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5년 2월호에 실은 '사진책도서관(시골도서관)' 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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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씨앗 한 톨이 나무로 자라



  씨앗 한 톨을 심어서 열매를 거두려면 적어도 석 달을 기다립니다. 남새 씨앗이라면 석 달 뒤에 얻을 만한데, 나무 씨앗이라면 싹이 터서 줄기를 올리기까지 여러 해를 기다립니다. 능금이나 배나 포도를 얻으려면 꽤 여러 해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거둔 사람은 밥알 하나를 남길 일이 없고, 능금 한 조각을 흘릴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손수 심고 가꾸면서 깊고 넓게 사랑을 담았으니까요. 손수 씨앗을 심은 아이한테는 “밥알 흘리지 말고 먹으렴” 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가 먼저 몸으로 알고 마음으로 헤아립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 한 권으로 한 학기나 한 해를 가르칩니다. 모든 과목을 놓고 한 학기나 한 해에 걸쳐서 천천히 가르치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교과서는 쓰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학교 운동장 한켠에 주차장이나 강당이나 체육관이나 기숙사를 두는 곳은 많지만, 학교 운동장 한쪽에 텃밭이나 논을 두는 곳은 아주 드무니까요.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우유팩 꽃그릇을 두어 콩씨 한 톨을 심어서 아이가 손수 돌보면서 가꾸도록 이끈다든지, 학교 둘레를 꽃밭과 나무숲으로 가꾸면 참 고우리라 봅니다.


  밥 한 그릇을 얻으려면 볍씨를 심어서 돌보아야 합니다. 콩밥 한 그릇을 얻으려면 볍씨와 함께 콩씨를 심어야 합니다. 팥죽을 얻으려면 팥씨를 심어야 하고, 새알심으로 쓸 쌀가루나 수숫가루를 얻자면 수수씨를 심어야지요. 그리고, 볍씨를 심어서 거두었으면 겨를 벗겨야 할 테고, 쌀가루를 쓰자면 쌀알을 곱게 빻아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아이를 돌보면서 가르치자면 꽤 긴 나날을 보냅니다. 예부터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잘 크기를 빌’면서 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어요. 가만히 보면, 나무는 아이와 함께 자랍니다. 아이가 태어날 적에 심은 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면, 아이가 제법 철이 들 무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한테 삶을 가르치고 보여주면서 사랑을 물려주어 아이가 손수 꿈을 생각할 만한 즈음에 나무 열매를 얻는 셈입니다.


  얀 리고 님이 쓴 《바다가 아파요》(두레아이들,2015)라는 어린이책을 읽다가 “소비자의 수요가 늘자 농산물 생산도 늘어났는데, 이와 함께 비료 사용도 늘어났어요. 그래서 많은 질산염이 빗물에 씻겨 하천으로 흘러들었는데(99쪽)” 같은 대목을 봅니다. 도시에서는 ‘농산물’이라든지 ‘수요’나 ‘생산’ 같은 말을 씁니다. 도시에서는 볍씨도 능금씨도 손수 심어서 거두지 않으니까요. 돈으로 사고판다고 여기고 경제성장을 헤아리니 ‘농산물 거래’와 ‘수지 타산’을 따집니다. 아무튼, 도시에서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밥 먹을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도시에는 논밭이 없을 뿐 아니라, 소금밭이나 뻘밭도 없어요. 도시에서는 물고기를 낚지 못하고, 소나 돼지나 닭을 치지 못합니다. 들이나 숲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와 달리 시골에는 사람이 크게 줄어드는데, 도시로 내다 팔아야 하는 곡식과 열매는 외려 더 늘어납니다. 얼마 안 되는 시골지기가 아주 많은 도시내기를 먹여살립니다. 비료를 많이 쓰고, 농약을 자꾸 치며, 기계를 더 부릴밖에 없습니다. 들과 숲에 널린 나물을 캘 틈이 없습니다. 지난날에는 다 같이 흙을 밟고 만지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들일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입을 꾹 다문 채(농약이 입에 들어가니까요) 귀는 꽉 막은 채(기곗소리가 시끄러우니까요) 일거리가 많고 넘쳐서 바쁩니다.


  《바다가 아파요》를 더 읽습니다. “바다 양식에서는 주로 포식 물고기를 길러요. 그래서 다른 야생 물고기를 많이 잡아 먹이로 공급해야 하는데, 이것은 남획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요. 게다가 양식장에서 새어 나온 배설물과 병균, 화학물질, 항생제 등이 주변 바다로 흘러들죠(130쪽).” 문득 우리 집 큰아이가 떠오릅니다. 마당 한쪽에 탱자나무를 옮겨심고 나서 아이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시골에서는 그림을 그릴 모습이 둘레에 가득합니다. 여름에는 마루문을 열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멧새를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겨울에는 마당에 서서 나무와 들빛을 살펴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눈이 와서 살짝 쌓이면 눈밭에서 놀다가 하얗게 바뀐 마을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동생과 함께 세발자전거로 비탈을 오르내리며 놀고 나서 이 모습을 가만히 떠올리며 그림을 그립니다. 어린 복숭아나무를 쓰다듬으며 인사한 뒤 손끝으로 닿는 느낌을 헤아리며 그림을 그립니다. 여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고, 가을에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습니다. 겨울에는 찬바람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고, 봄에는 새봄맞이 작은 꽃송이 노래를 그림으로 담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콩 한 톨을 심고 나서 콩꽃이 피고 콩알이 새로 맺을 때까지 날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산 목숨’과 ‘밥 이야기’를 새롭게 배울 만하리라 느낍니다. 손수 심은 콩 한 톨로 얻은 수북한 콩알로 밥을 지을 수 있고, 콩알을 가루로 내어 다른 먹을거리를 빚을 수 있습니다. 손수 심고 거두며 손질한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글로 쓰면, 이러한 글이 바로 ‘문학’입니다.


  씨앗 한 톨이 나무로 자라서 숲을 이룹니다. 숲을 이루기까지 꽤 오랜 나날이 걸려, 어쩌면 사람들은 작은 씨앗 한 톨로 이룬 숲을 못 볼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씨앗을 꾸준히 심고 돌보면, 할머니나 할아버지 나이가 될 무렵에 멋진 숲을 지어서 새로운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어요. 아기가 태어나 어른이 되는 동안 철이 듭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고 달리기를 하다가 조잘조잘 말문을 트고 씩씩하게 도끼질이나 톱질을 하기까지 꽤 오랜 나날을 기다려야 할 테지만, 철이 들어 둘레를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는 아이는 집과 마을과 이 땅을 새롭게 짓습니다. 작은 씨앗이 집과 마을을 살리고, 작은 아이가 보금자리와 지구를 살립니다.


  공해와 환경 이야기를 책으로 가르칠 수 있고, 책으로 가르치는 인문지식도 뜻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해와 환경이 무엇인지 따로 안 가르치더라도 씨앗심기를 보여준다면, 씨앗을 함께 심는다면, 풀과 꽃과 나무를 함께 돌본다면, 손수 심은 씨앗을 함께 거둔다면, 손수 심고 거둔 씨앗으로 함께 밥을 지어 먹는다면, 아이와 어른은 삶과 사랑과 꿈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환하게 웃으리라 느껴요. 4348.1.1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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