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78) -었었- 1
나는 끝방 양은장수 최씨한테서 얻은 작은 냄비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면을 끓여 먹었었다
《책과 인생》(범우사) 1995년 5월호 35쪽
라면을 끓여 먹었었다
→ 라면을 끓여 먹었다
→ 라면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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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보면 ‘-었었-’을 올림말로 다룹니다. “현재와 비교하여 다르거나 단절되어 있는 과거의 사건을 나타내는 어미”라고 나옵니다. 이러면서, “작년만 해도 이 저수지에는 물고기가 적었었다”와 “농구 선수로 활약한 저 선수는 왕년에 배구 선수이었었다” 같은 보기글을 싣습니다. 이러면서 ‘-었었-’이나 ‘-았었-’을 들고, ‘대과거(大過去)’라 하거나 ‘중과거(重過去)’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말에는 ‘-었었-’도 없고, ‘-았었-’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쓰지 않고, 이런 말을 쓸 까닭도 없습니다. 서양말을 배우거나 서양 문법을 배운 사람들이 한국말을 살피면서 ‘한국말 문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그만 서양 문법 틀에 한국말을 끼워맞추었습니다. 이러면서 ‘-었었-’ 꼴을 억지로 만들었습니다.
한국말에는 토씨와 씨끝이 있습니다. 서양말에는 토씨와 씨끝이 없습니다. 한국말에서 그림씨는 ‘방글방글’이나 ‘벙글벙글’이나 ‘방긋방긋’이나 ‘벙긋벙긋’처럼 말끝을 살짝 달리하거나 홀소리를 바꾸면서 느낌을 다르게 나타냅니다. 그러나 서양말은 이렇게 쓰지 못합니다.
나라마다 말이 다르기에 말법이 다릅니다. 서양 문법에서는 ‘-었었-’과 같은 꼴이 될 대과거이든 중과거이든 쓸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한국말에서는 이렇게 쓸 일이 없었으며, 쓸 까닭이 없었어요.
작년만 해도 이 저수지에는 물고기가 적었었다
→ 지난해만 해도 이 못에는 물고기가 적었다
농구 선수로 활약한 저 선수는 왕년에 배구 선수이었었다
→ 농구 선수로 뛴 저 선수는 예전에 배구 선수였다
한국말에 없는 말법을 억지로 만들어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한국말에 없는 말법을 억지로 지은 탓에 학교에서도 한국말을 제대로 못 가르치거나 엉터리로 가르칩니다. 한국말에 없는 말법을 억지로 쓰도록 가르치기에 한국말이 자꾸 흔들리거나 어지럽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쓸 노릇입니다. 한국말을 살피는 학자뿐 아니라 한국말을 가르치는 교사는, 한국말로 때매김을 어떻게 나타내는지 제대로 살펴서 올바로 쓰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4337.2.5.나무/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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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방 양은장수 최씨한테서 얻은 작은 냄비로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얼마 전(前)까지”는 “얼마 앞서까지”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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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372) -었었- 2
언어에 관하여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었다
《今村秀子/오영원 옮김-반달의 노래》(삼화인쇄출판사,1978) 18쪽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었다
→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 이러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 이러하다고 말하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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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곳에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난 어느 때를 떠올리는 자리라면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합니다. 너를 보았고, 너를 만났으며, 너와 사귀었습니다. 지난 어느 때를 나타내고 싶기에 ‘-었-’을 하나 넣습니다. 말장난을 하려 한다면, 뜻을 힘주어 나타내려 한다면, “들었었었었었어”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처럼 말하듯이, 같은 말을 잇달아 적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이처럼 쓰려는 말투가 아니라면, ‘-었-’은 꼭 한 차례만 적어야 올바릅니다. 4337.11.11.나무/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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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놓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말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말은 이러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은 이러하다고 말하는 얘기를 들었다
말을 이렇게 생각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을 이렇게 보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어(言語)에 관(關)하여”는 “말을 놓고”나 “말을 두고”로 손질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나 “이러하다고 하는 이야기”나 “이렇게 보는 이야기”나 “이렇게 생각하는 이야기”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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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650) -었었- 3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사고 없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었다. 모든 사람들이 믿었었다
《히로세 다카시/육후연 옮김-체르노빌의 아이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13쪽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었다
→ 그 일을 보여주었다
→ 그 모습을 말해 주었다
→ 이를 알려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믿었었다
→ 모든 사람들이 믿었다
→ 모든 사람이 믿었다
…
‘-었었-’을 쓴 자리를 볼 때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다 알아들을 텐데 왜 이렇게 썼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올바로 못 쓸까요?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않을까요?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엉터리로 가르쳐서 아무렇게나 쓰도록 이끌고 말까요?
‘-었었-’을 넣는다고 해서 뜻을 힘주어 나타내지 않습니다. ‘-었었-’을 넣기에 더 먼 지난날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4339.11.26.해/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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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말썽 없이 이를 말해 주었다. 모든 사람이 믿었다
“아무 사고(事故) 없이”는 “아무 말썽 없이”나 “아무 일 없이”로 손보고, “그 사실(事實)을”은 “그 일을”이나 “그 모습을”이나 “이를”로 손보며, ‘증명(證明)해’는 ‘보여’나 ‘말해’나 ‘알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