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02. 밝은 눈빛



  일곱 살 아이가 마을 어귀에 있는 빨래터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소리쟁이’라는 풀을 한 잎 뜯어서 가지고 옵니다. 아이는 이 풀은 이름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소리쟁이’야.” 하고 알려줍니다. 아이는 “‘소리쟁이’? 아, 소리쟁이로구나.”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한 번 듣고 나서 풀이름을 곧바로 머리와 몸과 손과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풀이름을 까맣게 잊은 뒤 나중에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도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을 곧잘 까먹었습니다. 언제나 어머니한테 여쭈었어요. 어머니는 나한테 도감이요 사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치지 않고 풀이름과 나무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때때로 어머니도 “나도 몰라. 그냥 풀이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리쟁이’라는 풀은 무척 맛있습니다. 풀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도시내기도 소리쟁이라는 풀은 무척 달고 맛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상추나 배춧잎이나 깻잎 말고는 거의 풀을 구경해 보지 못한 도시내기라 하더라도, 눈을 살며시 감고 소리쟁이 잎사귀 하나를 잎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 ‘풀이 이렇게 맛나네?’ 하고 놀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소리쟁이는 아주 흔한 풀입니다. 다만, 흔한 풀이되 아무 데에서나 아무렇게나 자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풀을 뜯어서 먹을 적에도 아무 데에서나 아무렇게나 자라는 풀을 다 뜯어서 먹지는 않습니다. 망가진 땅이나 더러워진 땅에서 나는 풀은 굳이 먹지 않습니다. 왜 안 먹을까요? 망가진 땅이나 더러워진 땅에서 나는 풀은 망가지거나 더러워진 흙을 되살리는 일을 해요. 그러니, 이 풀이 씩씩하게 흙을 되살리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지켜봅니다. 두 해 네 해 여섯 해 가만히 지켜보면, 풀은 씩씩하고 기운차게 올라옵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나면서 돋고 시들고 죽고 다시 돋고 시들고 죽고를 되풀이하면서 흙을 살립니다.


  봄이든 늦가을이든, 소리쟁이잎을 보면 갓 돋을 적에는 멀끔하지만 조금 자란다 싶으면 어느새 진딧물이나 풀벌레가 잔뜩 달라붙어서 갉아먹습니다. 더없이 맛난 풀인 줄 진딧물과 풀벌레가 재빠르게 알아챕니다.


  벌레 먹는 풀과 벌레 안 먹는 풀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벌레가 먹는 풀이란 그만큼 싱그럽고 맛난 풀이라는 뜻입니다. 벌레가 안 먹는 풀이란 ‘벌레가 싫어하는 풀’일 수도 있으나, 요즈음은 농약과 비료 때문에 벌레조차 가까이하지 못하는 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풀을 먹을 적에 우리 몸이 살아날까요? 어떤 풀을 알고 사귀면서 가까이할 적에 우리 눈빛을 밝힐 수 있을까요?


  소리쟁이라는 풀이름을 아는 사람은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러다가 한 잎을 톡 끊어서 입에 넣지요. 소리쟁이라는 풀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옆에 이 풀이 우거져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쳐다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는 무엇을 사진으로 찍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는 누구를 이웃이나 동무로 삼고, 어느 마을에서 어떤 삶을 가꾸는지 살필 노릇입니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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