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와 삶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모든 일은 똑같다고 느낍니다. 다 다른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책읽기가 밥짓기와 다르지 않고, 대학교가 초등학교보다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배운 사람이 스리랑카에서 배운 사람과 다르지 않으며, 핀란드에서 배운 사람이 대만에서 배운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배운 사람이 이라크에서 배운 사람과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ㅅㄱㅇ이라는 대학교가 칠레에 있는 대학교와 다르지 않아요.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높거나 낮지 않습니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책을 읽어야 배우지 않습니다. 밥을 지으면서도 배우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배우며, 밭을 가꾸면서도 배웁니다. 배우려면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아기를 돌보면서도 배우고, 걸레를 빨면서도 배우며, 짐을 나르면서도 배웁니다. 우리는 늘 배웁니다.


  오늘날 학교는 시험문제를 푸는 곳이 됩니다. 배우는 곳이 학교라고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날 쏟아지는 수많은 책은 ‘삶을 배우는 그릇’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삶을 배운다’거나 ‘사랑을 배운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진을 배우려면 삶을 배우면 됩니다. 강의를 듣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배우려면 사랑을 배우면 됩니다. 글쓰기 강의를 듣거나 글쓰기 길잡이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밥을 짓는 사람이 사진을 잘 배웁니다. 아이와 놀고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이 글을 잘 배웁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사진을 잘 배우고, 나물을 잘 뜯는 사람이 글을 잘 배웁니다.


  하루하루 삶을 지을 수 있으면 ‘종이로 묶은 책’이 없어도 됩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하루 사이에 ‘종이책 만 권’을 너끈히 짓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삶을 지은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종이책 만 권’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입니다. 4347.12.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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