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들은 이야기
서울에 얼추 다섯 달 만에 볼일을 보러 와서 고속버스역에서 신논현역 쪽으로 걸어가는데, 내 앞에서 걸어가던 아가씨 셋이 꽤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이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온다. 어라, 이 이야기를 내가 왜 듣지, 하고 생각하는데 고스란히 들린다. 찻길에서 자동차가 싱싱 달리며 시끄러운데.
내 앞에서 걷던 아가씨 셋은 “아파트에서 하룻밤 잘 때하고 시골집에서 하룻밤 잘 때하고 얼마나 다른데. 진짜 좋다고.” “그런데, 아무 시골집에서 잘 수 있나? 시골에 아는 사람 있니?” 이 말까지 듣고 이들을 앞지른다. 뒤에 더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이제 안 들린다. 다만, 한 가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사는 아가씨들은 아마 시골집에서 하룻밤 묵은 듯하고, 이렇게 하룻밤 묵으면서 새로운 삶을 겪거나 맞아들였구나 싶다.
그러면, 시골집이 왜 좋은지를 얼마나 알까. 시골집이 어느 대목에서 좋은가를 어느 만큼 알까. 시골집이 좋다면, 도시에 있는 아파트는 무엇이 안 좋고, 어느 대목에서 안 좋은가를 어느 만큼 알까.
오늘날 수많은 도시사람은 도시에 있는 이웃을 많이 알거나 사귄다. 도시에서 아파트로 흔히 나들이를 다닐 테며, 온갖 까페나 밥집이나 찻집을 드나들리라. 도시에서는 이곳저곳 다니는 곳이 많을 테지만, 저녁이 되면 불빛 없이 깜깜한 시골집 가운데 ‘가까이 알아’서 가 볼 만한 데는 거의 모르리라. 하룻밤 아닌 여러 날 묵을 만한 집은 거의 모를 테며, 시골집에서 시골물을 마시고 시골바람을 쐬면서 지내기란 매우 어려울 테지.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하나도 안 가르치고,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 드물며, 책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잘 안 나온다. 여름에 바지런히 나무를 해서 겨울에 나무를 지펴서 불을 때는 삶을 ‘말로는 들어’ 본다 한들, 몸으로 겪지는 못하리라. 4348.1.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