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880) 그녀 40 : 그녀 → 간호사
나는 한 간호사에게 반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이 기억에 선명하다
《유모토 가즈미/양억관 옮김-고마워, 엄마》(푸른숲,2009) 120쪽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가운
→ 간호사가 입던 하얀 옷
→ 그 사람이 입은 하얀 옷
→ 그분이 입은 하얀 옷
→ 그 님이 입은 하얀 옷
…
이 보기글은 어린이문학에 나옵니다. 옮긴이는 아이들이 보는 책을 일본말에서 한국말로 옮기면서 ‘그녀’라는 낱말을 아무렇지 않게 끼워넣습니다.
창작 시를 쓰거나 창작 동화를 쓰는 어른들은 거의 모두 ‘그녀’라는 말마디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몹시 애를 씁니다. 창작 시와 동화를 펴내는 출판사 편집자도 글쓴이가 보낸 글에 ‘그녀’라는 말마디가 있으면 덜어내려고 눈을 밝힙니다. 그런데 외국 작품을 옮길 적에는 ‘그녀’가 흔히 튀어나옵니다. 게다가 요즈음에는 웬만한 어린이문학에도 ‘그녀’가 손쉽게 드러납니다. 낮은학년 어린이가 보는 어린이문학에는 ‘그녀’가 거의 없으나, 높은학년 어린이가 보는 어린이문학에서는 ‘그녀’를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 교과서를 엿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만, 초등학교에서는 ‘그녀’라는 말마디를 안 썼고, 요즈음도 웬만해서는 이 말마디를 쓰지 않도록 힘을 쏟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말씀씀이를 잘 헤아리지 못하는 교사나 어른이나 작가가 퍽 많습니다. 생각없이 툭툭 내뱉고 말아요.
아이들은 저희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텔레비전을 함께 보는데, 여느 어버이가 아이들과 함께 보는 연속극이나 다른 방송에서도 어김없이 ‘그녀’라는 말마디가 흘러넘칩니다. 어린이책과 교과서에서 ‘그녀’가 나타나지 않도록 아무리 애쓴들, 교사를 비롯해서 작가와 방송사에서 말씀씀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신문을 내거나 책을 펴내는 사람들이 글씀씀이를 옳게 가누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어린 가시내’가 ‘어른인 여자 간호사’를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때에는 “그 언니”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아이들 말투를 헤아린다면 “그 언니가 입던 옷”이라는 말마디가 가장 잘 어울리겠구나 싶습니다.
간호사가 입던 하얀 옷
간호사 언니가 입던 하얀 덧옷
그 언니가 입던 하얀 웃옷
우리 간호사 언니가 입던 하얀 치마
어린이문학과 어린이책이나 동화라면 말 한 마디까지 더 꼼꼼히 살펴야 하는데, 책이나 문학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 말씀씀이를 슬기롭게 살피고 아이들 눈높이를 살가이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어른들 때문에 잘못 물들거나 찌드는 말투가 있는지 없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쓸 말투를 튼튼히 세워서, 아이들이 맑고 밝으며 아름다운 말을 우리 어른들한테서 물려받도록 애쓰기를 바랍니다. 4343.2.13.흙/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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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호사 언니한테 반하고 말았다. 아직도 그 언니가 입은 하얀 옷이 환하게 떠오른다
“한 간호사에게”는 “간호사한테”로 손보거나 “어느 간호사한테”로 손봅니다. ‘지금(只今)도’는 ‘아직도’로 손질하고, “입고 있던”은 “입던”이나 “입은”으로 손질합니다. “하얀 가운(gown)” 같은 말은 그대로 두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얀 옷”이라고만 해도 넉넉하고, “하얀 덧옷”이나 “하얀 웃옷”이나 “하얀 치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간호사옷’이라 하든 ‘의사옷’이라 하든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맡은 일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다면 어떠한 일을 맡으면서 어떤 옷을 입는가를 그대로 나타내면 됩니다. “기억(記憶)에 선명(記憶)하다” 또한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그렇지만 “머리에 남는다”나 “환하게 떠오른다”나 “또렷이 생각난다”처럼 다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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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867) 그녀 38 : 그녀 → 암탉
그래서 난 열다섯 마리의 암탉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날 도와 달라고 애원했지. 밤낮으로 그녀들을 다스리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고 설명했지만
《리지아 누네스/길우경 옮김-노랑 가방》(민음사,1991) 45쪽
그녀들을 다스리는 일에
→ 암탉을 다스리는 일에
그들에게 날 도와 달라고
→ 암탉한테 날 도와 달라고
이 보기글에서는 ‘열다섯 마리의’처럼 적으며 토씨 ‘-의’가 들러붙지만, 앞쪽에서는 ‘암탉’이라고 알맞게 적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들’이라고 적더니, 이내 ‘그녀들’이라고 얄궂게 적고 맙니다. 우리는 암탉한테도 ‘그녀’라는 대이름씨를 붙여 주어야 하는가 봅니다. 암캐한테도 ‘그녀’라 하고, 암코양이한테도 ‘그녀’라 해야 하는가 봅니다.
범이든 여우이든 늑대이든 오소리이든 멧돼지이든, 암컷은 암컷입니다. 수컷은 또 수컷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푸나무 또한 이와 같습니다. 물에 사는 고기도 똑같으며 하늘을 나는 새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암이기에 암이고, 수이기에 수입니다.
먼 옛날 유리임금이 불렀다는 꾀꼬리 노래에 “암수 서로 살갑구나” 하고 나옵니다. ‘암꾀꼬리’가 ‘암꾀꼬리’ 아닌 ‘그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집고양이도 암코양이요, 길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 또한 암코양이입니다. 암컷이면 그예 암컷이지 ‘그녀’가 되지는 않습니다. 4342.4.12.해/4343.6.15.불/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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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암탉 열다섯 마리를 모아 놓고 날 도와 달라고 빌었지. 밤낮으로 암탉을 다스리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고 말했지만
“열다섯 마리의 암탉”은 “암탉 열다섯 마리”나 “열다섯 마리나 되는 암탉”으로 다듬습니다. ‘애원(哀願)했지’는 ‘빌었지’로 손보고, ‘설명(說明)했지만’은 ‘말했지만’이나 ‘이야기했지만’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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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869) 그녀 39 : 그녀 → 시앵 / 아기 엄마
나는 시앵의 어머니와 아이와 함께 갔어 … 테오, 나는 그곳에서 그녀를 보고 정말 행복했어. 그녀는 햇빛과 녹색으로 가득한 정원이 보이는 창 옆에 누워서, 너무나 지쳐 졸고 있었어
《빈센트 반 고흐/박홍규 옮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북스,2009) 227쪽
그곳에서 그녀를 보고
→ 그곳에서 시앵을 보고
→ 그곳에서 아기 엄마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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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나온 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분들은 으레 ‘정원’을 이야기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도 ‘정원’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원’이 아니라 ‘마당’이나 ‘꽃밭’이나 ‘뜰’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일본사람은 ‘庭園’을 가꾼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본은 ‘庭園’ 문화가 발돋움했습니다. 제법 넓게 마련한 집 안쪽에 ‘숲을 옮겨다 놓은 듯하’게 꾸미는 문화가 널리 퍼졌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영어를 배우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무렵, 영어 ‘garden’은 반드시 ‘정원’으로 풀어서 이야기하도록 배웠습니다. 다른 동무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정원’은 우리가 쓰던 낱말이 아니었고, 우리한테는 낯선 곳이었기에 제 입에는 잘 달라붙지 않았습니다. 다만, 영어 교과서에서 다루는 ‘가든 = 정원’은 서양집 앞에 꾸며 놓은 작은 풀숲이나 잔디밭 같은 데를 가리켰다고 느꼈습니다. 영어를 배우며 만나는 ‘가든’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정원’으로 풀이했고, 이리하여 ‘서양집에서 꾸미듯 마련한 풀숲이나 잔디밭’이라면 ‘정원’이라고 해야 하는 줄 알았으며, 일본사람 집 안쪽에 꾸민 모습도 ‘정원’이라고 해야 맞는 줄 알았습니다.
그녀는 창 옆에 누워서
→ 시앵은 창 옆에 누워서
→ 사랑스런 시앵은 창 옆에 누워서
→ 아기 엄마는 창 옆에 누워서
→ 애 엄마는 창 옆에 누워서
요즈음 중학교에서 쓰는 영어 교재를 슬쩍 살펴봅니다. ‘beach’는 ‘해변’으로 풀고, ‘shore’는 ‘바닷가’로 풀어 놓습니다. 그러니까, 중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익히는 요즈음 아이들은 이렇게 적힌 대로 외우는 셈인데, ‘해변’이 무엇이고 ‘바닷가’가 무엇인지를 얼마나 잘 따질까 궁금합니다. ‘해변(海邊)’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바닷가’를 한자로 옮긴 낱말일 뿐입니다. ‘바다 海 + 가장자리 邊’입니다. 한국말은 ‘바닷가’이고, 한자말은 ‘해변’입니다. 아니, 한국사람 낱말은 ‘바닷가’이고,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 낱말은 ‘해변’입니다.
영어사전을 뒤적이면, ‘beach’이든 ‘shore’이든 ‘해변, 해안, 바닷가, ……’처럼 풀이합니다. 그나마 한 자리에 죽 모아 놓기는 합니다만, 이런 말풀이가 이 나라 아이들한테 말을 말답게 가르치는 슬기로운 낱말책 구실을 할 수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my = 나의’라고만 뜻풀이를 달아 놓듯, ‘she = 그녀’라고만 뜻풀이를 달아 놓는 영어사전과 영어 교과서만 있는데, 이 나라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그녀’라는 말투에 길들고 눈이 익으며 버릇이 들고 말아요.
서양말에서는 대이름씨를 꼼꼼히 나누어서 씁니다. 한국말에서는 대이름씨를 꼼꼼히 나누어 쓰지 않습니다. 일본사람은 ‘被女’라는 낱말을 빚어서 쓰는데, 한국사람이 ‘피녀’를 ‘그녀’로 옮겨서 받아들일 만한지 궁금합니다. ‘그녀’라는 일본말을 자꾸 쓰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사랑스럽거나 살갑게 가꾸는 흐름이 시나브로 무너집니다. 4324.6.9.불/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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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앵네 어머니와 아이와 함께 갔어 … 테오, 나는 그곳에서 시앵을 보고 참말 즐거웠어. 시앵은 햇빛과 풀빛으로 가득한 뜰이 보이는 창 옆에 누워서, 너무나 지쳐 졸았어
“시앵의 어머니”는 “시앵 어머니”나 “시앵네 어머니”로 다듬고, “정말(正-) 행복(幸福)했어”는 “참으로 즐거웠어”나 “더없이 좋았어”나 “아주 기뻤어”로 다듬습니다. ‘녹색(綠色)’은 ‘풀빛’이나 ‘푸름’으로 손보고, ‘정원(庭園)’은 ‘앞뜰’이나 ‘뜰’이나 ‘꽃밭’으로 손봅니다. ‘뜨락’이라는 낱말도 있고 ‘텃밭’이나 ‘예쁜 뜰’이나 ‘앙증맞은 꽃밭’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졸고 있었어”는 “졸았어”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