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사계절 1318 문고 66
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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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7



내 숨을 살려 주는 바람

―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황선미 글

 사계절 펴냄, 2010.12.24.



  새봄에 매화나무 앞에 섭니다. 우리 집 매화나무는 새봄에 새꽃을 터뜨립니다. 어제까지는 꽃이 제법 많이 피었고, 오늘 아침에는 한두 송이를 빼고 모든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래서 아침과 낮에 매화나무 앞에 서서 오래도록 꽃내음을 맡고 꽃빛을 바라보았습니다.


  매화나무 모든 꽃이 활짝 벌어진 오늘은 바람이 그리 안 붑니다. 저녁이 되니 바람이 살짝 불기는 했지만, 새 봄바람은 새 꽃잎을 떨구거나 날리지 않습니다. 새 봄바람은 골골샅샅 쑥내음과 꽃내음과 풀내음과 봄내음을 물씬 실어서 나릅니다. 우리 집에서도 다른 마을에서도 봄빛을 한껏 누릴 만합니다.



.. 고향 집은 이제 내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하다. 모든 게 여기랑 달랐다는 어렴풋한 기억뿐. 거기서는 추운 줄 몰랐고 배고프지도 않았다. 마을 어디에나 감나무가 흔했고 아침마다 달려가 세수하던 개울에는 가재도 많았다 … 엄마가 몰래 운다는 걸 나는 안다. 엄마도 애들처럼 울 수 있다는 걸 안 뒤부터 나는 걱정이 늘었다 ..  (15, 28쪽)



  숨통이 트이는 곳에 있을 적에 시원합니다. 숨이 막히는 곳에 있으면 답답합니다. 물과 바람이 맑은 시골에 있기에 숨통이 트이지 않습니다. 가슴을 활짝 열면서 마음에 따스한 사랑을 심는 곳에 있어야 시원합니다. 돈 많은 어버이를 두어야 숨이 트이지 않습니다. 착하면서 참다운 사랑으로 아름답게 살림을 가꿀 줄 아는 어버이와 오순도순 지낼 때에 숨이 트입니다.


  장난감이 많아야 숨통을 트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신나게 뛰놀고 노래하면서 웃을 수 있을 때에 숨통을 트는 아이들입니다. 손꼽히는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숨을 틀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기쁘게 어깨동무하면서 이웃과 서로 아끼는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숨을 트는 아이들입니다.



.. 오늘 숙제를 내지 못해서 미정이는 손바닥을 다섯 대나 맞고 울었다. 새마을운동 포스터를 그려 오지 않아서였다. 포스터 그리기는 솔직히 좀 어려웠다. 선생님은 ‘마을 길 넓히기, 화투 없애기, 지게 없애기, 초가지붕 없애기’ 중에서 자유롭게 아무거나 골라 그려 오라고 했다 … 아버지만 돌아오시면 모든 게 옛날처럼 좋아질 줄 알았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고향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되레 전보다 더 우울하고 ..  (41, 91쪽)



  황선미 님이 쓴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사계절,2010)을 읽습니다. 이 책은 황선미 님이 어릴 적에 겪은 이야기를 갈무리했다고 합니다. 따스한 보금자리를 잃고 떠돌아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늘 모자라고 힘든 나날이지만 글쓴이 나름대로 씩씩하게 바람과 맞서려고 하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넓거나 크지 않더라도 한식구가 한자리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보금자리가 얼마나 포근한가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이웃을 그리는 마음이 드러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무를 바라는 마음이 묻어나는 이야기책입니다.



.. 나는 그들 속에 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걔들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따라온 식구들과 함께였고, 학교에서 출발할 때부터 정해진 짝이 있는 애들이었다 … 크레파스 뚜껑을 여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가져 보는 새것 냄새가 빈속으로 확 스며들었다 …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대체 그림을 그리게 하나. 머리일까, 가슴일까, 아니면 손끝의 기억일까 ..  (120, 124, 132쪽)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왜 서로 아끼거나 어깨동무를 하지 못할까요. 배고프고 고단한 사람들이 왜 서로 돕거나 보살피지 못할까요. 가만히 보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뿐 아니라 배부르고 느긋한 사람들도 서로 아끼지 못하거나 어깨동무를 못 하기 일쑤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아끼지 못한다기보다, 마음에 걱정과 근심을 잔뜩 짊어지기에 서로 아끼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배고프거나 배불러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안 한다기보다, 마음에 사랑을 심지 않았기에 이웃하고 등돌리거나 동무를 괴롭히지 싶어요.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을 보면, ‘나’와 ‘우리 식구’는 ‘숙이네 집 방 한 칸’을 얻어서 겨울에 찬바람을 그으면서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꺽다리 집’에 남는 ‘내 동무’는 겨울에도 그대로 찬바람을 맞으면서 그 집에서 지내야 합니다. ‘나’는 새 크레파스를 얻고 새 가방을 얻지만, ‘꺽다리 집’에 남는 ‘내 동무’한테는 새 크레파스도 없고 새 가방도 없습니다.


  ‘꺽다리 집 동무’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요? 춥고 썰렁하면서 슬픈 기운이 감도는 그 집에 그대로 남아야 하는 ‘이제 나보다 더 가난하고 힘겨운 동무’는 앞으로 어떤 마음이 될까요? 그리고 ‘꺽다리 집’보다 훨씬 더 가난하면서 힘겹게 하루를 보낼 다른 동무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낼까요?



.. 아줌마가 불을 껐다. 나는 소리 죽여 한숨을 쉬고 어두운 천장을 보았다. 지나가는 차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잠이 올지 걱정이 됐다. 눈을 감으니 추운 집에서 외투까지 겹쳐서 덮고 잘 식구들이 생각났다. 이렇게 등이 따뜻한 방에서 다 같이 자면 참 좋을 텐데 … 전에 없이 나긋해진 엄마 말투에 내 마음이 다 편해졌다. 그런데 나를 보고는 또 눈살을 찌푸린다. 숙이네를 나쁘게만 여긴 게 사실이라, 지레 자라목이 된 나를 엄마는 기어이 짚고 넘어갔다 ..  (153, 180쪽)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에 나오는 ‘나’는 여러모로 힘듭니다. 그러나, ‘나’도 다른 동무한테 잘 하지 않습니다. 외롭게 따돌림을 받는 아이한테 고개를 홱 돌립니다. 새 크레파스가 생긴 뒤에 혼자서 새 크레파스를 쓸 뿐, 동생이나 다른 동무하고 나누어 쓰지 않아요. 새 사인펜이 생긴 뒤 종이인형을 그려 주기는 하지만, 다른 동무가 ‘나’한테 살가이 다가오거나 선물 하나를 주기 때문에 그려 줄 뿐입니다. 먼저 스스로 나서서 돕거나 아끼는 몸짓은 없습니다. 선물을 받고 종이인형을 그려 주면서도 ‘내 사인펜이 닳아서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덮습니다. 눈을 감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다들 팍팍하고 메마른 나날을 보내야 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읽으면 될까 궁금합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뚜렷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려고 했으니, 여러모로 나한테 기쁜 선물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맞아들이면 될까 궁금합니다.


  바람은 겨울에 찬바람을 몰고 오지만, 봄에는 따순 바람을 몰고 옵니다. 우리는 바람을 마시면서 삽니다. 찬바람도 마시고, 따뜻한 바람도 마십니다. 추운 판잣집이라 하더라도 한식구가 어깨를 맞대면서 기운을 내듯이, 어떤 바람이 불든 우리는 서로 아끼고 돕는 사랑을 키울 때에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그렇지요. 4348.3.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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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6-02-2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어린이의 마음으로만 이해했습니다.
다른 애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의 득의양양함은 보상인 듯 기뻤고
더 으스대어도 당연했을겁니다.
그런데 아~ 이렇게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싶어 머리가 텅 비어 지는
듯해요. 그러네요! 나누면 더 좋았을거라는 걸 떠올리지 못하는 전
부끄러워집니다. 숲노래님, 훌륭하세요!^^

숲노래 2016-02-21 09:51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 적에
이 비슷한 일을 겪었어요.

어릴 적에 꼭 한 번이었는데,
나도 동무도 모두 가난할 적에
나한테서 빌린 것을
동무가 쓸 적에 `아깝다`고 한 번 느낀 적 있어요.

그런데 그 동무가 다른 동무한테 뭘 빌려줄 적에
그냥 스스럼없이 빌려주더군요.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다음부터는 동무한테 뭘 빌려줄 적에는
`그냥 준다`는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 늘 새롭게 배우면서
즐겁게 거듭나는 살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Grace 님,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누리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