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06. 고운 손놀림으로 빚는다
우리는 누구나 바람을 늘 마십니다. 그렇지만 바람을 늘 마시는 줄 생각하거나 헤아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바람을 안 마시면 그대로 목숨이 끊어지지만 정작 바람을 생각하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바람을 마실 적마다 ‘나는 바람을 마시는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삶이 될까요. 쉴새없이 마시는 바람이기에 쉴새없이 바람만 생각하다가 다른 일은 못 할까요? 아니면, 바람을 마실 적마다 ‘나는 바람을 마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기에 언제나 즐거우며 고맙고 사랑스러운 나날인 줄 여길 만할까요?
사랑을 속삭일 적에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면 사랑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을 속삭일 적에 사랑을 생각하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늘 즐거우면서 환하게 웃습니다. 참말 생각해 볼 노릇이지요.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 없습니다. 사랑을 생각하기에 사랑을 속삭입니다. 사랑을 안 생각하면서 입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시늉을 한다면, 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밥을 먹으며 밥을 찬찬히 생각하기에 밥맛을 느낍니다. 밥을 먹으며 밥을 생각하지 않으면 뱃속에 먹을거리를 채우기만 할 뿐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가락이나 높낮이는 잘 맞추더라도 다른 사람 가슴으로 스며들 만한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기 단추를 누를 적이든 사진기를 어깨에 걸 적이든 사진기는 옆에 치우고 다른 볼일을 볼 적이든 늘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살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살지 않으면서 ‘일을 한다고 할 적’에만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고 할 적’에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찍기가 아닌 ‘일하기’만 하는 셈이기에, 사진을 낳지 않고, ‘일거리’만 낳아요.
종이를 접어서 종이비행기를 빚는 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오로지 종이비행기만 생각합니다. 다른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 가득 종이비행기만 생각하기에 고운 손놀림으로 종이비행기를 빚습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이란, 삶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4347.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