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44 쓰다



  햇볕이 뜨겁거나 바람이 차서 모자를 씁니다. 돌이나 나무를 다루어 연장으로 갈고닦으면, 이 연장을 써서 새로운 것을 즐겁게 지을 수 있습니다. 하루를 써서 재미난 일을 하고 신나는 놀이를 합니다. 기운을 써서 짐을 나르고 지게를 지며 장작을 팹니다. 마음을 써서 서로 아끼고 헤아리면서 따사롭게 사랑합니다. 애를 쓰고 힘을 쓰니 두레와 울력이 기쁩니다. 나는 너한테 아름다운 말을 쓰고, 너는 나한테 고운 말을 씁니다. 먼저 떠난 이를 기리거나 그리면서 무덤을 쓰고, 몸에 새로운 기운을 북돋우려고 쓴 나물을 캐서 알뜰살뜰 밥을 짓습니다.


  한곳에 쌓은 돈은 쓰면 쓸수록 줄어듭니다. 한곳에 쌓지 않고 차곡차곡 살림을 가꿀 적에는 돈을 쓰고 또 쓰더라도 살림이 줄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마음은 쓰면 쓸수록 따스해집니다. 사랑은 쓰면 쓸수록 깊어집니다. 꿈은 쓰면 쓸수록 새롭게 자랍니다. 내 몫(밥그릇)만 따지면서 ‘덜기’를 하듯이 쓴다면, 내 몫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내 몫을 따지지 않으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삶을 헤아린다면, 나는 언제나 쓰고 또 쓰지만 내 몫(밥그릇)이 줄어들지 않아요. 내가 덜어서 너한테 주는 만큼(또는 더 크게) 내 다른 이웃이 나한테 마음을 써서 내 밥그릇(몫)을 채워 줍니다.


  몸이 닳아서 늙는 까닭은 몸을 함부로 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즐거울 일을 찾아서 하지 않을 때에는 몸이 닳아서 늙습니다. 스스로 즐거울 일을 찾는 사람은 삶을 누리는 동안 언제나 모든 일을 홀가분하게 잘 합니다. 나이 여든이나 아흔에도 고깃배를 몰아서 바다에서 그물을 던져서 올릴 수 있어요. 나이 아흔이나 백에도 호미를 쥐거나 괭이를 잡고 흙을 갈아 씨앗을 심을 수 있어요.


  억지로 쥐어짜내려고 한다면 몸이 닳습니다. 억지를 쓰니까 몸이 닳습니다. 마음을 쓰고 사랑을 써서 일을 하고 놀이를 누리면, 내 몸은 닳는 일이 없습니다. 함부로 쓰기에 닳고, 기쁘게 쓰기에 안 닳습니다. 아니, 기쁘게 쓰면 새롭게 태어납니다. 새로운 웃음과 노래로 삶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새로운 마음이니, 한결같이 새로운 생각을 길어올려서, 한결같이 새로운 몸으로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머리를 잘 쓸 수 있습니다. 어리석거나 어처구니없거나 바보스럽거나 멍청한 짓에 머리를 쓰지 말아요. 검은 꿍꿍이에 머리를 쓰지 말아요. 남을 괴롭히거나 등치거나 들볶는 일에는 머리를 쓰지 말아요. 이웃을 아끼고 동무를 사랑하며 곁님을 어루만지는 몸짓으로 머리를 써요.


  몸은 닳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닳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내 마음이 한결같은 샘물처럼 늘 싱그러이 솟는, 푸르며 맑고 새파란 숨결로 가득한 물줄기와 같다면, 내 몸은 닳지 않습니다. 맑은 생각을 품어서 맑은 마음으로 가꾸면 맑은 몸짓이 되어 맑은 삶으로 드러납니다.


  잘 써야 합니다. 슬기롭게 써야 합니다. 알맞게 써야 합니다. 기쁘게 써야 합니다. 놀라우면서 새롭게 써야 합니다. 웃음과 노래로 써야 합니다. 춤과 이야기로 써야 합니다. 말 한 마디를 글 한 줄로 쓸 적에는 언제나 ‘삶노래’를 쓸 노릇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쓸 때에 비로소 글이고, 이러한 글을 엮어서 책을 짓습니다.


  사랑을 쓰는 사람은 이내 사랑을 얻어서 즐겁게 나누고는, 이윽고 새로운 사랑을 쓸 수 있습니다. 꿈을 쓰는 사람은 바로바로 꿈을 이루어서, 시나브로 새로운 꿈을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삶쓰기입니다. 돈쓰기도 삶쓰기입니다. 마음쓰기도 삶쓰기입니다. 모든 ‘삶쓰기’는 ‘사랑쓰기’요, ‘마음쓰기’이면서, ‘생각쓰기’입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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