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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 나를 사랑하기 좋은 날
신현림 글.그림 / 현자의숲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81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날
―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신현림 글
현자의숲 펴냄, 2012.8.12.
해가 기웃기웃 지려고 할 즈음에 뒤꼍으로 그릇을 하나 들고 나갑니다. 곁님과 아이들이 곧 배고프다고 할 듯하다고 느껴서, 뒤꼍에서 쑥을 뜯습니다. 이월이 막 저물고 삼월로 접어들었으나 쑥은 많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침개 넉 장을 부칠 만큼 뜯을 수 있습니다. 아직 조그마한 쑥잎을 하나둘 뜯어서 그릇에 채웁니다. 쑥잎은 아무리 작아도 곁에 쪼그리고 앉으면 향긋한 기운이 퍼집니다. 쑥부침개를 하든 쑥국을 끓이든 쑥버무리를 하든 온통 쑥내음이요, 마당이나 뒤꼍에서 쑥을 뜯을 적에도 쑥내음입니다.
.. 세수도 안 하고 속살이 훤히 보이는 속옷을 입고 뒤척일 때 지친 하마같이도 보여요. 그래도 귀여우세요. 애써 꾸미지 않아도 당신은 아름다워요 … 사람들은 책을 봐야겠다고 늘 결심만 하죠. 정말로 실천하려면 20년은 걸릴 거예요 .. (8, 27쪽)
쑥을 헹군 뒤 밀가루 반죽을 합니다. 불판을 달굽니다. 기름은 아주 조금 붓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쑥을 넣고 더 섞은 뒤, 불판이 뜨끈뜨끈하면 이제부터 쑥부침개를 합니다. 기름이 자글자글 익는 부침개는 부엌을 지나 마루를 거쳐, 아이들과 곁님이 있는 방으로 퍼집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알아챕니다. “우와, 맛있는 냄새 난다! 아버지가 뭐 하나 봐!” 두 아이는 마루를 쿵쾅쿵쾅 뛰면서 부엌으로 달려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은 무슨 밥?” 두 아이는 부침개 익는 냄새만으로도 배가 살살 고픕니다.
한 장을 부쳐서 동그란 꽃접시로 옮깁니다. 두 장째 부치려고 반죽을 불판에 붓고 나서 아이들을 부릅니다. 자, 이제 먹자! 따끈하게 덥힌 국을 그릇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아이들은 밥과 국과 부침개를 바지런히 먹습니다. 부침개 담은 접시가 빌 무렵 다음 부침개를 따끈하게 올립니다.
이제 석 장째 부치고, 부침개를 먹는 젓가락은 조금 느슨합니다. 마무리로 넉 장째를 부친 뒤 설거지를 합니다. 두 아이는 조잘조잘 떠들면서 천천히 밥술을 뜹니다.
.. 딸아이를 부려먹거나 일 시켜먹으려 낳은 건 아닙니다. 일하는 법을 가르치긴 합니다. 엄마가 없을 때 혼자 있게 되면 뭐라도 해야 할 테니까요 … 고난마저 사랑하면 인생길이 더 잘 보이듯, 온전히 다 사랑하면 후회가 없습니다 … 자신의 가치가 다른 사람들의 험담으로 낮아져서는 안 돼요. 자신을 어여삐 보는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어여쁨을 보세요 .. (50, 61, 76쪽)
신현림 님이 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현자의숲,2012)을 읽습니다. 새빨간 옷을 입은 가볍고 앙증맞은 책에 조그마한 그림이 깃듭니다. 무슨 그림일까 하고 가만히 쳐다봅니다. 아하, 신현림 님이 그린 그림이지 싶습니다. 하늘로 쪽 뻗은 파르스름한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그림이 예쁩니다. 신현림 님은 파랑을 사랑하는군요. 그러고 보면 ‘사과 여행’ 사진에서도 ‘파랑 능금’이 곧잘 나옵니다.
.. 서른 살을 보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고 고시공부하듯 탐구하고 창작열을 불태우는 것뿐이었어요 … 마음속을 가난이 아니라 풍요로움, 행복, 자유의 이미지로 채워 보세요. 내가 꿈꾸는 이미지와 말로 내 속을 채워 나가면 삶은 바뀌더군요 .. (112, 127쪽)
파랑은 모든 목숨을 살리는 빛깔입니다. 우리는 흔히 ‘푸른 빛깔’이 모든 목숨을 살린다고 여길 테지만, 푸름과 파랑은 목숨을 살리는 구실이 다릅니다. 푸름은 ‘밥’으로 목숨을 살리고, 파랑은 ‘바람’으로 목숨을 살립니다. 아니, 푸름은 목숨을 살린다기보다 몸을 살찌우는 밥입니다. 파랑은 그야말로 목숨을 살리는 ‘숨결’입니다. 왜냐하면,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파란 기운’을 가득 담아서 우리한테 새로운 숨결로 깃들거든요. 밥은 며칠을 굶거나 보름을 굶더라도 목숨이 안 끊어지지만, 바람(숨)은 몇 초만 끊어도 곧바로 목숨을 잃어요. 그만큼 파랑이라는 빛깔은 우리 목숨하고 크게 잇닿습니다.
.. 한옥의 즐거움은 마당을 거닐거나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예요 … 통지표를 보다 보니 엄마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성적이 뚝 떨어져 의기소침한 나를 편안히 대해 주던 엄마 .. (138, 142쪽)
이야기책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책이름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어떤 날일까 하고 수수께끼를 내고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풉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날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남이 나를 종(노예)처럼 부리면서 시키는 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로 우뚝 서서 홀가분하게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날이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답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빙그레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날이라면, 우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지으면 모든 날이 기쁨입니다. 사랑을 지으면 어느 날이나 노래입니다. 꿈을 지으면 온 날이 웃음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내 삶을 잃거나, 내 사랑을 잊거나, 내 꿈을 놓친 날입니다.
하늘을 보면서 바람을 마셔요. 별을 보면서 바람을 느껴요. 해님과 마주보면서 바람을 누려요. 구름하고 동무하면서 바람을 불러요. 내 가슴 가득 파랗게 눈부신 바람을 담으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해요. 그러면, 오늘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아침을 열 수 있어요. 4348.3.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문학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