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맞이하는 섣달



  섣달을 새로 맞이한다. 양력으로 치든 음력으로 치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을 맞이한다. 어머니는 나를 섣달에 낳으셨고, 어느 때부터인지 섣달을 앞두면 여러모로 설렐 뿐 아니라, 섣달을 맞이하면 한 달 내내 기쁘게 보낸다.


  흔히 말하기를, 섣달은 맨 마지막 달이라 한다. 하나부터 열둘까지 세자면, 마지막이 되리라. 그러나, 섣달에 태어난 사람은 섣달이 맨 처음이다. 십일월에 태어난 사람은 섣달이 두째가 된다. 곰곰이 따지면 맨 처음도 맨 끝도 없다. 모두 처음이자 끝이다. 모두 똑같은 자리이다.


  내가 태어난 날은 어느 하루이다. 이날 하루에 내가 빛을 본 일은 틀림없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날이든 내가 태어나지 않은 다른 날이든, 나한테는 ‘태어난 날’하고 같다. 한 해 내내 생일잔치를 누릴 수 있다. 한 해 내내 ‘내가 이 땅에 온 일’을 기쁘게 돌아볼 수 있다.


  바람이 드세게 분다. 엊그제까지 이렇게 드센 바람이 불지 않더니 섣달이 코앞이라고 드센 바람이 불까. 좋다. 드센 바람이 불 테면 불라지. 섣달에 태어났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겨울 추위를 추위로 느낀 적이 없다. 겨울이니 마땅히 추위가 와야 한다고 여겼고, 겨울에 마땅히 찾아오는 추위를 신나게 느끼다 보면 따순 봄이 얼마나 고마우면서 반가운지 더 짙게 느끼곤 했다.


  찬바람아 싱싱 불어 이 땅 풀과 나무를 느긋하게 쉬도록 해 주렴. 찬바람이 싱싱 불어야 풀과 나무가 겨우내 넉넉히 쉰 뒤 봄에 기운차게 깨어난단다. 나도 이 겨울에 더욱 기운을 내어 마음과 몸을 살찌우고 싶다. 찬바람을 듬뿍 먹으면서 새롭게 자라고 싶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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