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419) 귀하
편지나 소포에 적는 말을 살피면, 지난날에는 ‘귀하(貴下)’라는 한자말을 널리 썼으나, ‘님’이라는 한국말도 함께 썼고, 오늘날에는 ‘귀하’라는 한자말보다는 ‘님’이라는 한국말을 조금 더 널리 쓴다고 느낍니다. 아마 앞으로는 ‘님’이라는 낱말로 자리를 잡고 ‘귀하’라는 한자말은 자취를 감추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맞은편이나 다른 사람을 섬기거나 높이거나 모시려고 할 적에는 ‘님’을 붙여서 ‘벗님’이나 ‘이웃님’이나 ‘임금님’처럼 쓰거든요.
아무개 님 귀하 (x)
아무개 귀하
→ 아무개 님
→ 아무개 앞
어떤 곳에서는 “님 귀하”를 함께 쓰기도 합니다. 둘을 함께 쓰면 겹말이 되는 줄 모르는 셈입니다. 편지나 소포를 받는 쪽이나 보내는 쪽이 서로 가깝거나 살가운 동무라고 하면 ‘앞’을 쓰기도 합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편지나 소포를 띄운다면, 이때에도 ‘앞’을 쓸 수 있을 테지요. 4334.11.24.흙/4348.2.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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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425) 까닭에
까닭에 교과서 속의 미국의 표상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염시키느냐가 중요한 관건인데, 그것은 각 교과마다 통일된 것이 아니었다 … 까닭에 모든 교과서의 앞에 실렸다가
《이치석-전쟁과 학교》(삼인,2005) 141, 164쪽
까닭에
→ 그래서
→ 이리하여
→ 이 때문에
→ 이런 까닭 때문에
…
‘까닭’은 이름씨일 뿐, 이음씨가 아닙니다. ‘까닭’은 홀로 글 맨 앞에 올 수 없습니다. 글 첫머리에 이 낱말을 쓰려 한다면 “이런 까닭 때문에”나 “그러한 까닭이 있어”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이 보기글에서 첫머리를 열 적에는 ‘그래서’나 ‘이리하여’나 ‘이 때문에’ 같은 말마디를 넣습니다. 4338.8.7.해/4348.2.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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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과서에 나온 미국 모습을 아이들한테 어떻게 그려 넣느냐가 큰일이었는데, 이는 교과마다 똑같지는 않다 … 이리하여 교과서마다 앞쪽에 실렸다가
“교과서 속의 미국의 표상(表象)을”은 “교과서에 나오는 미국 모습을”로 손질하고, “어떻게 전염(傳染)시키느냐가”는 “어떻게 그려 넣느냐가”나 “어떻게 퍼뜨리느냐가”나 “어떻게 물들이느냐가”로 손질합니다. “중요(重要)한 관건(關鍵)인데”는 “큰일인데”로 손보고, ‘그것은’은 ‘이는’으로 손봅니다. “각(各) 교과마다”는 겹말이니 “교과마다”로 바로잡습니다. “통일(統一)된 것이 아니었다”는 “똑같지는 않다”로 다듬고, “모든 교과서의 앞에”는 “모든 교과서 앞에”나 “교과서마다 앞쪽에”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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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622) 가져오다 1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기초한 동서 간의 교류 증대야말로 동유럽의 체제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전망이 옳았던 것이다
《곤도 다카히로/박경희 옮김-역사교과서의 대화》(역사비평사,2006) 70쪽
체제에 변화를 가져온다
→ 틀을 바꾼다
→ 틀을 뜯어고친다
→ 틀을 새롭게 한다
→ 틀을 고칠 수 있다
…
요즈음 한국말사전 말풀이를 보면 ‘가져오다 (2)’을 “어떤 결과나 상태를 생기게 하다”로 풀이합니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살피면, ‘가져오다’를 이처럼 풀이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고 1990년대가 되고부터 한국말사전에서 “어떤 결과나 상태를 생기게 하다” 같은 뜻을 나타낸다는 ‘가져오다’를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변화를 가지고 온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가져오다(가지고 오다)’는 물건을 가지고 온다고 하는 자리에서만 쓰는 낱말입니다. 아마 빗대는 말로 “꿈을 가져오다”나 “사랑을 가져오다”처럼 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꿈이나 사랑을 가지고 온다고 하면, 저쪽에 있는 꿈과 사랑을 이쪽으로 가지고 온다는 뜻입니다. 생기게 하거나 만든다는 뜻으로 ‘가져오다’를 쓰지 않습니다.
“변화(變化)를 생기게 한다”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변화가 나타나게 한다’는 소리이고, 이는 ‘바꾼다’는 소리입니다. ‘새롭게 하다’나 ‘뜯어고치다’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4339.10.3.불/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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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과 관계를 고치며 동서 사이에 교류를 늘리는 일이야말로 동유럽 틀을 바꾼다는 생각이 옳았다
“동유럽 국가(國家)들과의 관계개선(關係改善)에 기초(基礎)한”은 “동유럽 나라들과 관계를 고치며”나 “동유럽 나라들과 사이좋게 지내며”로 손질하고, “동서 간(間)의 교류 증대(增大)야말로”는 “동서 사이에 교류를 늘리는 일이야말로”로 손질합니다. “동유럽의 체제(體制)”는 “동유럽 틀”이나 “동유럽 얼거리”로 손보고, “전망(展望)이 옳았던 것이다”는 “생각이 옳았다”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