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이의 꽝복권 낮은산 작은숲 6
김정호 지음, 김병하 그림 / 낮은산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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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어린이책



절름발이, 이웃, 사랑

― 현철이의 꽝복권

 김정호 글

 김병하 그림

 낮은산 펴냄, 2005.6.10.



  다친 이웃이 있어도, 아픈 벗이 있어도, 굶주리는 들짐승이 있어도, 집이 없이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 있어도 모르는 척 지나치는 삶이 되고 마는 요즈음 모습이지 싶습니다. 어쩌다 눈길을 닿기는 해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내 삶으로 맞아들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 내가 선 자리가 너무 바쁘거나 고단하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으레 슬그머니 지나칩니다.


  이웃을 바라보지 못하기에 내 삶도 바라보지 못합니다. 이웃이 아픈 줄 모르기에 내 삶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 줄 모릅니다. 거꾸로 생각하자면, 내가 어떤 삶인지 모르니 내 이웃이 어떤 삶인지 모릅니다. 내 몸 어느 곳이 튼튼하거나 아픈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않기에 내 이웃이나 동무가 얼마나 즐겁거나 아픈지 하나도 모릅니다.



.. 옆구리를 걷어차인 듯 개가 비명을 질렀다. 이어서 ‘끼이익!’ 하고 자동차가 급히 서는 소리와 함께 더 큰 비명이 들려왔다. 자동차는 피를 흘리며 몸부림을 치는 개를 두고 그대로 가 버렸다. 시장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어머, 불쌍해라. 많이 다쳤나 봐요.” 하지만 누구도 선뜻 앞에 나서질 않았다 .. (34∼35쪽)



  도시에서고 시골에서고 찻길에서 죽는 목숨이 참 많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으레 사람 목숨만 헤아리지만, 사람 아닌 짐승이 길에서 참으로 많이 죽습니다. 길고양이나 멧토끼뿐 아니라, 다람쥐와 노루와 너구리도, 소쩍새와 참새와 제비도, 뱀과 개구리와 족제비도, 수많은 숲동무가 자동차에 받혀 숨을 잃습니다. 날마다 아주 많은 숲동무가 그만 목숨을 빼앗깁니다. 교통사고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지만, 그나마 보금자리를 빼앗겨 고단한 숲동무는 온갖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에서 싱싱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제대로 하루를 누리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자동차는 저희가 받은 짐승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백 킬로미터 넘게 달리면서 들이받은 짐승이니, 자동차를 멈출 수도 없을 테고 멈출 까닭도 없을 테지요. 뒤따르는 다른 자동차는 길죽음으로 이 땅을 떠난 숲동무 주검을 다시 밟습니다. 밟고 밟힌 주검은 어느새 오징어떡처럼 납작하게 바뀝니다.



.. “이건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어떤 여자 손님이 신고 왔던 거라오. 어느 병원에서 맞춘 거라는데, 교통사고로 발을 다친 사람이었지요. 이 신발을 처음 신을 때, 그 손님이 모양이 너무 안 예쁘다고 했더니 의사가 그러더래요. 그런 발에 뭘 예쁜 구두까지 찾느냐고…….” ..  (29쪽)



  시골에는 건널목이 없습니다. 시골을 들락거리는 자동차가 적으니 건널목을 놓기도 멋쩍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도시에는 어디에나 건널목이 있습니다. 자동차가 워낙 많기 때문에 도시사람은 건널목이 없으면 찻길을 가로지르지 못합니다. 그나마 건널목이 있더라도 신호를 기다리자면 한참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땀흘리면서 기다립니다. 애써 기다렸어도 자동차는 푸른불에 곧바로 안 멈춥니다. 사람은 푸른불이 되어도 자동차가 멈추어야 비로소 길을 건넙니다.


  한국 도시에 있는 건널목 푸른불 신호는 매우 짧습니다. 바퀴걸상을 굴린다든지 아기수레를 민다면, 푸른불 신호가 깜빡이다가 넘어갈 때까지 못 건널 수 있습니다. 더구나 어린이는 건널목을 다 건너기에 빠듯합니다.


  교통정책을 세우거나 교통신호를 다스리는 사람한테는 아이가 없을까요? 아프거나 늙은 어버이가 없을까요? 고단하거나 힘든 이웃이나 동무가 없을까요? 왜 건널목 푸른불 신호는 그처럼 짧을까요? 왜 건널목 푸른불 신호가 들어오기까지 사람들은 길에서 한참 기다려야 할까요?



..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는 순간 창문으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왔다.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싫어서 현철이는 일부러 눈을 피했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전철 안이 비좁더라도 사람들은 현철이 옆 자리에는 앉지 않았다 ..  (68쪽)



  김정호 님이 글을 쓰고 김병하 님이 그림을 넣은 《현철이의 꽝복권》(낮은산,2005)을 읽습니다. 이 동화책에 나오는 현철이는 한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어머니는 없이 아버지하고 둘이 사는데, 아버지는 어느 날 집을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집에서 라면으로 가까스로 끼니를 때우던 현철이는 아버지를 찾아나섰다가 그만 한뎃잠이처럼 전철에서 배를 쪼르르 굶으며 지내고 맙니다. 입성도 좀 허름하지만 한쪽 다리를 성하게 쓰지 못하는 현철이를 보는 둘레 사람들은 아픈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없고, ‘지저분한 거지 옆에 있다가 병이 옮지 말자’라든지 ‘괜히 옆에 있다가 엉뚱한 일에 휘말리지 말자’는 마음입니다.


  그러나저러나 현철이는 돈도 없이 집에서 나온 터라 쫄쫄 굶으며 전철에 있을 수만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전철에서 내려 아무 편의점에나 들어가 컵라면 하나를 사서 먹는데, 편의점 일꾼이 현철이한테 아주 쌀쌀맞게 굽니다. 옷이 지저분하고 다리를 저는 아이가 들어와서 라면을 편의점에서 먹고 가겠다고 하니 그랬을 테지요? 옷을 번듯하게 갖춰 입은 사람이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가겠노라 할 적에도 쌀쌀맞게 굴지 않을 테지요?



.. 할아버지, 무더운 날씨에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구두를 만들어 주셨어요. 이제는 발도 아프지 않고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 수도 있어 참 좋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게 뭔지 아세요? 가장 좋은 건 비 오는 날, 우산을 쓸 수 있다는 거예요. 목발로 걸을 때는 비를 쫄딱 맞았거든요 ..  (58쪽)



  현철이는 오백 원짜리 두 닢으로 어렵사리 산 라면조차 제대로 못 먹고 편의점에서 쫓겨납니다. 이제는 골목을 떠도는 외로운 아이가 됩니다.


  현철이는 신문을 훔치다가 붙잡혀서 끔찍한 일을 치릅니다. 그런데 왜 신문을 훔쳤는지는 책에 안 나옵니다. 현철이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둑이나 떠돌이가 된 흐름이나 까닭을 너무 싹둑 잘라서 보여줍니다. 아무튼, 현철이는 신문을 훔치다가 모진 일을 겪는데, 이때에 구둣방 할아버지가 아저씨를 말리며 현철이를 가까스로 풀어 놓아 줍니다.


  현철이를 도와준 구둣방 할아버지는 장애인이 신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장애인 신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이 할아버지는 어느 날 사고로 한쪽 팔을 못 쓴 뒤 무엇을 깨달아서 이녁처럼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한테 빛이 될 만한 신발을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할아버지가 만든 신발을 받은 사람들은 ‘걷는 즐거움’을 되찾는다고 합니다.


  마음 착한 할아버지는 현철이한테 “같이 지내자”고 말합니다. 현철이는 집에 가도 다른 수가 없으니 그러기로 합니다. 할아버지는 교통사고 때문에 한쪽 다리를 저는 개 한 마리도 따뜻하게 보살피며 한식구로 지냅니다. 그런데 이 개는 예전에 현철이네가 기르던 개라고 합니다. 한동안 집을 나갔던 현철이네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뒤, 집에 아이가 없는 줄 보고는 아이를 찾으러 다니다가 예전에 기르던 개가 구둣방 할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이 구둣방에 저희 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는 더 크게 놀라 아무 말도 못하다가 할아버지한테 편지 한 장을 남깁니다. 나중에 꼭 돈을 벌어서 아이를 되찾으러 오겠다고 하면서 아주 떠납니다.


  구둣방 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편지를 읽다가, 현철이한테 이 편지를 보여줍니다. 현철이는 편지를 다 읽고 울먹이다가 나지막히 혼잣말을 합니다.



.. “아빠! 내가 아빠의 새 복권이 되어 줄게요. 절대로 꽝이 없는 복권요.” 그러고는 손나팔을 만들어 입에 대고 크게 외쳤다. “아빠! 배짱 있게 살자…….” ..  (102쪽)



  돈을 많이 벌어야 삶을 즐겁게 누리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커다란 집에 깃들어야 식구들이 즐겁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웃고 노래해야 즐겁습니다. 함께 웃고 노래하는 삶을 누리면서 돈을 즐겁게 벌 때에 비로소 환한 사랑이 피어납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한테서 두루 사랑을 받고 싶은데, 아버지나 어머니가 돈만 벌겠다면서 집에서 나오면 아이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아이가 잃은 나날은 누가 무엇으로 찾아 줄까요.


  동화책 《현철이의 꽝복권》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동화책은 ‘현철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런데 정작 ‘현철이’ 이야기는 얼마 없습니다. 학교에서 현철이가 부대끼는 일은 고작 ‘꽝이 나온 복권’을 뒤지는 이야기 한 토막뿐입니다. 이야기 흐름으로 본다면, 도시락 한번 제대로 싸지 못했을 아이고, 급식비조차 못 냈을 아이인데 밥은 어떻게 먹는지, 동무들은 이 아이를 어떻게 마주하는지(살가이 지내면서 돕는지, 괴롭히는지 따위), 학교 교사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웃집 사람들은 어떻게 마주하는지 따위가 하나도 없습니다. 고작 현철이가 집을 나왔을 때 편의점 여자 점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유, 저 병신!” 하고 매몰차게 구는 대목 빼고는 현철이가 이 사회와 어떻게 부딪히는지 다루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구둣방 할아버지 이야기가 《현철이의 꽝복권》에서 절반을 넘게 차지합니다. 아니 거의 모두 구둣방 할아버지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차라리 ‘구둣방 할아버지와 현철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철이의 꽝복권》은 이야기 얼거리를 ‘장애인이 신는 짝짝이 구두’에 맞춥니니다. ‘꽝복권’ 이야기는 아주 조그맣게 한두 번 나오기는 하지만, 이야기 줄거리나 얼거리와 제대로 맞닿거나 이어지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아픈 구석을 건드리는 작품이라 할 테고, 우리 사회에서 아픈 이웃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테며, 우리 사회가 짓밟거나 따돌리는 대목을 살피는 작품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로서 짜임새가 좀 엉성합니다. ‘현실 보여주기’는 좋으나 ‘현실 보여주기’를 넘어서는 ‘문학다운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 나오는 현철이는 ‘꿈’을 꾼 적이 없을는지 모르고 ‘사랑’을 받은 적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끝자락까지 현철이가 제 나름대로 꿈을 키우거나 사랑을 북돋우는 모습을 미처 못 그렸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아쉽습니다. 아이가 아이인 까닭은 꿈과 사랑이 가슴에 있기 때문이니까요. 꿈과 사랑을 키우고 살려서 이 땅에서 씩씩하게 살고 ‘배짱’을 노래할 수 있는 아이일 테니까요.


  아무쪼록, 글을 쓴 김정호 님이 다음에 내놓을 작품에서는 이 책에 드러나는 여러 아쉬움을 슬기롭게 풀어내고 알뜰히 채우고 보듬어서, 이 땅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즐겁고 뿌듯하게 마음 깊숙하게 다가서는 이야기 하나를 베풀기를 바랍니다. 4338.7.7.나무/4347.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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