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331) 미지의 1


이처럼 우리는 보통 미지의 것들에 대해 보호막이 없다고 느끼게 되고, 그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게 되는 거야

《타하르 벤 젤룬/홍세화 옮김-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상형문자,2004) 18쪽


 미지의 것들에 대해 보호막이 없다

→ 모르는 것을 막아 줄 울타리가 없다

→ 알 수 없는 것을 막아 주는 울타리가 없다

→ 낯선 것들한테서 지켜 주지 못한다

 …



  한자말 ‘미지’는 “알지 못함”을 뜻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사람들이 “알지 못함”이나 “모름”이라고 쓰는 말을 한자로 옮기면 ‘미지’가 되는 셈입니다. “미지의 세계”란 “알지 못하는 세계”이거나 “모르는 세계”입니다. “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아득한 두려움”이거나 “하나도 모르는 어렴풋한 두려움”입니다. 말뜻 그대로 쉽게 쓰면 될 노릇이면서, 한국말로 쉽게 쓰면 됩니다. 4338.9.24.흙/4348.4.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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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리는 흔히 낯선 것을 막아 주는 울타리가 없다고 느끼고, 그래서 아무런 까닭도 없이 끔찍한 일을 생각하고 말아


한국말사전에서 ‘보호막(保護膜)’을 찾아보니 ‘점막(粘膜)’을 가리키는 북녘말이라 풀이하는군요. 글쎄, 보호막과 점막은 쓰임새가 다른 낱말이 아닐까요. 여기에서는 ‘지켜 주는 품’나 ‘막아 주는 울타리’쯤으로 손질합니다.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다듬고, ‘상상(想像)하게’는 ‘생각하게’나 ‘떠올리게’로 다듬습니다.



미지(未知) : 아직 알지 못함

   - 미지의 세계 / 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곧 사라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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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24) 미지의 2


이것도 역시 텍스쳐의 강조가 표현에 박진감(迫眞感)을 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강철(鋼鐵)이 갖는 미지(未知)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낸 작품이다

《와타나베 츠토무/육명심 옮김-사진의 표현과 기법》(사진과평론사,1980) 54쪽


 미지(未知)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어렴풋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감춰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이 보기글에서는 ‘미지’라는 한자말에도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적습니다. 그러나, ‘미지(未知)’처럼 적는다고 해서 잘 알아볼 만하지 않습니다. 외려 더 뒤죽박죽이 됩니다. 알기 쉽도록 풀어야지요. 뜻이 환하게 드러나도록 글을 써야지요.


  이 자리에서는 ‘알 수 없는’으로 풀 수도 있고, ‘숨은’이나 ‘감춰진’으로 풀 수도 있으며, ‘속에 깃든’으로 풀 수도 있습니다. 4339.6.7.물/4348.4.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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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겉느낌을 도드라지게 살려서 마치 참으로 그러하다는 듯이 나타낼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무쇠에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낸 작품이다


보기글을 보면, ‘박진감’과 ‘강철’이라는 한자말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로 어떻게 적는가를 밝힙니다. 이 두 낱말은 한글로만 적으면 알아듣기 힘들다고 여기는구나 싶은데, 한자를 밝혀서 迫眞感으로 적는다고 해서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지 않습니다. “표현(表現)에 박진감(迫眞感)을 줄 뿐만 아니라”는 “참으로 그러하다는 듯이 나타낼 뿐만 아니라”로 손보고, ‘강철(鋼鐵)’은 ‘무쇠’로 손봅니다. “텍스쳐(texture)의 강조(强調)가”는 “질감을 도드라지게 해서”나 “겉느낌을 살려서”로 손질하고, ‘발견(發見)해’는 ‘찾아’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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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53) 미지의 3


또 한 명의 칠레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었다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29쪽


 미지의 인물이었다

→ 모르는 사람이었다

→ 알쏭달쏭한 사람이었다

→ 궁금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



  알 수 없는 일이 참 자주 일어난다고 느끼면서도, 알고 보면 알 수 없던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옆으로 밀어 놓던 일은 아니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일어남직한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바람에 어느 결에 깜짝 놀래키듯 터지기도 합니다.


  알기에 알고, 모르기에 모릅니다. 아니까 궁금하지 않고, 알지 않으니 궁금합니다. 알면 알 뿐이요, 모르면 아리송하거나 알쏭달쏭합니다. 모르니까 수수께끼가 되고, 그저 물음표투성이입니다. 4342.1.18.해/4348.4.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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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칠레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알쏭달쏭한 사람이었다


“또 한 명(名)의 칠레인(-人)”은 “또 다른 칠레사람”이나 “또 하나 있는 칠레사람”으로 다듬고, ‘도착(到着)하지’는 ‘오지’로 다듬으며, ‘인물(人物)’은 ‘사람’으로 다듬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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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0) 미지의 4


나와는 아주 다르게 히피로 살아온, 마치 미지의 정글과도 같은 한 남자의 삶이 그런 나의 소망 속으로 파고들었다

《신지아-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샨티,2014) 274쪽


 미지의 정글과도

→ 아리송한 

→ 알 수 없는

→ 수수께끼 같은

→ 새로운

 …



  알 수 없으면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 가운데에는 ‘수수께끼’라 할 만한 것이 있고, ‘새롭다’고 할 만한 것이 있으며, ‘낯설다’고 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모르기에 모두 새롭지는 않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 ‘모르다’와 ‘새롭다’와 ‘낯설다’를 알맞게 씁니다. 4348.4.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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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아주 다르게 히피로 살아온, 마치 수수께끼 숲과도 같이 살던 사내가 그런 내 꿈으로 파고들었다


‘정글(jungle)’은 ‘숲’으로 다듬고, “나의 소망(所望) 속으로”는 “내 꿈으로”나 “내 꿈에”로 다듬습니다. “한 남자(男子)의 삶이”는 “한 남자 삶이”로 손볼 수 있는데, 한국말에서는 ‘한’을 얹음씨로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자 삶이”나 “사내 삶이”로 손보면 어쩐지 글이 안 어울립니다. 낱말만 손보아서는 글이 제대로 엮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은 “-같이 살던 사내가”로 다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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