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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품은 할아버지 ㅣ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11
웬디 앤더슨 홀퍼린 지음, 조국현 옮김 / 봄봄출판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1
새로 깨어나는 두 사람
―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
기 드 모파상 원작
웬디 앤더슨 홀퍼린 글·그림
조국현 옮김
봄봄 펴냄, 2006.7.20.
오늘날 학교를 보면, 학교에서 아이한테 가르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참말 제도권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도 못 가르칩니다.
이렇게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분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도 안 가르칩니다. 왜 그러할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교과서 지식이 아닌 ‘이야기’는 하나도 안 가르칩니다.
이를테면, 학교는 시험공부에 도움이 될 지식은 가르치되, 아이들이 집에서 집일을 돕거나 건사하거나 맡을 수 있는 ‘이야기’는 못 가르칩니다.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들부터 스스로 집살림을 알뜰살뜰 건사하는 사람이 드물 뿐 아니라, 집살림을 알뜰히 건사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섣불리 들려주지 못해요. ‘교과서 진도’를 나가야 하고, ‘시험공부’를 시켜야 하니까요.
.. “이 게으름뱅이 영감탱이야! 그렇게 놀지만 말고 나 좀 도와 달란 말이에요!” 할머니가 들볶아도 할아버지는 그냥 껄껄 웃었어요 .. (5쪽)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어도 홀로서기를 할 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살섞기나 짝짓기를 할는지 모르나,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삶을 짓는 사랑은 하지 못합니다. 이제껏 배운 적이 없고, 본 적이 없으며, 알아보려 한 적도 없어요.
아이들은 밥짓기를 집이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입시를 잘 치르도록 돕기만 하고, 학교에서는 도시락조차 없이 급식만 먹입니다. 아이들은 옷짓기나 집짓기를 집이나 학교에서 구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어디에서나 옷은 가게에서 사다 입을 뿐,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지 않습니다. 집을 스스로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고, 다들 돈을 벌어서 아파트나 빌라를 사거나 빌려서 지내려 할 뿐입니다.
.. 할머니는 닭들에게 가서 말했어요. “사랑스런 닭들아, 이제부터 앙트완 할아버지가 알 품는 것을 도와줄 거야!”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와서 찢어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노란 암탉에게 달걀을 열 개 품으라고 했어요. 자, 이건 당신 몫이에요. 깨지지 않게 조심해요!” .. (13쪽)
기 드 모파상 님이 쓴 글을 바탕으로, 웬디 앤더슨 홀퍼린 님이 새롭게 엮었다고 하는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봄봄,2006)를 읽습니다. 할머니한테는 늘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는 할아버지인데, 언제나 허허 웃으면서 지나갔다고 해요.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가 못마땅해서 더 들볶으려고 했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둘 다 옳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집일을 거의 건사하지 않아 할머니 혼자 늘그막에도 온갖 일을 해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조금 더 느긋하거나 너그럽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실마리는 하나이지요. 할머니가 조금 더 느긋하거나 너그러우려면 할아버지가 집일을 거들면 돼요. 허허거리기는 그만두고 말이지요.
.. 할아버지가 품은 알에서는 병아리가 몇 마리 나올지, 어떻게 생겼을지, 또 할아버지처럼 슈크림이 빵을 좋아할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 (19쪽)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저마다 스스로 달라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이때 두 사람한테 ‘달걀’이 실마리가 됩니다. 아이가 따로 없이 둘이서만 지낸 삶인데, 할아버지가 그만 허리를 다쳐서 몸져누워야 할 적에, 할머니는 이웃사람 이야기를 듣고는 할아버지더러 달걀을 품으라고 시켜요. 할아버지는 어떻게 달걀을 품느냐고 따졌지만 할머니 말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몸져누워 꼼짝을 못하기도 하니까 달걀을 품고 맙니다.
닭이 낳은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는 ‘늘그막까지 아이가 없는 두 사람’한테는 새로운 목숨이자 숨결이요 아이와 같습니다. 병아리도 아기와 똑같이 사랑스럽습니다. 병아리와 아기는 서로 아름다운 목숨이요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제껏 늘 보던 병아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삶이 되면서, 두 사람은 저마다 새로운 몸짓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허물을 벗고 새로 깨어나는 셈입니다.
.. 마침내 마지막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왔어요. 할아버지는 병아리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 주었어요. “보드라운 깃털을 가진 친구야, 여기가 마음에 드니? 자, 여기 빵 부스러기를 먹어. 물도 마시렴. 너도 슈크림을 좋아할 거지, 그렇지? 우리 모두 네가 나오길 기다렸단다. 봐, 저 달도 널 보고 웃고 있잖아.” .. (27쪽)
함께 살림을 짓는 사람은 함께 사랑을 짓는 사이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입니다. 같이 삶을 가꾸는 사람은 같이 한길을 걷는 사이입니다.
이야기책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새로운 삶에 눈을 뜹니다. 할아버지는 집일을 돌보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고, 할머니는 한결 느긋하면서 너그럽게 할아버지와 마주하는 기쁨을 느낍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사내는 바깥일을 한다면서 집일에 등돌리는 바보스러운 짓을 그쳐야 합니다. 가시내는 사내가 바보스러운 짓을 벌이더라도 더욱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지면서 슬기로운 살림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깨어나야 하고, 두 사람은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4348.3.3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