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337) 정하다定 1


그녀는 종로 6가의 고모네 집에 자리를 정한 다음

《최하림-자유인의 초상》(문학세계사,1981) 42쪽


 고모네 집에 자리를 정한 다음

→ 고모네 집에 자리를 잡은 다음

→ 고모네 집에 있기로 한 다음

→ 고모네 집에 머물기로 한 다음

→ 고모네 집에 살림을 풀기로 한 다음

 …



  자리를 잡아서 지냅니다. 자리를 잡아서 앉습니다. 자리를 골라서 살고, 자리를 찾아서 어울립니다. 살 집을 찾는다고 하면 “살 집을 찾는다”고 합니다. 머물 곳을 찾는다고 하면 “머물 곳을 찾는다”고 하지요. 살림을 풀 만한 데를 찾으면 “살림을 풀 데를 찾는다”고 해요.


 식단을 서양식으로 정하다 → 식단을 서양식으로 하다

 도읍을 서울로 정하다 → 도읍을 서울로 하다

 며느릿감으로 정하다 → 며느릿감으로 고르다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정했다 →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삼았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定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이 여러모로 쓰인다고 나옵니다. 틀림없이 이처럼 여러모로 쓰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예부터 널리 쓰던 말투가 있고, 오늘날에도 수수하게 쓰는 말투가 있습니다.


 그 대학에 원서를 넣기로 정했다

→ 그 대학에 원서를 넣기로 굳혔다

→ 그 대학에 원서를 넣기로 했다

 규칙을 정했다

→ 규칙을 세웠다

→ 규칙을 마련했다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 법 테두리에서

→ 법으로

 마음을 정했다

→ 마음을 굳혔다

→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으니 “마음을 먹다”입니다.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히니 “마음을 굳히다”입니다. “마음을 세우다”나 “마음이 서다”처럼 쓰기도 합니다. 규칙이든 법이든 ‘세우’기도 하고 ‘마련하’기도 하며 ‘두’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며느릿감이나 사윗감으로 ‘고르’는 한편 ‘삼’습니다. 자리에 따라서는 ‘뽑’는다고 할 수 있고 ‘하다’라는 낱말을 넣을 만합니다. 4338.12.8.나무/4347.12.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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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종로 6가 고모네 집에 자리를 잡은 다음


이 보기글에 나오는 ‘그녀(-女)’는 ‘어머니’입니다. 글을 쓰면서 덤덤하게 이야기를 펼치려는 뜻이라 하더라도, 어머니를 두고 ‘어머니’라 하지 않고 굳이 ‘그녀’라고 해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입니다. 또는 ‘이녁’이라는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정(定)하다

1. 여럿 가운데 선택하거나 판단하여 결정하다

   - 식단을 서양식으로 정하다 / 도읍을 서울로 정하다 /

     친구의 딸을 며느릿감으로 정하다 /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정했다 /

     그 대학에 원서를 넣기로 정했다

2. 규칙이나 법 따위의 적용 범위를 결정하다

   - 함께 의논하여 세 가지 규칙을 정했다 /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3. 뜻을 세워 굳히다

   - 그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534) 정하다定 2


그곳의 농사꾼들은 부역(농사꾼들이 땅을 사용하는 값으로 치러야 하는 일)을 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박형규 옮김-톨스토이 어린이문학전집 6》(지식산업사,1974) 65쪽


 부역을 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 부역을 하도록 못을 박았다

→ 부역을 해야 했다

 …



  부역을 하도록 “규칙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규칙이 있었다”로 손질하면 되고, “부역을 해야 했다”나 “부역을 해야만 했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4339.6.7.물/4347.12.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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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농사꾼은 부역(농사꾼이 땅을 쓰는 값으로 치러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부역(負役)’이란 한자말을 굳이 쓰면서 묶음표로 뜻풀이를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시키는 일’로 적어도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곳의 농사꾼”은 “그곳 농사꾼”으로 손보고, “땅을 사용(使用)하는”은 “땅을 쓰는”이나 “땅을 빌리는”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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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566) 정하다定 3


노인은 이상하게 생긴 전등에 불을 넣고 반사판을 이리저리 움직여 위치를 정하더니, 우리들이 설자리를 정해 주셨다

《임응식-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눈빛,1999) 17쪽


 위치를 정하더니

→ 자리를 잡더니

 설자리를 정해 주셨다

→ 설자리를 알려주셨다

→ 설자리를 말해 주셨다

 …



  짧은 보기글이지만, 앞에서는 ‘위치(位置)’라는 한자말을 쓰고 뒤에서는 ‘설자리’라는 한국말을 씁니다. 앞쪽은 ‘자리’로만 고쳐 줍니다. 그리고, 앞쪽이나 뒤쪽이나 “자리를 잡다” 꼴로 손질할 수 있는데, 뒤쪽은 “알려주셨다”나 “말해 주셨다”로 고쳐서 써도 됩니다. 또는 “보아 주셨다”나 “살펴 주셨다”로 적을 수 있습니다. 4339.6.30.쇠/4347.12.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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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얄궂게 생긴 전등에 불을 넣고 반사판을 이리저리 움직여 자리를 잡더니, 우리가 설자리를 알려주셨다


‘노인(老人)’은 ‘늙은이’나 ‘어르신’으로 손볼 수 있는데, 이 자리에서는 ‘늙은 사진가’로 손보거나 ‘그분’이나 ‘할아버지’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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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54) 정하다定 14


몰래 선물을 사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 주는 거예요. 무엇을 살지도 정해 두었어요

《아이하라 히로유키/김정화 옮김-넌 동생이라 좋겠다》(밝은미래,2009) 9쪽


 무엇을 살지도 정해 두었어요

→ 무엇을 살지도 골라 두었어요

→ 무엇을 살지도 생각해 두었어요

→ 무엇을 살지도 미리 생각했어요

→ 무엇을 살지도 벌써 헤아렸어요

 …



  아직 가게에 가지 않았으나 무엇을 살는지 골랐습니다. 마음속으로 골랐지요. 마음속으로 골랐으니 “미리 생각”한 셈입니다. “미리 헤아렸”고, “미리 살폈”습니다. “벌써 생각”했다거나 “벌써 헤아렸”다고 할 만해요. 4347.12.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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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선물을 사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요. 무엇을 살지도 골라 두었어요


“놀라게 해 주는 거예요”는 “놀라게 하려고요”나 “놀라게 할 생각이에요”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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