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길
사진사관학교 일우 엮음, 김홍희 기획 / 디자인하늘소(Designhanulso)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201



‘한길’인가 ‘일방통행’인가

― 이바구길

 김홍희·사진사관학교 일우

 디자인하늘소 펴냄, 2013.7.25.



  사진책 《이바구길》(디자인하늘소,2013)을 읽습니다. ‘사진사관학교 일우’에서 사진을 배우는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몇 장씩 찍은 사진을 책 한 권으로 그러모았습니다. ‘이바구길’은 부산 동구에 있는 산복도로를 걷다가 만난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넘긴 뒤, 책끝에 붙은 말을 읽습니다.


 “부산 동구의 ‘이바구길’은 고통을 감내한 자들이 자존감을 밝히는 길이다. 절망 속에서 울부짖는 희망도 아니며 실오라기 같은 자존심도 아니다. 도도히 고통을 딛고 선 자들의 자기 독백이다. 한숨도 아니며 한탄도 아니다. 모진 세파를 겪어 온 자신을 담담히 드러내는 길이다. 자랑할 것도 없지만 부끄럽지도 않다(김홍희).”


  사진을 읽으면서 ‘사진에 찍은 동네’가 어떤 이야기를 담으면서 어제에 이어 오늘이 흐르는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어느 곳을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눈길로 바라보았는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이 사진에 나오는 이웃’을 ‘사진을 찍은 사람’이 어떻게 마주하려 했는가를 짚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바구길 사람’일 수 있고, ‘이바구길 길손’일 수 있으며, ‘이바구길 나그네’일 수 있는 한편, ‘이바구길 구경꾼’일 수 있습니다. ‘사진사관학교 일우’ 사람들과 ‘김홍희’ 님은 어떤 사람으로서 이바구길을 걸었을까요? 어느 날 하루 걸었을까요? 여러 날에 걸쳐 걸었을까요? 여러 달이나 여러 해에 걸쳐 걸었을까요?


  이바구길을 어느 만큼 걷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봄에 걷든 가을에 걷든, 여름에 걷든 겨울에 걷든, 딱히 대수롭지 않습니다. 열 시간을 걷든 한 시간을 걷든, 날마다 몇 시간씩 걷든, 어느 하루 꼭 십 분을 걷든, 모두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걷는 시간’으로도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걷는 시간’과 맞물리는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마음결’에 따라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마음결이 포근한 사람은 열 시간을 걷든 십 분을 걷든 포근한 숨결이 감도는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씨가 착한 사람은 몇 해를 걷든 하루를 걷든 착한 눈빛이 서린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자리가 어두운 사람은 몇 달을 걷든 몇 분을 걷든 어두운 기운이 담긴 사진을 찍습니다.


  이 사진을 찍기에 훌륭하지 않고, 저 사진을 찍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과 생각과 꿈과 사랑이 깃듭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마다 마음과 생각과 꿈과 사랑이 다르니, 이러한 숨결을 좋다 나쁘다 잘됐다 안됐다 하고 가를 수 없습니다.


  “부산 동구의 이바구길을 일우 친구들이 찍었다. 이야기의 속성처럼 긍정적인 시선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떤 사진은 현실을 개탄하기도 한다. 모두 애정에서 출발했지만 관심의 표명은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이야기이고 그래서 다양한 삶이다(김홍희).”


  사진책 《이바구길》은 ‘여느 출사 사진책’하고 다릅니다. 사진을 깊고 넓게 배우려는 이들이 함께 배우고 함께 생각하면서 함께 길을 걷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다만, 이 사진책에는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 한 가지 이야기만 맴도는구나 싶습니다. 사진이란, ‘찍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와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를 함께 담기에 사진이 되는데, 사진책 《이바구길》에서는 ‘찍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에 치우쳤구나 싶어요.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가 무엇인지 여러모로 어렴풋합니다.


  볕이 좋은 날, 바다가 바라보이는 비탈골목집 옥상에 넌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는 사진에서 어렴풋하게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가 드러날 듯 말 듯하다가 끝내 이 사진에서도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는 좀처럼 못 드러났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찍히는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가 드러나지 못했다고 해서 ‘안 좋은 사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진입니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가를 수 없는 사진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한길이고, 어느 모로 보면 일방통행입니다. 볕이 좋은 날에 옥상에 빨래를 넌 사람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무엇을 생각하며 빨래를 널었을까요? 이러한 이야기와 손길과 숨결까지 사진에 담지는 않았구나 싶어, 사진책 《이바구길》은 어느 모로 보면 한길이지만, 어느 모로 보면 일방통행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4348.1.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