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숲’ 책읽기
노래방에 간다. 내가 스스로 노래방에 가려고 한 적은 마흔두 해를 살면서 처음이다. 장모님과 장인어른한테 말을 여쭈고, 곁님 막내동생이랑, 곁님 동생하고 함께 삶을 짓는 곁님한테 말을 물어, 모두 다섯 사람이 노래방에 간다.
어떤 노래를 부를 마음이기에 노래방에 가는가? 모른다. 다만, 나는 춤을 보여주고 싶어서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춤사위가 나를 살리고, 내가 춤사위로 살아날 적에, 내 삶이 꽃으로 피어나는 이야기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노래방에 간다. 나와 곁님 둘레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노래방에 간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춤을 추다가 문득 나도 노래를 몇 가락 뽑아야겠다고 느낀다. 그러면 어떤 노래를 부르면 될까? 처음에는 신해철 노래가 하나 떠오르고, 다음으로는 이선희 노래가 하나 떠올랐으며, 김현식 노래 하나와 심수봉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이 가운데 이선희가 부른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를 소릿결(키)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부른다. 여느 사내는 이 노래를 부르기 아주 어렵다고 하지만, 나는 오늘 이곳에서 이 노래가 어렵다느니 쉽다느니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부른다고 생각하기에 부른다.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데,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소리를 뽑’기 때문이다. 나한테 있는 숨결을 뽑아서 바람처럼 실어 나르기 때문이다. 모든 소릿결을 아주 부드러우면서 거침없이 쏟아낸다. 나 스스로 내 노래에 놀라면서, 나 스스로 내 새로운 노래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면서 흔히들 소리를 쥐어짜려고 온몸을 비틀거나 허리룰 숙이곤 하지만, 나는 그저 가만히 선 채, 게다가 춤을 온몸으로 신나게 추면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른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다가 터지도록 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아주 새롭게 배운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겨레가 부를 노래는 ‘죽음길노래(장송곡)’ 같은 멍청한 〈애국가〉가 아니라, 가슴이 뛰다가 터지도록 북돋우는 〈아름다운 강산〉이어야겠구나 하고 느낀다.
그러나, 하나가 걸린다. ‘강산’이란 무엇인가? 이 낱말은 뜬구름이다. ‘없는 구름’이다. 우리 겨레는 ‘강산’ 따위 낱말을 안 썼다. 중국이라면 썼을는지 모르나, 한국사람은 먼 옛날부터 이런 멍청난 낱말을 안 썼다. 그러면 한국말은 무엇인가? ‘숲’이다. 냇물이 흐르고 골짝이 깊은 곳은 ‘숲’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아름다운 숲〉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노랫말을 손질해서 우리 아이들과 날마다 이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나는 내가 되어 아름다운 삶을 짓고, 나와 너, 그러니까 어버이와 아이는 함께 이곳에서 아름다운 숲을 짓는다. 4348.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