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4 - 깊이 생각하다
우리는 누구나 여러모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저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깊이 생각하기도 하며, 얕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넓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좁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크게 생각하거나 작게 생각할 만하고, 함부로 생각하거나 살가이 생각할 만합니다.
깊이 생각한다면, ‘깊은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깊이 생각하기에 ‘깊은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깊은생각’처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낱말을 안 쓰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를 안 바라는지, ‘깊은생각’이라는 낱말은 안 쓰고 ‘숙고(熟考)’라는 한자말을 써요.
한자말 ‘숙고’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곰곰이 잘 생각함”을 뜻한다 하고, ‘熟’은 ‘익다’를 가리켜요. 곧, “익은 생각”이 ‘깊은생각’은 셈이니, 익지 않은 날것에 찬찬히 불기운을 넣어서 익히는 일을 빗대어 ‘숙고’라 하고, 익지 않은 생각이 익을 수 있도록 찬찬히 따순 숨결을 불어넣는 일이 ‘숙고’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깊이 할 적에는, 말 그대로 ‘깊은생각’일 수 있으며, ‘익은생각’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말로 쓰면 내 마음을 한결 또렷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저 깊이 생각하기에 ‘깊은생각’이고, 생각이 잘 익어서 따스하도록 하기에 ‘익은생각’입니다. 생각은 ‘넓은생각’이나 ‘너른생각’이 될 수 있습니다. ‘큰생각’이나 ‘거룩생각’이나 ‘훌륭생각’이 될 수 있어요.
생각은 어느 때에 괴롭거나 힘든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때에는 ‘고민(苦悶)’이라고도 하는데, 이 한자말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을 뜻한다고 해요. ‘苦’는 “괴로움”이고, ‘悶’은 “번민”이에요. 그런데 ‘번민(煩悶)’은 “괴로움”으로 고쳐쓸 한자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말밑을 살피면, 한자말 ‘고민’은 “괴로움 + 괴로움”이 될 테지요.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기에 한자말을 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고민’이나 ‘번민’ 같은 낱말이 일본을 거쳐서 물결처럼 들어오기 앞서 어떤 낱말을 썼는지 헤아리면, ‘걱정’이나 ‘근심’이나 ‘끌탕’이 있습니다. 될는지 안 될는지 몰라서 애를 태우다가 그만 마음이 괴롭고 마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인 ‘걱정·근심·끌탕’입니다.
차근차근 돌아봅니다. 깊이 생각하면 스스로 수수께끼를 풉니다. 실마리를 스스로 얻지요. 수수께끼는 어느 똑똑한 사람이 풀어 주지 않아요. 스스로 똑똑한 마음이 될 때에 수수께끼를 낼 수 있고, 수수께끼를 풀 수 있습니다. 모든 실마리는 나한테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기에 수수께끼를 못 풉니다. 수수께끼를 못 풀기에 수수께끼를 짓지 못해요. 수수께끼를 스스로 짓지 못하는 사람은 실마리를 스스로 못 얻는 사람이고, 실마리를 스스로 못 얻으니, 언제나 괴롭습니다. 괴로운 마음이기에 수수께끼는 늘 어렵기만 하고, 늘 어렵기만 한 수수께끼인 터라 자꾸 맴돌거나 떠돕니다.
‘깊은생각’은 한 가지를 놓고 자꾸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는 마음이 됩니다. ‘깊은생각’은 한 가지가 제대로 풀릴 실마리로 나아갑니다. ‘걱정’은 한 가지를 놓고 제대로 돌아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만 게으르고 말아, 실마리를 푸는 몫을 남한테 떠넘기고 싶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괴로운 데로 나아가는 걱정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우리 몫입니다.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다만, 한쪽은 실마리를 푸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괴롭고 아프면서 힘든 길입니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