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 액추얼리
코다마 유키 지음, 천강원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31



나한테 찾아온 새 한 마리

― 백조 액추얼리

 코다마 유키 글·그림

 천강원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08.12.20.



  봄과 여름에는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제비집이 복닥복닥합니다. 새끼 제비와 어미 제비는 날마다 싱그럽게 노래를 베풉니다. 가을이 깊으면 빈 제비집에 참새와 딱새가 찾아와서 깃듭니다. 참새와 딱새는 제비처럼 복닥복닥 부산스러우면서 싱그러운 노래를 베풀지 않지만, 아침저녁으로 포드득 날아오르는 날갯짓을 보여줍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참새와 딱새는 때때로 동무들을 잔뜩 데려옵니다. 마당에, 마당에 있는 나무에, 마당 위쪽으로 드리우는 전깃줄에, 참새떼와 딱새떼가 잔뜩 내려앉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이런 노랫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 ‘눈이야 어렸을 때부터 워낙 많이 봐 와서 익숙하지만, 그래도 첫눈만큼은 특별한 기분이 든다. 눈이 내리는 순간, 뭔가 다른 세계가 시작될 것 같은.’ (18쪽)

- ‘왠지 헛것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정말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30쪽)



  우리 살림집이 시골이 아닌 도시에 있을 적에도 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이 아닌 골목동네에 살림집을 두었기에 온갖 새들이 집 둘레를 날아다녔으리라 생각하는데, 도시에서 새를 만날 적마다 ‘너희가 이곳에서 먹이를 찾을 만하니?’ 하고 묻는데, ‘우리는 이곳에 도시가 서기 앞서부터 이곳에서 살았어요.’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오늘 이곳에 아파트가 있을는지 모르나, 서른 해나 쉰 해 앞서는 아파트가 아니었고 아스팔트 찻길도 아니었습니다. 백 해나 이백 해 앞서는 서울도 부산도 인천도 대구도 모두 시골스러운 마을이었습니다. 새가 깃들 나무가 있고, 새가 쉬는 풀숲이 있으며, 새가 보금자리를 트는 숲정이가 있었어요.


  오늘 이곳에 우뚝 선 잿빛 건물만 생각하면서 새를 바라보면 새가 왜 도시를 안 떠난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이곳을 뒤덮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만 생각하면서 새를 마주하면 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 ‘대단한 거구나.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건.’ (65쪽)

- ‘이토록 아름다운 눈물을 목격하고만 나는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67쪽)

- “요즘 네 최신 작품들 잘 봤다. 충분히 예쁘고 팔릴 만한 것들이지만, 아직 뭔가가 부족하단 말이야. 기술이나 센스 문제가 아니라, 좀더 뭐랄까, 사람을 끌어당기는,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에 대한 애정 같은 게 결여돼 있다는 소리지.” (92∼93쪽)



  코다마 유키 님이 빚은 만화책 《백조 액추얼리》(애니북스,200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羽衣ミシン”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나온 만화책입니다. “날개옷 고니”라는 이름인 셈인데, 참말 이 만화책을 읽으면,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날개옷을 입고 가끔 사람으로 바뀌어서 사람하고 만나는 고니” 이야기가 흐릅니다. 고니는 하늘을 훨훨 날면서 사랑스럽거나 살가운 보금자리를 찾아다닙니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시골자락이 고니한테 사랑스럽거나 살갑습니다. 포근하면서 맑은 시골마을이 고니한테 기쁘거나 반갑습니다.


  고니는 날개옷이 있기에 사람 모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고니는 날개옷이 있기에 다시 고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국경도 재산도 학력도 뭣도 따지지 않고 홀가분하게 하늘을 가르는 고니는, 가끔 사람 사는 나라로 찾아들어 알콩달콩 따사로운 이야기꽃을 주고받습니다. 사람들은 날개옷을 입고 찾아온 고니를 마주하면서 ‘꿈’인지 ‘꿈이 아닌’지 헷갈리지만, 어느새 이러한 삶을 스스럼없이 맞아들입니다.





- ‘나 지금, 처음으로, 여자가 사랑스럽다고 느낀 것 같아. 가슴 깊은 곳이 찌릿찌릿하고 따뜻해.’ (124∼125쪽)

- “이건 산 게 아니라, 물려받은 거예요.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에요.” (133쪽)



  고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고니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마 우리 스스로 이러한 일을 닥쳐야 알 수 있을 테지만, 고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람도 고니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비와 사람 사이에서도, 사람과 고래 사이에서도,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서도, 사람과 북극별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따사로운 사랑이 곱게 흐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따스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따스한 숨결로 서로 아끼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즐거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추는 춤사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 ‘지금부터가 관건이야. 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온힘을 다해 노력해야 해. 내 꿈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미와 씨의 것이기도 하니까.’ (137∼138쪽)

- ‘왜 이리 괴로운 걸까.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163쪽)



  나한테 찾아온 새 한 마리가 곱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오들오들 떨면서 깃을 부푸는 새가 앙증맞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쉴새없이 몸을 씻고 목을 축이는 조그마한 새가 귀엽습니다. 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새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나한테 새가 찾아오듯이 내가 새한테 찾아갑니다. 나한테 어여쁜 이웃이 찾아오듯이 내가 어여쁜 이웃한테 찾아갑니다. 우리는 다 함께 아름다운 이웃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이웃입니다. 나는 새들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활짝 웃습니다. 새는 내가 아이들과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환하게 웃습니다. 4347.12.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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