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
야마자키 마리 글.그림 / 미우(대원씨아이)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93



오붓하게 지내는 사람들

― 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

 야마자키 마리 글·그림

 정은서 옮김

 미우 펴냄, 2013.2.28.



  야마자키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미우,2013)에는 그린이 식구 이야기가 낱낱이 나옵니다. 이탈리아에서 이룬 한식구 이야기가 흐르고, 여러 나라를 돌며 가난하게 그림을 배우던 무렵 이야기가 흐릅니다. 일본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이야기를 다른 여러 나라에서 느낀 이야기가 흐르고, 일본 사회나 문화하고 다른 사회나 문화를 견주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야마자키 마리 님은 일본에서만 살았다면 이 같은 일을 겪지 못했을 테고, 그림을 그린다거나 만화를 그릴 생각을 못 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일본에서만 살더라도 그림이나 만화는 얼마든지 그릴 수 있었을 텐데, 이때에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만화에 담았겠지요.



- “그거 외국인이 일본에 대해 품는 이미지랑 비슷하네요.” (8쪽)

- ‘결국 이런저런 시댁에 대한 불만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고, 그 증정본이 시댁으로도 배송된 것이었다.’ “우와아, 마리가 우리 가족 이야길 만화로 그랬대!” “그거 근사하네요! 얼른 보여줘요! 마히! 빨리 어떤 내용인지 가르쳐 다오!” (17쪽)





  《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화책인 만큼, 이탈리아에서 살며 겪거나 보거나 느낀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사람으로서 바라보는 눈길’이 아닌, ‘일본사람으로서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일본에서라면 이러할 텐데’와 같은 눈길입니다.


  이제껏 살거나 겪거나 누리던 모습하고 어긋나거나 달라서 부딪히는 일이 있을 적에, ‘새롭다’고 느낄 수 있고 ‘낯설다’고 느낄 수 있으며 ‘힘들다’거나 ‘갑갑하다’거나 ‘놀랍다’거나 ‘끔찍하다’거나 ‘재미있다’거나 ‘싫다’거나 ‘좋다’고 느낄 수 있어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릅니다.


  야마자키 마리 님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마 이 모든 느낌이 골고루 있구나 싶고, ‘풍림화산’이라는 말마디를 덧단 책이름처럼, 바람 잘 날이 없고 화산처럼 터지며 눈알이 빙글빙글 돌 만큼 어지럽거나 시끌벅적하다고 할 만합니다.



- ‘이탈리아인의 풍부한 상상력, 그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대화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54쪽)

- ‘예전에 사이가 좋지만 싸움이 끊이질 않았던 커플과 한집에 산 적이 있다. 한바탕 싸운 다음 여자 쪽은 반드시 내 방으로 찾아왔다. 그녀가 직행하는 곳은 항상 거울 앞. 그녀는 이 거울로 ‘가련한 내 모습’을 확인하는 중이다.’ (85∼86쪽)




  어떤 사람은 목소리가 큽니다. 어떤 사람은 목소리가 조용합니다. 어떤 사람은 바빠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느긋합니다. 목소리가 높거나 낮대서 좋거나 나쁠 수 없습니다. 바삐 움직이거나 느긋하게 움직인대서 좋거나 나쁠 수 없습니다. 다 다른 몸짓이요 삶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은 ‘남다르다’ 싶은 삶을 스스로 겪은 대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만화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과 다른 삶’이 또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마음으로 빚은 만화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린이가 나고 자란 일본하고 너무도 다른 삶을 늘 겪어야 하면서 생긴 앙금과 응어리와 생채기와 고단함을 ‘만화 그리기’로 풀어 보려고 한 셈이고, 이렇게 ‘속풀이’처럼 만화를 그리면서 조금씩 자란다고 할 만합니다.



- ‘아들을 낳은 16년 전인 1994년. 그 당시의 일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139쪽)

- ‘일본의 산부인과가 임산부의 불안을 덜어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비해서, 그곳은 마치 출산에 대한 공포를 부치기기 위해 있는 장소 같았다.’ (147쪽)





  아기를 낳으려는 생각으로 아기를 낳지 않았고, 만화를 그리려는 생각으로 만화를 그리지 않았으며, 이탈리아사람을 곁님으로 두려는 생각으로 곁님으로 두지 않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삶을 하나하나 받아들입니다. 스스로 지어서 찾아온 삶일 수 있지만, ‘똑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 마음’이었기에 늘 낯설면서 남다른 이야기가 그린이 삶에 찾아왔구나 싶습니다.


  뒤죽박죽인 삶은 재미있을까요? 스스로 재미있게 여기면 재미있습니다. 시끌벅적한 삶은 즐거울까요? 스스로 즐거웁다고 여기면 즐겁습니다. 왁자지껄한 삶을 쉬잖고 누리면서, 이 왁자지껄한 삶을 그야말로 왁자지껄하게 풀어내는 만화가 야마자키 마리 님 만화이겠네 하고 느낍니다.



- ‘그때까지 많은 그림을 그려 왔지만, 그림이 돈이 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유화와 비교하면 만화가 더 돈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만화들은 인기가 많은 책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난 묘하게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아기를 안고 만화에 전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158쪽)





  아기를 안고 만화를 그리기는 쉽지 않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아기가 없이 홀가분하게 만화를 그리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할 만합니다.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삶이기에 만화를 그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릴 이야기’가 있어야 만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릴 이야기’가 없으면 만화를 쥐어짜내야겠지요.


  그러니까, 야마자키 마리 님은 스스로 ‘만화로 그릴 이야기’가 넘치는 왁자지껄한 삶을 찾아서, 이녁 스스로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지구별 여러 나라를 돌고, 이탈리아사람을 곁님과 한식구로 삼았으며, 가난한 유학생이면서 아기를 낳았고, 돈을 벌어 아기를 돌보려고 만화를 그렸습니다.


  서로 오붓하게 지내는 삶을 누리는 길입니다. 만화를 그리든 그림을 그리든, 그저 여느 회사원으로 살든, 우리는 서로 오붓하게 지내려는 마음입니다. ‘이탈리아 이야기’는 거의 없는 《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이지만, 서로 아끼고 기대면서 왁자지껄하게 삶을 누리려는 이야기가 흐르기에 찬찬히 읽은 뒤 조용히 덮습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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