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52. 마음결을 살리는 말결

― 위아래가 없는 말넋



  시를 쓰는 신현림 님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현자의숲,2012)이라는 책을 낸 적 있습니다. 이 책 166쪽을 보면 “아주머니와 나는 계속 이야기꽃을 피워 갔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값진 대화가 이어졌지요.”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이야기꽃’과 ‘대화(對話)’라는 낱말이 잇달아 나옵니다. 하나는 한국말이고, 다른 하나는 한자말입니다. 두 낱말 모두 한국말사전에 나오는데, ‘대화’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주고받는 이야기”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야기꽃’과 ‘대화’는 뜻이 같은 셈이고, 글쓴이는 ‘뜻이 같은 두 가지 말’을 나란히 적은 셈입니다.


  시를 쓰는 분이 쓴 글이니, 여러 가지 낱말을 섞어서 쓸 만합니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야기꽃’이라는 낱말을 넣었으면, 다음에는 ‘이야기밭’이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잔치’나 ‘이야기마당’이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고, 그냥 ‘이야기’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그러나 이런 얼거리를 헤아리는 어른은 퍽 드뭅니다. ‘이야기’라는 낱말을 바탕으로 새로운 낱말을 하나하나 일구어서 쓰려는 마음을 키우는 어른은 참 드물어요.


  한자말 ‘대화’를 쓰는 일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한자말도 쓸 수 있습니다. 영어로 ‘story’를 쓸 수 있을 테고 ‘talk’를 쓸 수도 있어요. 요즈음은 ‘북 토크’라든지 ‘북 콘서트’ 같은 말을 쓰는 사람도 제법 많습니다. 한국말사전에 오르지 않은 영어요, ‘한국말 아닌 외국말’이지만, 이런 영어를 거리끼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책 수다’나 ‘책 이야기잔치’쯤 될 텐데, 이처럼 한국말로 새롭게 생각을 지으려고 하는 흐름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요.


  생각을 차근차근 북돋운다면 ‘책 이야기놀이’나 ‘책 이야기꽃’ 같은 이름을 쓸 수 있고, ‘책꽃 이야기꽃’이나 ‘책·이야기·꽃’ 같은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책놀이 이야기놀이’라든지 ‘책·이야기·놀이’처럼 새로운 이름을 얼마든지 지을 만합니다.


  말을 살리는 길은 쉽습니다. 나 스스로 삶을 살려서 넋을 살릴 때에는 말이 기쁘게 살아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어떤 낱말을 캐내야 ‘말 살리기’가 되지 않습니다. 생각을 살찌울 수 있는 말을 스스로 마음속에서 일으킬 때에 말을 살립니다.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쓰는 말을 새롭게 돌아보면서 차근차근 가꿀 때에 말을 즐겁게 살립니다.


  신현림 님이 쓴 글을 보면 ‘계속(繼續)’이라는 한자말이 나옵니다. 이 낱말은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을 뜻한다고 해요. 이 한자말을 쓰는 일은 옳지도 그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한번 돌아보셔요. “나는 끊이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워”처럼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야기꽃을 자꾸 피워”나 “나는 이야기꽃을 그대로 피워”나 “나는 더 이야기꽃을 피워”나 “나는 새롭게 이야기꽃을 피워”나 “나는 곱게 이야기꽃을 피워”처럼 말을 할 수 있어요. 어느 낱말을 써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실타래가 아닙니다. 때와 곳을 더 넓게 살피면서 생각을 한껏 북돋울 낱말을 살릴 수 있느냐 하는 실마리입니다.


  한국말이 한자말보다 낫기 때문에 한국말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쓸 뿐이면서, 한국말로 넋과 삶을 아름답게 살찌우거나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말 한 마디를 바라보면서 내가 선 자리를 새롭게 돌아보고, 내가 선 자리를 새롭게 돌아보면서 우리가 나아가는 삶길을 새롭게 살펴서 가꿉니다. 말 한 마디는 내 넋과 삶과 길을 새롭게 가꾸거나 일구거나 북돋우는 밑바탕입니다.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말’이 무엇인지 헤아려야 합니다. 사회의식이나 고정관념이나 학교교육이나 제도권이나 교과서나 이론이나 지식이라는 딱딱한 틀을 내려놓고, 우리 삶과 넋과 꿈과 사랑과 숨결과 생각과 마음과 이야기를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고맙다’라는 낱말 한 마디는 “그대가 나한테 넓게 베푼 마음을 흐뭇하게 여기는 뜻”을 나타내려고 씁니다. 이리하여, 이러한 뜻을 ‘내가 너한테 나타내’려고 ‘고맙다’라는 낱말을 쓴다면, 나는 아주 스스럼없이 나와 마주한 너(그대, 이녁)한테 고개를 숙여 절을 해요. 네가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어도 ‘고맙다’ 하고 말하면서 절을 합니다. 이러한 뜻과 느낌을 담은 낱말이니, 예부터 ‘고마-’라는 말밑에 깊거나 너른 숨결이 깃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서로 말을 나누는 까닭은 이런 숨결과 넋을 다시금 되새겨서 새로운 마음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말에는 위나 아래가 없습니다. 말에는 계급이나 신분이 없습니다. ‘높임말’이 있습니다만, 높임말은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너(그대, 이녁)를 섬기거나 모시면서 함께 아름다운 삶으로 가려고 쓰는 말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돌볼 수 있는 마음이 되려고 높임말을 씁니다. 이리하여, 높임말은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한테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이일 때에 높임말을 씁니다. 높임말이 아닌 여느 말에도 서로 아끼거나 돌보는 마음을 담을 수 있으니, 서로 나이가 많이 벌어지더라도 ‘여느 말’로 따사로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한식구끼리는 높임말을 거의 안 쓰지요. 한식구끼리는 으레 ‘여느 말’을 써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가 ‘여느 말’로 홀가분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식구끼리는 ‘나이’를 헤아리지 않고 ‘사랑’을 헤아리기 때문에, 여느 말을 쓰면서도 무척 따스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도 서로 ‘나이’가 아닌 ‘사랑’을 살피기 때문에, 높임말 아닌 여느 말을 쓰면서 언제나 웃음꽃이 피고 기쁜 노래가 흐릅니다.


  말결을 살피면서 마음결을 살립니다. 마음결이 살아나면 삶결이 살아납니다. 삶결이 살아날 때에 꿈결과 사랑결이 함께 살아납니다. 새롭게 살아난 꿈결과 사랑결에 따라 따사롭고 넉넉한 이야기결이 태어납니다. 아주 조그맣다 싶은 낱말 한 마디에서 모든 숨결이 새롭게 피어납니다. 4348.3.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