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안 먹으면서 글쓰기



  닷새째 ‘밥을 안 먹으면’서 글을 쓴다. 오늘 아침까지 몸살 기운을 털지 못해 몹시 고단했지만, 낮을 지나고 저녁이 되니 몸살 기운은 슬슬 사라진다. 나흘째 밥을 먹지 못하다가 닷새째에는 조금 먹어도 될까 싶어 한술 떴더니 웬걸, 밥 한술에다가 모과차 한 잔까지 알뜰히 물똥으로 나온다.


  내 몸을 차분히 지켜보기로 한다. 밥을 안 먹으면서 얼마나 더 지낼 만한지 바라보기로 한다. 오늘 저녁을 보내고 이튿날부터 다시 밥을 먹을는지 모르지만, 며칠 더 밥을 안 먹을는지 모른다.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밥을 더 바라지 않으며, 딱히 밥을 기다리지 않는다. 날마다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주지만, 나도 함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억지로 밥을 떠넣고 싶지 않다.


  밥을 안 먹다 보니, ‘밥 안 먹는 삶’을 머릿속으로 갈무리하면서 글을 쓴다. 어느 모로 보면 ‘밥을 못 먹다’ 보니, 밥을 안 받아들이는 몸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글을 쓴다.


  글은 어떻게 쓰는가?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쓴다. 밥을 먹으면서 산다면, ‘밥 먹는 삶’을 글로 풀어낸다. 밥을 안 먹으면서 산다면, ‘밥을 안 먹는 삶’을 글로 풀어낸다. 시골에서 흙을 짓는 사람은 시골살이나 흙짓기를 글로 쓰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아이키우기를 글로 쓴다. 날마다 인문책만 읽는 사람은 ‘인문책 이야기’를 글로 쓴다. 날마다 신문이나 방송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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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12-16 21:47   좋아요 0 | URL
음. 밥을 못드신다니 걱정이 앞서네요.
일부러 하는 단식이 아닌 이상..

숲노래 2014-12-16 21:54   좋아요 0 | URL
걱정할 일이란 없습니다.
몸은 외려 훨씬 튼튼하고
생각과 머릿속은 아주 또렷하거든요 ^^

`밥 안 먹기`와 얽혀 쓴
다른 두 가지 글을 읽어 주셔요.
그러면, 어느 한 가지 길이
슬기롭게 열릴 만하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