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미래덩굴과 망개나무과 맹감 책읽기



  늘 보기는 하되 그냥 지나치는 풀이 많다. 둘레에 풀이름을 잘 아는 이웃이 있으면 어느 하나 안 놓치면서 모든 풀을 다 헤아릴 테지만, 둘레에 풀이름에 마음을 쓰는 이웃이 없으면 이 풀 저 풀 모두 놓칠 만하다. 그러나, 풀을 눈여겨보는 이웃이 없더라도 내가 스스로 눈여겨보면 된다. 손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려서 풀을 잘 알 만한 이웃을 찾아나서면 된다. 또는 풀마다 손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손수 풀잎을 뜯어서 먹고, 풀뿌리를 캐서 먹으며, 풀꽃을 가만히 지켜보면, 누구나 풀한테 새롭게 이름을 지어서 붙일 수 있다.


  풀밥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어느 풀이든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풀내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풀밭을 사뿐사뿐 거닐면서 풀이름을 새록새록 되새긴다. 풀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풀잎마다 입을 맞추고 풀꽃마다 따순 손을 내밀어 살살 어루만진다.


  사월 어느 날 옅푸른 잎을 본다. 옅푸른 잎과 함께 옅노란 꽃을 본다. 어떤 풀일까. 어떤 덩굴일까. 어떤 덩굴나무일까. 이 아이는 풀로 볼 수 있고, 덩굴로 볼 수 있으며, 덩굴나무로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망개나무라 하고, 멍개나 멍개떰불이나 망개딩이나 망개나 처망개나 멍감이나 맹검이라 하는 사람이 있다. 깜바구나 땀바구나 퉁갈이나 늘렁감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며, 멩저남이나 멜대기남이나 멍가나 맹감이라 하는 사람이 있다. 그야말로 고장마다 이름이 다르다. 다만, 고장마다 ‘망’이나 ‘맹’이나 ‘멍’이라는 이름을 흔히 쓰는데, 이 아이를 가리키는 표준말 이름은 ‘청미래덩굴’이다. 거의 모든 고장에서 쓰는 ‘망·맹·멍’ 같은 이름은 왜 표준말 이름이 못 되고, ‘청미래’라는 이름이 갑작스레 나타나서 사전과 도감에 올라야 할까.


  우리 집이 깃든 전남 고흥에서는 ‘맹감’이라는 이름을 두루 쓴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러면 나는 고흥에서 사니까 ‘청미래덩굴’이나 ‘망개나무’보다는 ‘맹감’이라는 이름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울이나 다른 고장에서 사는 이웃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청미래덩굴’과 ‘망개나무’라는 이름도 함께 알아야 할 테지. 4347.1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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