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3 - 자음 편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3
최승호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53



모든 말은 즐거운 놀이가 되지만

―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3

 최승호 글

 윤정주 그림

 비룡소 펴냄, 2007.7.27.



  우리는 말을 짓습니다. 나는 나대로 말을 짓고, 너는 너대로 말을 짓습니다. 나는 내 삶을 누리면서 말을 짓고, 너는 네 삶을 누리면서 말을 지어요. 저마다 다른 삶자리에서 다른 살림을 꾸리면서 다른 말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마을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고, 고을마다 말이 조금씩 달라요. 고장마다 말이 다르기 마련이고, 나라마다 말이 다릅니다.


  모든 말은 뿌리가 하나라 하지만, 사람마다 ‘같은 말’을 다 다르게 씁니다.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다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 다 다른 말이 태어납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까닭은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지구별에서도 어느 한쪽이 낮이면 다른 한쪽은 밤이에요. 어느 한쪽은 아침이라면 다른 한쪽은 저녁입니다. 뭍에서는 높낮이에 따라 날씨가 조금씩 다르며, 똑같이 비가 오더라도 하늘에 뜬 구름결에 따라 빗결도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낍니다.


  요즈음은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이 있기에, 똑같은 것을 아주 똑같이 바라보도록 길듭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똑같은 교과서를 쓰는 터라, 그야말로 똑같은 것을 다 다른 사람이 그저 똑같이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끼기만 하면서, 그야말로 똑같은 말만 흐릅니다.



.. 너, 구려 / 너 구린 거 알아 / 너 똥 먹었지 / 안 먹었어 / 그런데 왜 구린내가 나냐 / 저리 가 ..  (너구리)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동네마다 놀이가 다 달랐습니다. 놀이를 가리키는 이름이 달랐고, 놀이를 하는 틀이 달랐습니다. 같은 하늘을 등에 지고 사는 서울에서도 이 동네와 저 동네가 말씨도 놀이도 삶도 달라요. 그렇지만, 이제 골목놀이조차 모조리 사라지고 학교와 학원 사이를 맴돌다가 인터넷게임으로 바뀐 흐름이 되니, 서울과 부산에서도 ‘똑같은 삶’이 되고 똑같은 말이 됩니다. 말결이 살짝 다르기는 하더라도, 이제 한국에서 ‘다른 말’을 쓰는 ‘다른 삶’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문학을 하는 이들이 고장말이나 마을말을 쓰는 일이 드뭅니다. 학문을 하는 이라면 모두 표준말을 쓴다고 하는데, 이 표준말은 한국말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한국말대로 맞추거나 띄기는 할 테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알맹이는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로 쓰기 일쑤입니다. 겉으로 보자면 모두 ‘한글’이지만, 속으로 보자면 ‘한국말’이 아니라고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다른 모습’이 없습니다. 다른 모습이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모습’도 없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새로 가꾸지 않아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새로 일구지 않습니다.



.. 내 이름은 산딸기 / 나는 산의 딸이에요 / 산이 날 낳아 줬어요 / 내 이름은 산딸기 / 나는 산의 사랑스런 딸이랍니다 ..  (산딸기)



  요즈음은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나 물질이 생기면 으레 영어나 서양말을 붙입니다. 영어나 서양말을 가끔 한자말로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말로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나 물질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려 하지 않아요. 한국말은 아예 없는 말처럼 다루고,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아예 멀리 밀어놓습니다. 한국말로 생각하지 않고, 한국말로 살지 않으며, 한국말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삶을 가꾸거나 짓거나 돌보지 않습니다.



.. 담이 우는 거 봤니 / 난 봤다 / 비 오는 날이었는데 / 담이 울고 있는 게 아니겠어 / 담이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 / 괴로웠나 봐 / 하긴 담쟁이덩굴이 벽을 많이도 뜯어 먹었더군 / 뜯어 먹기만 했겠어 / 벽을 쭉쭉 빨아 먹기도 했을 거야 / 흡혈귀처럼 ..  (담 이야기)



  최승호 님이 쓴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비룡소,2007) 셋째 권을 읽습니다. 최승호 님은 ‘말놀이’ 동시집을 여러 권 씁니다. 동시를 쓰기는 쓰는데, ‘말놀이’를 하는 동시입니다. 낱말 하나를 놓고 최승호 님 나름대로 풀거나 엮거나 짜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을 읽으면, 참말 ‘말’을 ‘다르게 읽’으면서 ‘노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동안 나온 수많은 동시집하고 여러모로 다릅니다. 다만, ‘새롭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숨결을 말에 넣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넋을 말에 심지는 않습니다. 말로 놀이를 할 수는 있되, 말로 삶을 가꾸거나 짓지는 못합니다. 말로 하하호호 깔깔낄낄 웃거나 노래할 수는 있되, 말로 꿈을 꾸거나 짓지는 못합니다.



.. 봄, 봄에 본다 / 보이지 않는 봄바람 본다 // 봄, 봄에 본다 // 보이지 않는 봄기운 본다 // 푸른푸릇한 풀 / 따스한 햇살 // 노란 민들레에 / 봄 한 송이 피었네 ..  (봄)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은 재미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에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은 기쁘거나 즐겁지는 않습니다. 우리 삶을 새롭게 읽거나 바라보도록 이끌지는 않기 때문에 기쁘거나 즐겁게 읽을 만하지는 않습니다.


  최승호 님은 이녁이 머릿속으로 품은 생각에 따라 말놀이를 합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말놀이를 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의식’과 ‘고정관념’에 따라 말놀이를 합니다. 그래서, 여느 동시집하고 이 동시집은 ‘다르’지만, ‘새로움’은 하나도 없습니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뜯어 먹는다는 생각은 재미있습니다. 여느 어른들 생각과는 좀 다릅니다. 그래요, 다르지요. 그렇지만 새롭지 않아요. 더욱이, 담쟁이덩굴 마음을 읽거나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산딸기가 산이 낳은 딸이라고 바라보는 생각은 재미있습니다. 여느 어른들 생각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요, 달라요. 그렇지만 새롭지 않습니다. 더구나, ‘멧토끼’와 ‘멧나물’로 이어지는 ‘멧자락’에서 돋는 ‘멧딸기’를 읽지는 못합니다. 언뜻 겉으로 보이는 ‘말꼬리 잡는 놀이’로는 재미있습니다만, 이 다음으로 잇거나 흐르는 숨결까지는 없어요.



.. 말썽꾸러기 / 원숭이 귀를 잡아당기자 / 원숭이가 이상한 소리를 지르네 // 아야 /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 오요 /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 으이 / 아야어여오유우유으이 ..  (원숭이)



  똥은 구릴까요, 안 구릴까요? 똥이 구리다고 여기면 구립니다. 똥이 구릴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 안 구립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서 거두어 먹는 밥으로 삶을 짓는 사람은, 똥내음이 구리지 않습니다. 멧짐승이나 들짐승은 똥내음이 구릴까요? 멧짐승이나 들짐승이 누는 똥이 구린 냄새가 난다면, 아마 숲이나 들에서 우리는 모두 코를 막아야 할 테지요. 숲과 들에는 벌레와 짐승들이 사니까요.


  최승호 님이 쓴 동시에 가락을 입히면 멋지며 재미난 노래가 태어납니다. 이를테면 〈원숭이〉는 아이들이 널리 좋아하는 재미난 노래입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최승호 님이 쓴 동시는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없’습니다. 뜻이 없다는 말은, ‘장난스러운 몸짓’은 되지만, 막상 ‘신나거나 즐거운 놀이’는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책이름은 ‘말놀이 동시집’이지만, 정작 최승호 님이 펼치는 동시 이야기는 ‘말장난 동시집’입니다.


  말장난이라고 해서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말로 장난을 해 보았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최승호 님은 장난꾸러기입니다. 장난꾸러기 ‘어른아이 최승호’가 말을 놓고 요모조모 장난질을 해서 재미나게 하루를 보냈다는 소리입니다. 4348.3.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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