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464) 그러나 2


촘촘히 박힌 말뚝의 울타리는 그러나 쓰레기통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병이며 낡은 장난감 상자, 자전거 부속품 등이 그 속으로 던져서 나무밑둥 둘레에 뒤엉켜 그늘을 이루고 머물고 있었다

《배리 하인즈/김태언 옮김-캐스, 매와 소년》(녹색평론사,1998)> 173쪽


 말뚝의 울타리는 그러나 쓰레기통으로 활용되고

→ 그러나 말뚝 울타리는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 말뚝 울타리는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 말뚝 울타리이지만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



  글월 사이에 ‘그러나’를 왜 넣었을까요? 왜 이렇게 글을 쓸까요? 이 보기글에서는 ‘그러나’를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굳이 어떤 말을 넣어서 “말뚝 울타리”가 “울타리 구실 아닌 다른 구실”을 한다고 알리려면 “말뚝 울타리이지만”처럼 ‘-이지만’을 붙여야 올바릅니다.


  한국말에서는 이음씨를 글월 사이에 넣을 수 없습니다. 한국말에서 이음씨는 글월 맨 앞에 놓아, 앞 글월과 잇는 구실을 하도록 씁니다. 창작을 하든 번역을 하든 한국말을 다루는 사람은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똑바로 써야 합니다. 4338.11.19.흙/4347.1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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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촘촘히 박힌 말뚝 울타리는 쓰레기통으로 쓰여서, 병이며 낡은 장난감 상자, 자전거 부속품 따위가 나무 밑둥 둘레에 뒤엉켜 그늘을 이루었다


“말뚝의 울타리”는 “말뚝 울타리”로 다듬고, “활용(活用)되고 있어서”는 “쓰여서”로 다듬으며, ‘등(等)이’는 ‘따위가’로 다듬습니다. “그 속으로 던져서”는 이 글월에서 덜고, “그늘을 이루고 머물고 있었다”는 “그늘을 이루었다”로 손질합니다. 글짜임을 보면 ‘울타리’가 ‘머물고 있었다’처럼 적은 셈이니, 아무래도 말이 안 됩니다. ‘울타리’가 ‘그늘을 이루었다’라고만 적어야 올바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69) 그러나 3


이 얼마나 가벼운 그러나 무서운 표현인가

《김수열-섯마파람 부는 날이면》(삶이보이는창,2005) 47쪽


 가벼운 그러나 무서운

→ 가벼우면서 무서운

→ 가볍지만 무서운

→ 가벼우나 무서운

→ 가볍고도 무서운

 …



  이 보기글에서는 ‘그러나’를 넣어 ‘가벼운’과 ‘무서운’을 이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러나’는 낱말과 낱말을 잇지 못합니다. 낱말과 낱말을 이으려 할 적에는 이음씨가 아니라 토씨를 붙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말은 이렇게 쓰니까요. 이음씨는 글월과 글월을 이을 적에만 씁니다. 토씨는 낱말과 낱말을 이을 적에만 씁니다. 낱말과 낱말을 잇는 토씨를 글월과 글월을 이을 적에는 못 씁니다. 낱말과 낱말을 잇는 자리에 이음씨를 넣으면 글이 매우 엉성합니다. 한국말은 영어가 아니기에 이음씨를 아무 데나 넣지 않습니다.


  낱말과 낱말을 잇는 토씨는 여러모로 살려쓸 수 있습니다. 토씨를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글맛이나 말맛이 살짝살짝 달라집니다. 토씨를 알맞게 넣어 글쓴이 넋을 한결 또렷하면서 넉넉히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4338.12.7.물/4347.1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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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얼마나 가벼우면서 무서운 말인가


‘표현(表現)’은 그대로 둘 수 있을 테지만, 흐름에 따라 ‘말’이나 ‘모습’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8) 그러나 4


생각보다 새초롬한 날씨지만 그러나 아파트 단지 안의 나뭇가지에는 다투어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서숙-따뜻한 뿌리》(녹색평론사,2003) 225쪽


 생각보다 새초롬한 날씨지만 그러나

→ 생각보다 새초롬한 날씨지만

→ 생각보다 새초롬한 날씨지만, 가만히 보면

 …



  보기글을 보면 ‘날씨-지만’이라고 하면서 ‘-지만’을 붙입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그러나’라는 이음씨를 넣습니다. 이렇게 쓰면 겹말이 됩니다. ‘-지만’이라는 씨끝이 있으니 ‘그러나’를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를 꼭 넣고 싶다면 글 맨앞으로 돌려 “그러나 생각보다 새초롬한 날씨지만”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한편, 이 보기글에서는 “가만히 보면”이나 “곰곰이 보면”이나 “찬찬히 보면”을 사이에 넣어서 이음씨 구실을 하거나 다른 뜻을 나타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을 적에는 ‘날씨지만’ 다음에 쉼터를 넣습니다. 4340.2.10.흙/4347.12.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생각보다 새초롬한 날씨지만, 아파트 뜰에서 자라는 나무에는 다투어 새싹이 돋아난다


“아파트 단지 안의 나뭇가지”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는 나무”나 “아파트 뜰에서 보는 나뭇가지”로 손봅니다.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는 “새싹이 돋아난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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