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 - 고집불통 작가와 제멋대로 화가의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여행
맥 바네트 글, 애덤 렉스 그림, 고정아 옮김 / 다산기획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 같은 그림책을 놓고 쓴 이 글은 <아침독서신문>에 실으려고 썼으나, 싣지 못한 글입니다. 앞서 올린 글과 이 글은 '같은 책'을 읽은 느낌을 담은 글이지만, 이야기를 푸는 얼거리가 사뭇 다릅니다. 따로 떼어서 읽어 보시면, 이야기를 어떻게 달리 풀어내는가를 느끼시리라 생각해요 ..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6 ㄴ



이야기를 짓는 사람 ㄴ

―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

 맥 바네트 글

 애덤 렉스 그림

 고정아 옮김

 다산기획 펴냄, 2015.1.12.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어른은 ‘어버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어른은 ‘그냥 어른’이고, 아이를 낳은 어른만 ‘어버이’입니다. 어버이가 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를 헤아려서 이모저모 새로 짓거나 마련하거나 가꿉니다. 이를테면, 아기가 찾아오는 집에 아기가 깃들 방이나 잠자리를 마련하고, 배냇저고리를 새로 짓지요. 어머니는 아기한테 젖을 물릴 텐데, 젖을 뗄 무렵에는 아기가 먹을 밥을 마련해요. 아기가 쓸 수저와 밥그릇을 장만하지요. 아기는 젖만 먹고 자라지 않으니, 어버이는 노래를 들려주고 여러모로 아기하고 놀려 합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혼자 서거나 걷거나 돌아다니지 못하니, 곁에서 어버이가 놀아 주면서 놀잇감을 건네기도 해야 합니다. 게다가 아이가 말을 익힐 수 있도록 어버이는 아기 곁에서 말을 들려줍니다. 어버이가 여느 때에 쓰는 여느 말이 바로 아기가 배우면서 물려받는 말입니다.


  아기 티를 벗고 아이가 되면, 그동안 어버이한테서 듣고 배운 말을 이리 엮고 저리 짜서 ‘아이 나름대로 새로운 말’을 빚습니다. 어버이가 거친 말을 쓴다든지 영어를 자주 쓰면, 아이도 거친 말을 똑같이 쓸 뿐 아니라 영어도 자주 써요. 어버이가 고운 말을 쓴다든지 정갈한 말을 늘 쓰면, 아이도 고우면서 정갈한 말을 써요.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노래를 듣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켜면 온갖 이야기가 흐르고 갖가지 노래가 나옵니다. 그런데, 백 해쯤 앞서만 해도 모든 아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언제나 시골마을에서 시골사람이 시골일을 하다가 부르는 시골노래를 들으면서 시골살이를 배웠어요. 어버이는 딱히 아이한테 흙짓기나 집짓기나 옷짓기를 가르치지 않지만, 아이는 늘 어버이 곁에서 호미질과 괭이질과 바느질과 베틀질과 절구질과 낫질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하나씩 배우고 물려받아요. 놀이도 노래도 춤도 저절로 물려받고 배우면서 ‘제 가락’이 싱그럽습니다. 다만, 이제 이러한 삶길은 거의 끊어졌어요. 민속학자는 두멧자락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삶노래(민요)’를 받아적어서 남기려 하는데, 삶노래는 책에 안 적혔어도 수천 수만 해를 곱게 이으며 흘렀습니다.


  그림책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다산기획 펴냄,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줄거리가 따로 없’이 ‘이야기를 그때그때 새로 짓는 얼거리’를 ‘줄거리’로 보여줍니다. 어딘가 알쏭달쏭하다 할 만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스스로 새롭게 지어서 즐겁게 누렸다는 대목을 재미난 짜임새와 앙증맞은 인형과 그림으로 장난스레 보여주어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는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다 언제나 새로운 틀로 거듭나는 이야기예요. 줄거리는 똑같아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맛이 달라지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 맞추어 이야기결을 바꾸며, ‘이야기하는 날과 때’를 살펴 이야기꽃을 새로 피웁니다. 그러니까,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는 끝이 날 수 없습니다. 그림책은 마흔 몇 쪽에서 ‘끝’이라고 나오지만, 우리는 이 다음 이야기를 우리 나름대로 새로 지어서 붙일 만합니다. 그림책 뒤에 하얀 종이나 파란 종이를 붙여서 어버이와 아이가 새로운 이야기를 그리고 써도 재미있어요. 이 그림책은 ‘그림책을 즐기는 길’은 아주 많다고 넌지시 알려줍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새 이야기를 지어서 함께 나눌 수 있다고 가만히 보여줍니다.


  삶을 짓는 사람이 이야기를 짓습니다. 삶을 날마다 새롭게 짓기에, 이야기를 언제나 새롭게 짓습니다. 주어진 노랫말대로만 노래를 부를 수 있으나, 노랫말을 내 나름대로 고쳐서 새로 부를 수 있습니다. 노랫가락도 우리 나름대로 새로 짓거나 붙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끝이 없고, 꿈은 끝이 없으며,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끝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오늘 하루도 기쁘게 불러요.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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