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87) 손빵


 수제(手製) : 1. 손으로 만듦 2. = 수제품

 handmade :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만든, 수제의



  읍내 빵집에서 빵을 한 점 장만해서 집으로 옵니다. 빵을 싼 비닐봉지에 어떤 글씨가 적혔는지 처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살피니 알파벳으로 ‘hand made’라 적혔습니다. 이 영어는 한 낱말일 텐데 띄어서 적었어요.


  시골 읍내 빵집에서 비닐봉지에 적은 영어를 한참 들여다보며 생각했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빵집에서 손이 아닌 기계로 빵을 굽나 싶어 아리송합니다. 오븐이라는 기계에 넣기는 할 테지만, 반죽은 손으로 할 테고, 모양도 손으로 낼 테니까 ‘손으로 빚지 않는’ 빵이란, 그러니까 처음부터 ‘기계로 찍는’ 빵이란 없으리라 느낍니다.


  영어 ‘핸드메이드’가 한국에 퍼지기 앞서 한자말 ‘수제(手製)’가 널리 쓰였지 싶습니다. 다만, 이 한자말은 한자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썼습니다. ‘수제’이든 ‘수제품’이든 ‘수예(手藝)’이든 모두 한자를 아는 사람들이 지어서 쓴 낱말입니다. 그리고, 한자를 아는 사람은 손으로 삶을 짓지 않았습니다. 한자를 아는 사람은 양반이나 지식인이나 관청 일꾼이나 임금 같은 이들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던 거의 모든 사람은 한자를 쓰지 않았고 한자를 알지 않았으며 한자로 낱말을 짓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빚다 . 손으로 짓다

 손빚기 . 손짓기

 손일 . 손놀이


  수천 해나 수만 해에 걸쳐 여느 시골사람이 쓴 낱말이라면 “손으로 빚다”나 “손으로 짓다”입니다. 시골 읍내 빵집뿐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 있는 빵집에서도 “손으로 빚는 빵”이나 “손으로 굽는 빵”을 선보여서 팝니다.


 손으로 빚는(빚은) 빵 . 손으로 굽는(구운) 빵

 기계로 찍는(찍은) 빵 . 기계로 굽는(구운) 빵


  ‘수제’는 두 글자이나 ‘핸드메이드’는 다섯 글자입니다. ‘수제빵’이라 하면 세 글자요, ‘핸드메이드 빵’이나 ‘헨드메이드 브레드’라 하면 글잣수는 더 길어요. ‘손으로 빚는 빵’이나 ‘손으로 굽는 빵’으로 적으면 영어를 쓸 때하고 글잣수가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한국말로 적으면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고, 아이와 어른 누구나 쉽게 알아볼 만합니다.


 손빵


  손으로 어떤 것을 짓거나 빚는다고 한다면 아주 단출히 ‘손-’만 붙여서 ‘손빵’처럼 쓸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한자말 ‘수제빵’보다 글잣수가 하나 적어요.


  어떤 낱말을 쓰든 다 괜찮습니다. 다만, 어떤 낱말을 쓰든 찬찬히 생각하면서 삶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나 스스로 어느 삶자리에 서서 어떤 이웃과 기쁨을 나누려고 쓰는 낱말인지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어를 쓰거나 한자말을 써야 어딘가 멋스럽거나 ‘있어 보인다’고 여기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곰곰이 짚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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