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31. 슬픈 사진과 기쁜 사진
사건이나 사고를 다룬다고 하는 보도사진이나 다큐사진은 으레 ‘충격(衝擊)’이 될 만한 사진으로 가려 합니다. ‘충격’은 “슬픈 일이나 뜻밖의 사건 따위로 마음에 받은 심한 자극이나 영향”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크게 움직이도록 이끄는’ 일이 ‘충격’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이나 사고를 크게 알아보거나 알아채도록 이끌어서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보여주는 사진이, 어느 모로 본다면, 보도사진이나 다큐사진이라 할 만합니다.
신문이라든지 다큐멘터리를 보면, 으레 이런 사진을 넣으려고 몹시 애씁니다.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여기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모습을 찍기에 ‘놀라운’ 사진이거나 ‘훌륭한’ 사진이거나 ‘뜻있는’ 사진이 될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왜 ‘말’로 할 적에는 안 믿다가 ‘사진’으로 보여줄 적에는 믿는다고 할까요? 말로만 하면 거짓이라고 여길까요? 사진으로는 거짓을 꾸미지 않을까요? 무슨 일을 하다가 찍혔는지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잘못 생각할 수 있으며,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이 엉뚱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땅바닥에 구부정하고 앉아서 몸을 폭 숙인 아이는, 배고파서 이리 있을 수 있으나, 다리가 아파서 이리 있을 수 있고, 졸려서 이리 있을 수 있으며, 놀이 삼아 이리 있을 수 있고, 그냥 이리 있을 수 있으며, 땅바닥을 기는 작은 벌레를 보려고 이리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스스로 가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밝힐 수 없습니다. 쪼그려앉아서 땅바닥을 바라보며 몸을 폭 숙인 아이 뒤에 커다란 독수리가 한 마리 있다면, 이러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놓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겠는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사진은 어느 한 가지 모습을 빌어서 온 삶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어느 한 가지 모습을 잘라서 그저 어느 한 가지 모습만 어렴풋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참과 거짓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사이라 할 만합니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데 내 뒤에 독수리가 사뿐히 날아와서 앉아서 쥐를 한 마리 잡아챈 뒤 다시 날아오를 수 있어요. 그저 그뿐입니다. 그러나 ‘그 사진을 찍은 그곳’에 있지 않은 우리들은 그저 ‘사진에 나온, 딱 한 가지로만 잘린 모습’을 보면서 ‘이 사진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풀어내야’ 합니다.
슬픈 사진과 기쁜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놀라운 사진과 안 놀라운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모두 이야기를 담은 사진일 뿐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사진 한 장을 보여줍니다. 이야기를 열려고 말 한 마디를 먼저 꺼냅니다. ‘말’로 했을 때에 마음을 연다면, ‘사진’을 보여줄 때에도 마음을 엽니다. ‘충격’스럽다는 사진이 있어야만 믿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믿는 셈일까요? ‘충격’을 믿는 셈일까요, 사건이나 사고를 믿는 셈일까요, 사진을 믿는 셈일까요, 아니면 ‘사진 찍은 사람이 하는 말’을 믿는 셈일까요? 4348.2.2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