀사랑’이나 ‘부부사랑’ 같은 낱말은 아직 한국말사전에 안 실립니다. 이와 달리, ‘형제애’나 ‘부부애’ 같은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실립니다.
한국말사전에 실리건 안 실리건, 사람들은 ‘아이사랑’이나 ‘부모사랑’ 같은 낱말을 두루 씁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이와 같은 낱말을 싣든 말든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득 실어서 ‘책사랑’, ‘만화사랑’, ‘영화사랑’, ‘노래사랑’, ‘여행사랑’, ‘산사랑’, ‘사람사랑’ 같은 낱말을 얼마든지 쓰면서 삶과 넋과 말을 북돋웁니다.
남녀사랑 . 부부사랑 . 형제사랑 . 아이사랑 . 부모사랑 … (o)
남녀애 . 부부애 . 형제애 . 자녀애 . 부모애 … (x)
한국사람이 슬기롭게 쓰는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차곡차곡 실려야 합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사람이 올바르고 알맞게 글을 쓰고 말을 하도록 도와주는 눈밝은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합니다. 지식인이건 여느 어른이건 서로 따뜻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말과 글을 가꿀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람이 혼인을 하면 …… 사랑을 나누기도 하잖아
사람이 함께 살기로 하면 …… 살을 섞으며 놀기도 하잖아
사람이 한집에서 살면 …… 사랑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하잖아
살아가는 기쁨을 담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재미가 스미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보람이 깃드는 말입니다. 살아가며 나누는 모든 사랑과 믿음을 펼치는 말입니다. 스스로 돌보면서 자라는 말이고, 스스로 가꾸면서 빛나는 말입니다. 내가 손수 짓는 말이고, 내가 손수 아끼는 말입니다. 4342.3.4.물/4348.4.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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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함께 살면, 서로 이러저러한 일을 해 주기도 하지만, 사랑을 나누기도 하잖아
‘결혼(結婚)’은 ‘혼인’으로 다듬거나 ‘함께 살면’으로 다듬습니다. “하는 거잖아”는 “하잖아”로 손봅니다.
운우지락(雲雨之樂) : 구름과 비를 만나는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회왕(懷王)이 꿈속에서 어떤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그 부인이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에 있겠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 이미 부부간의 운우지락을 맛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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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운 상말
629 : 운우지정
붉은 철쭉꽃 만발하는 / 운우지정이 아니어도 좋고
《신현림-해질녘에 아픈 사람》(민음사,2004) 36쪽
운우지정이 아니어도
→ 사랑이 아니어도
→ 달콤한 사랑이 아니어도
→ 달달한 사랑이 아니어도
→ 꿈 같은 사랑이 아니어도
→ 바람 같은 사랑이 아니어도
…
고사성어 ‘운우지정’은 ‘운우지락’과 똑같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 말풀이도 똑같습니다. 하나는 ‘즐거움(락, 樂)’으로 적고, 다른 하나는 ‘마음(정, 情)’으로 적기만 합니다.
한국사람이 고사성어를 쓴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한국사람이니 한국말로 생각날개를 펼칠 수 있어요. 이를테면, ‘구름사랑’이나 ‘비사랑’ 같은 낱말을 새로 지을 만합니다. ‘바람사랑’이나 ‘하늘사랑’ 같은 낱말을 새로 지을 만해요.
사랑은 사랑이로되 여느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니, ‘사랑’이라는 낱말 앞뒤에 여러 가지 꾸밈말을 붙여서 새로운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달콤한 사랑”이나 “달달한 사랑”이라 해도 되고, “그리운 사랑”이나 “아련한 사랑”이라 해도 됩니다. “애틋한 사랑”이나 “이슬 같은 사랑”이라 해도 돼요. 4348.4.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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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철쭉꽃 활짝 피는 / 사랑이 아니어도 좋고
‘만발(滿發)하는’은 ‘활짝 피는’이나 ‘한껏 터지는’으로 손봅니다.
운우지정(雲雨之情) : 구름 또는 비와 나누는 정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회왕(懷王)이 꿈속에서 어떤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그 부인이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에 있겠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 운우지정을 나누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