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 오불관언 1
요전날에 시장에서 장삿군에게 아가씨라고 불리운 것 등을 열심히 기억해내 봐도 거울 속에 있는 얼굴은 별 수 없는 서른을 넘어 버린 여자인 것이다. 콤팩트에 초조하게 손이 가는 게 당연하다는 내 주장이다. 그런데 남편은 이 아내의 위급지경에도 여전히 오불관언인 것이다
《이순-제3의 여성》(어문각,1983) 109쪽
여전히 오불관언인 것이다
→ 그대로 모르는 척이다
→ 그저 남 일인 듯이 여긴다
→ 그냥 강 건너 불 구경이다
→ 콧방귀조차 안 뀐다
→ 먼 나라 일이다
→ 마음 쓸 생각이 없다
→ 딴 데를 볼 뿐이다
→ 본 척도 안 한다
→ 눈길 한 번 안 보낸다
…
네 글자로 된 한자말 ‘오불관언’을 곧바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말뜻을 알려주어도 못 알아차릴 사람이 있습니다. 한자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낱말을 잘 알 테지만, 어린이한테는 너무 어려운 말일 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안 쉬운 말입니다. 더욱이, 한국말로는 ‘딴청’이나 ‘딴전’이 있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 ‘딴짓’이라는 낱말을 쓸 수도 있습니다.
설법을 귀로는 듣되 마음은 오불관언이었다
→ 이야기를 귀로는 듣되 마음은 딴청이었다
→ 말씀을 귀로는 듣되 마음은 콩밭에 있었다
자네가 오불관언할 수야 없지 않은
→ 자네가 모른 척할 수야 없지 않은
→ 자네가 딴전을 부릴 수야 없지 않은
“마음이 콩밭에 있다”나 “마음이 젯밥에 있다”고도 합니다. 다른 데에 눈길이 간다는 소리입니다. 이리하여, 말 그대로 “다른 데에 눈길이 가다”라든지 “눈길 한 번 없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살펴서 알맞게 쓰려고 하면 그야말로 끝없이 온갖 이야기를 길어올릴 만합니다. 4336.4.15.불/4347.12.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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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앞날에 시장에서 장사꾼한테 아가씨라고 불리웠다고 애써 떠올려 봐도 거울에 비친 얼굴은 하는 수 없는 서른을 넘겨 버린 여자이다. 콤팩트에 애타게 손이 가야 마땅하다는 내 생각이다. 그런데 남편은 이 바쁘고 아슬아슬한 아내한테 눈길 한 번 안 보낸다
“요 전(前)날”은 “요 앞날”로 손보고, “불리운 것 등(等)은”은 “불리웠다고”로 손보며, “열심(熱心)히 기억(記憶)해내 봐도”는 “애써 떠올려 봐도”로 손봅니다. “거울 속에 있는”은 “거울에 비치는”이나 “거울로 보는”으로 손질하고, “여자인 것이다”는 “여자이다”로 손질하며, ‘초조(焦燥)하게’는 ‘애타게’로 손질합니다. “손이 가는 게 당연(當然)하다는 내 주장(主張)이다”는 “손이 가야 마땅하는 내 생각이다”나 “손이 갈수밖에 없다는 내 생각이다”로 다듬고, “아내의 위급지경(危急地境)에도”는 “아내가 바빠고 아슬아슬해도”나 “바쁘고 아슬아슬한 아내한테”나 “아내가 바빠맞아도”로 다듬습니다.
오불관언(吾不關焉) :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아니함
- 설법을 귀로는 듣되 마음은 오불관언이었다 /
친조카인 자네가 오불관언할 수야 없지 않은
..
살가운 상말
626 : 오불관언 2
그러나 전체 역사학계는 그야말로 오불관언이었음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강만길-역사가의 시간》(창비,2010) 503쪽
오불관언이었음은
→ 못 본 척했음은
→ 강 건너 불 구경이었음은
→ 남 일로 여겼음은
→ 쳐다보지도 않았음은
…
내 일로 여긴다면 가만치 바라봅니다. 내 일로 삼는다면 찬찬히 살펴봅니다. 내 일로 느낀다면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내 일로 여기지 않으니 안 봅니다. 내 일로 삼지 않으니 안 쳐다봅니다. 내 일로 느끼지 않으니 고개를 홱 돌립니다.
내 일로 여기면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 일로 삼으면 손을 잡습니다. 내 일로 느끼면 따사로이 바라보면서 함께 하거나 조금이나마 도울 길을 찾으려 합니다.
딴전만 부렸음은
딴청만 했음은
딴짓만 했음은
딴 데만 보았음은
딴 곳만 살폈음은
딴전을 부리든 딴청을 하든 딴짓을 하는 까닭은 “남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 일과 네 일을 가르고, 우리 일과 너희 일을 자르니, 딴 데만 보거나 딴 곳만 살핍니다. 고개를 돌리기도 할 테고, 눈을 감기도 할 테지요. 4347.12.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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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사학계는 모두 그야말로 쳐다보지도 않았음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전체(全體) 역사학계는”은 “역사학계는 모두”나 “역사학계는 온통”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