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교본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배수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8



사진기를 어떤 마음으로 쥐는가

― 전쟁교본,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엮음

 이승진 옮김

 한마당 펴냄, 1995.5.3. (2011년 2월에 다시 나옴)



  우리 집 큰아이가 아직 첫돌이 되지 않았을 적을 떠올립니다. 여섯 달 즈음이던 큰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놀았습니다. 일곱 달 즈음에는 혼자서 사진기를 켰고, 여덟아홉 달 즈음에는 두 손을 덜덜거리면서 사진기를 들고는 찰칵 하고 찍었습니다. 첫돌조차 안 된 아기로서는 사진기를 두 손으로 들며 찍기 퍽 어렵습니다. 손가락이 안 닿기 때문입니다. 첫돌 즈음에는 머리 위로 사진기를 들어올리면서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는 어릴 적부터 사진기가 익숙합니다. 사진기는 아이한테 놀잇감입니다. 이를테면, 지난날에는 사람들 누구나 시골에서 살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지기였기에, 지난날에는 아이라면 누구나 호미가 놀잇감이고 서너 살 즈음 되면 낫도 놀잇감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예닐곱 살에도 지게를 지고 싶어서 만지작거리고 열 살 언저리에는 ‘내 지게’를 아버지나 할아버지한테서 선물로 받았어요.


  아기 적부터 사진기를 만진 아이는 ‘한글’을 모르면서도 디지털사진기를 솜씨 있게 만집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두 돌이 될 즈음부터 디지털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찍은 사진 들여다보기’를 할 줄 알았고, 사진기를 워낙 놀잇감으로 좋아하기에 조그마한 디지털사진기를 따로 장만해서 선물로 주었더니 ‘동영상 찍기’를 스스로 찾아내었어요. 이때부터 큰아이는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는 몸짓을 스스로 동영상으로 담으면서 놉니다. 아버지가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마실을 다니면,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서 한손에 디지털사진기를 들고 ‘바람을 찍’고 ‘구름을 찍’습니다. 나무를 찍기도 하고 풀과 꽃을 찍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식구는 시골마을에서 살거든요. 아이와 어른이 늘 마주하거나 바라보는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풀과 꽃이 큰아이한테는 가장 가깝거나 살갑거나 반갑거나 사랑스러운 ‘사진감’이 됩니다.





- 스페인 해변. 뭍에서 나와 돌 많은 바닷가로 올라서면 여인들은 자주 발견한다네. 팔과 가슴에서 묻어나는 검은 기름을. 가라앉은 선박들의 마지막 흔적을.

- 그대, 신의 아름다운 창조물을 갖겠다고 신발이 벗겨지도록 미친 듯 치고받는 저 신사 분들. 서로들 더 잘났다고, 더 잔혹하다고 뽐내며, 그대를 강간할 권리를 더 갖겠다고 저러는 거라오.



  우리 집 큰아이는 2015년이 되면 여덟 살입니다. 이 아이는 사진기를 갖고 놀면서 한 가지를 알아차립니다. 아이가 담고 싶은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고 알아차려요. 사진기로 동생도 찍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찍습니다. 이웃도 찍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찍습니다. 곧 여덟 살을 맞이할 아이한테 사진기는 ‘모든 것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담도록 돕는 재미난 놀잇감’입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님은 시를 쓰고 사진을 함께 엮어서 1955년에 《전쟁교본,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라는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한국에서는 1995년에 처음 나오고, 2011년에 다시 나옵니다. 책이름에 드러나듯이, 베르톨트 브레히트 님은 ‘사진이 저지르는 거짓말’을 ‘시’라는 문학을 빌어서 넌지시 밝힙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찍는 기록’이라는 이름을 받는 사진이지만, 이러한 이름과 달리 사진은 ‘거짓말을 하는 전쟁교본’이라고 살그마니 꾸짖습니다.


  참말 사진은 거짓말을 할까요? 참말 사진이 하는 기록은 거짓말일까요? 참말 사진은 전쟁에 이바지를 하거나 전쟁을 터뜨리는 구실을 맡을까요?


  사진책 《전쟁교본》에 나오는 여러 ‘우두머리(독재정권 지도자)’를 들여다보면, 사진은 거짓말도 할 수 있다고 알아차릴 만합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려는 이는 사진기를 손에 쥐면 사진기로 거짓말을 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은 철공소에서 쇠붙이로 낫이나 호미를 만들지 않고 장갑차나 미사일이나 총알이나 비행기 따위를 만듭니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부추기려는 사람은 연필을 쥐어 종이에 글을 쓸 적에 ‘천황 만세!’라든지 ‘종군위안부가 되어라!’라든지 ‘카미카제가 되어 목숨을 바쳐라!’ 따위를 외칩니다.




- 오, 그대, 자식 걱정에 애태우는 여인이여! 우린 당신이 사는 도시 위로 온 사람들. 우리에겐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이 목표였다오. 왜냐고 묻는다면, 알아주오. 공포 때문이었다는 걸.

- 한 해변이 붉은 피로 물들어져야 했다. 일본, 미국, 그들 누구의 것도 아닌 해변이. 그들은 말한다. 서로 죽이라 강요받았다고. 그래, 나는 믿는다, 믿고 말고. 그러나 딱 하나 물어 보자. 누구로부터?



  온누리를 티없이 바라보려고 하는 어린이가 사진기를 손에 쥐면, 이 아이는 사진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사진기로 삶을 지어서 놉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온누리를 휘어잡아 독재정권 문어발을 더 뻗으려는 어른이 사진기를 손에 쥐면, 이 어른은 사진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전쟁에 미친 어른은 전쟁을 부르짖고 싶어서 사진기를 내세웁니다. 전쟁에 미친 어른은 총칼을 앞세워 사진가한테 ‘사람들이 전쟁에 나설 수 있도록 거짓 사진’을 찍으라고 시킵니다.






- 르포사진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술은 세상을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 사진은 부르주아의 수중에서 진실에 ‘역행하는’ 공포스러운 무기가 되어 있다. 매일 인쇄기가 뱉어내는 엄청난 양의 사진자료들은 진실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의 은폐에만 기여해 왔다. 사진기 역시 타이프라이터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예전 대통령 한 분이 밀어붙인 4대강사업은 자그마치 22조 원이나 허투루 쏟아부은 바보짓이라고 드러났습니다. 이런 바보짓 이야기는 4대강사업을 밀어붙인 대통령이 물러나고 나서야 ‘예전에 4대강사업을 부추기면서 아주 훌륭한 정책이라고 외친 신문과 방송’까지 한목소리로 털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함부로 밀어붙인 대통령한테 22조 원을 뱉어내라고 하는 목소리나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고, 이런 정책을 함께 머리를 맞대어 밀어붙인 지식인과 교수와 기자와 공무원한테 잘못을 묻는 목소리나 움직임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사회 글·그림·사진은 어떤 일을 벌였을까요. 이들은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사람들한테 ‘참말’을 밝히거나 보여주었을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감추거나 꾸몄을까요.


  《흐르지 않는 강》(눈빛 펴냄,2014) 같은 사진책이 나오고,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 펴냄,2014) 같은 이야기책이 나옵니다. 이에 앞서 《나는 반대한다》(느린걸음 펴냄,2010)라든지 《4대강 X파일》(호미 펴냄,2011)이라든지 《강은 흘러야 한다》(미들하우스 펴냄,2009) 같은 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대강에 부가 흐른다》(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2009) 같은 책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참말을 쓸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쓸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참말을 보여줄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보여줄까요.


  사진기를 어떤 마음으로 쥐는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기는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말을 합니다. 사진기는 스스로 비틀기나 감추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스스로 비틀거나 감춥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자르기(트리밍)를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필름이나 파일에서 어느 대목을 숨기거나 지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필름이나 파일에 어떤 모습을 슬그머니 끼워넣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사진을 찍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까요? 사진을 읽는 사람도 왜 거짓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일까요? 《전쟁교본》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되읽습니다. 





- “여보게 형제들, 지금 무얼 만들고 있나?” “장갑차.” “그럼 겹겹이 쌓여 있는 이 철판으론?” “철갑을 뚫는 탄환을 만들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왜 만들지?” “먹고살려고.”



  전쟁은 독재정권 우두머리가 일으킨다고 하지만, 전쟁에 나서는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전쟁무기는 우두머리 한 사람이나 전쟁을 꾀하는 몇몇 장군과 정치꾼이 만들지 않고 바로 ‘우리’가 만듭니다. 우리는 왜 총칼을 손에 쥐면서 군인이 되거나 공장에서 전쟁무기를 만들까요? 바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고살아야’ 한다면서 전쟁 꼭둑각시가 되거나 허수아비나 총알받이가 됩니다. 우리 스스로 힘이 없다고 여기기에 전쟁 수렁에 빠지고, 개발바람에 휩쓸립니다.


  입시지옥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정부에서 정책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우리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밀어넣기 때문입니다. 입시지옥에 씩씩하게 맞서고,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과 전쟁을 부추기는 언론과 정책에 야무지게 손사래를 칠 때에 비로소 ‘거짓말’이 꽁무니를 뺍니다.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기에 바뀌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바꾸면서 아름답게 지을 때에 바뀌는 삶입니다.


  《전쟁교본》이라는 사진책은 ‘시’라는 노래를 빌어 사진이 일삼는 거짓말을 까밝힙니다. 그러니까, 사진은 거짓말을 일삼을 수 있지만, 우리가 스스로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면, 언제나 기쁘며 멋진 ‘참말’로 삶을 지을 수 있는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이 어느 쪽으로 나아갈는지, 어느 길에 서는 사진이 즐거울는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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