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여자회 방황 2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48



서툴게 헤매는 아이들

― 제7여자회 방황 2

 츠바나 글·그림

 박계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7.30.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 똑같은 바람이 부는 날은 없습니다. 드세다 싶도록 바람이 부는 날에도 똑같이 드센 바람이 부는 때는 없습니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찬바람이 있지만, 한참 불다가 한동안 조용한 찬바람이 있고, 햇볕 한 줌 없이 몰아치는 찬바람이 있으며, 구름 한 점 없이 매서운 찬바람이 있습니다. 모든 찬바람이 잠들어 고요한 날이 있고, 매우 푹해서 마치 봄과 같은 날이 있어요.


  겨울 한복판에 서면서 볕과 바람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겨울은 날마다 어떤 이야기가 나한테 찾아오는지 헤아립니다. 바람이 불건 바람이 자건 마당에서 씩씩하게 노는 아이들을 헤아립니다. 둘이 씩씩하게 잘 놀다가 큰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는 놀라는 아이들을 헤아립니다. 찬바람을 먹으면서도 야무지게 꽃송이를 터뜨리는 동백나무를 헤아립니다. 동백나무 곁에서 함께 꽃을 피우는 들풀을 헤아립니다.




- “아, 역시 수업이란 건 따분한 거구나 하고 새삼.” “아, 그래?” “난 모르겠는데.” “하긴, 나도 모두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느낌을 즐기고 싶으니까, 따분한 것도 즐겨야지!” (16쪽)

- “다원우주 버튼인가?” “그게 뭔데?” “간단히 말하자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버튼이다. 나에게는 필요 없다. 마치코가 써도 좋다.” “뭐? 써도 좋다고 해도, 하긴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그보다 나는 좀더 자고 싶어. 30분은 더 잘 수 있고.” (29쪽)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서 자랍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새로운 삶을 바랍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거의 모든 어버이는 아이한테 새로운 삶을 물려주거나 보여주기보다는, 아주 손쉽게 유치원과 보육원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이내 학원을 찾아서 아이를 맡깁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어버이 손에서 자라거나 배우지 않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어버이 손에서 말을 물려받지 않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어버이 손에서 삶을 익히거나 얻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어 주는 어버이는 있되, 어버이 스스로 살아온 이야기를 오순도순 들려주는 어버이는 드뭅니다. 자가용을 장만해서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어버이는 있되, 마당이나 밭이나 숲을 마련해서 아이와 함께 푸른 들숨을 마시는 어버이는 드뭅니다. 문제집과 참고서를 아이한테 안기는 어버이는 있되, 아이와 함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삶을 생각하려는 어버이는 드뭅니다.





- “세계의 패턴은 몇 종류나 있다. 현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존재했겠지.” “과거에? 그럼 어딘가에서 죽었다는 거야? 그렇구나. 보통 죽으면 없어지는 겆. 없어진다는 건 좀 신기한 일이구나. 왠지.” (40쪽)

- “자, 다들 주목. 집안 사정 때문에 시미즈와는 오늘부터 약 7년간 이별하게 되었어요. 사회 시간에도 배웠겠지만, 얼마 전에 요코하마에 새로 생긴 냉동수면소에서 시미즈는 7년 동안 잠자기로 했단다.” (49쪽)



  츠바나 님 만화책 《제7여자회 방황》(대원씨아이,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둘째 권에서도 책이름에 걸맞게 ‘헤매는’ 아이들이 참말 헤매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헤맨다고 할 만한지 잘 모를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아이들한테서 삶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입시지옥이 아니면 취업교육만 받는 아이들한테서 사랑을 느끼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 “어라, 나 무슨 이상한 말 했나?” “카네 양에게는 7년 전이지만 시미즈에게 있어서는 어제 헤어지고 오늘 보는 거니까 여러 가지로 복잡할 거야.” (57쪽)

- “이런 사생활을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걸 알면 난 이제 못 살아!” “괜찮아요. 여기에서의 기억은 꿈꾼 것처럼 떠올리려고 할수록 점점 사라져 가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야!” “괜찬ㄶ아요. 아무도 안 봐 주는 것이 쓸쓸한 겁니다. 당신이 남몰래 노력할 때도 우리는 분명히 보고 있으니까요.” (73쪽)



  아이들은 무엇을 알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꿈꿀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누릴까요?


  더 짧은 치마를 입어야 멋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앞머리를 더 길면 멋있을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더 잘 알면 즐거울는지 궁금합니다. 시험문제를 하나 더 맞으면 기쁠는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성교육은 하지만, 사랑교육은 안 합니다. 피임법을 가르치거나 콘돔을 주는 학교는 있을 테지만, 아기를 낳아서 어떻게 돌보고 사랑하여 아름답게 키우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낳으면 유치원에 넣고, 학원에 보내며, 학교에서 의무교육을 받도록 해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도록 하라는 생각만 쳇바퀴처럼 물려받는 아이들이 된다고 느낍니다.




- “방금 전 이누야마도 만약 정말로 바이러스였다면, 나을 수 있는 거야? 여기에서도 ‘죽는다’는 게 있어?” “괜찮다니까?” “근거는?” “왠지 그냥.” “역시 왠지 그냥이구나. 젊은 사람들은 왠지 그냥 살아갈 수 있으니까.” (114∼115쪽)

- “까야아아앗, 살아 있었어? CG?” “CG 아니야? 진짜로 죽을 뻔했다고! 의문의 원시인 집단의 여왕으로 추대받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어느 틈에 초절기계문명의 전면전쟁에 휘말리기도 하고! 죽을 뻔했다고!” “뭐엇? 그게 뭐야? 세상을 빨리 돌려서 멸망까지 체험했다는 거야?” “그래!” “치사해!” “시끄러워! 나라면 혼자 도망치지 않았다고!” (154쪽)



  새롭게 꿈꿀 수 있어야 삶이 삶답습니다. 날마다 새롭다고 느낄 수 있어야 삶이 삶다워서 즐겁습니다. 날마다 새롭지 않다면 삶이 삶답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꿈을 키우고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지겹거나 따분할 뿐입니다.


  지겹거나 따분한 삶이기에 텔레비전을 보고 문학을 읽으며 스포츠에 빠져듭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줄 모르기에 새로운 아침에도 지겹거나 따분하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줄 모르기에 의무교육에 몸을 맡기고, 스스로 삶을 지을 줄 모르기에 회사에 다니거나 공무원이 되어 돈을 벌 생각밖에 못 합니다.


  돈을 벌어야 삶을 누리지 않습니다. 삶을 지어야 하루를 누립니다. 돈을 벌어서 밥을 사다 먹을 수 있어야 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면서 아이와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만화책 《제7여자회 방랑》에 흐르는 어설프면서 쓸쓸한 ‘헤매는’ 서툰 놀이에 묻어나는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4348.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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