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그리고 1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24



쓰고 또 쓰고

― 그리고, 또 그리고 1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정은서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4.11.12.



  나는 글을 쓰고 또 씁니다. 날마다 글을 쓰고 또 씁니다. 날마다 삶이 새롭기 때문에 글을 새롭게 씁니다.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터라 글을 새롭게 씁니다. 삶이 새롭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글을 못 씁니다.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가 없으면 글을 못 씁니다.


  달라지는 날씨를 마주하면서 배웁니다. 차츰차츰 자라는 아이를 마주하면서 배웁니다. 내 몸이 날마다 다르게 움직이는 결을 살피면서 배웁니다. 우리 집 나무와 풀이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모습을 느끼면서 배웁니다.


  둘레를 살피면 온통 글감입니다. 내가 꿈꾸는 삶이 글감이고, 아이와 누리는 삶이 글감이며, 아이와 마시는 바람이 글감입니다. 아이와 함께 뛰놀고 쉬는 마당이 글감이요, 철마다 다른 옷을 입는 나무가 글감입니다. 자전거로 달리는 들녘이 글감이요,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가 글감입니다.





- ‘날마다 그런 허황된 망상에 빠져서 공부는 내팽개친 채 마을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요요도가와의 둔치에서 고기만두를 입에 물고 만화책이나 보면서 느긋하게 지내고 있었지요 … 그런 미야자키에서 만화만 보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아무 생각 없이 성장하여.’ (8쪽)

- “선생님은 어느 미대를 나오셨어요?” “난 대학 안 나왔다.” (54쪽)



  글을 써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때는 언제였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연필을 늘 쥐면서 놀았습니다. 동네와 골목에서는 몸을 움직이면서 놀았고, 학교에서 책상맡에 앉아서 지겨운 수업을 들어야 할 때면 늘 연필을 한손에 쥐었어요. 무엇을 하든 학교에서는 연필(이나 볼펜)을 늘 손에 쥐었습니다.


  공책이나 교과서나 시험종이 한쪽에 뭔가 끄적입니다. 글을 끄적이든 그림을 그리든 연필을 놀립니다. 따분한 수업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짓습니다. 교사들 이야기는 아예 처음부터 안 들으면서 내 마음속 목소리만 듣습니다. 온갖 시험이 닥칠 무렵에 비로소 교과서를 뒤적이면서 시험공부를 할 뿐입니다.


  그런데, 연필을 손에서 놓을 때가 있어요. 내 귀에는 곱게 들리는 새들이 둘레에서 노래할 때입니다. 구름이 흐를 때입니다. 햇살과 햇발이 골고루 퍼질 때입니다. 무지개가 뜰 때입니다. 비가 내리고 눈발이 날리는 때입니다. 언제나 새로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다가올 적에는 연필을 놓습니다. 언제나 따분하면서 지겨운 목소리가 찾아올 적에는 연필을 쥡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늘 연필을 손에 쥐었고,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를 탈 적에도 늘 연필을 손에 쥡니다.





- “하야시, 너 살 좀 빼라. 뚱뚱하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입시까지 5킬로는 빼라.” (66쪽)

- “넌! 이것도 그림이라고 그렸어? 종이가 아깝다! 종이에게 사과해라! ‘더럽혀서 죄송하다’고 사과해!” (103쪽)

- ‘저는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미대도 안 나온 선생님이 왜 이렇게 우리의 미대 진학에 집착하시는 걸까요? 선생님은 미대 출신이 아니어도 엄청난 그림을 그리시는데 말이죠.’ (104쪽)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이 그린 만화책 《그리고, 또 그리고》(애니북스.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일본 만화가 아줌마’는 어릴 적부터 ‘순정만화 그리는 사람’이 되려는 꿈을 품었다고 합니다. ‘화가’가 된다든지 ‘미대’에 간다는 꿈이 아니라 ‘만화를 그리려’는 꿈을 품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 아줌마는 이녁이 고등학생이던 때에 ‘만화를 그리려면 무엇을 먼저 익혀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채, 습작이나 데생조차 엉터리인 ‘이녁 모습을 알아채지도 못하’면서 탱자탱자 놀기만 했대요. 《그리고, 또 그리고》를 읽으면 이런 이야기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예 놀고 먹으면서 모든 일이 술술 다 풀리리라 여긴 이 아줌마는 고등학교 3학년 나이가 되어서야 ‘그림길로 제대로 이끄는 길잡이’를 만납니다. ‘그림 길잡이’는 이녁이 이제껏 그림을 얼마나 엉터리로 그렸고,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모습을 낱낱이 깨우쳐 주었다고 합니다.





- “전 못 해요!” “못 하긴 뭘 못 해? 무조건 해라! 인물화란 모델의 인간성까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법! 네가 성의 없이 포즈를 취하니까 그림도 맥없는 시시한 그림이 되는 거다!” (114쪽)

- ‘라이벌끼리라고는 해도 다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예술 계통 고교생이라 순식간에 친해졌고 첫날밤은 깊어갔습니다.’ (136쪽)



  만화 그리는 아줌마는 그리고 또 그리면서 차츰 발돋움합니다. 글 쓰는 아저씨는 쓰고 또 쓰면서 찬찬히 발돋움합니다. 만화 그리는 아줌마는 그리고 또 그리면서 삶을 새롭게 그립니다. 글 쓰는 아저씨는 쓰고 또 쓰면서 삶을 새롭게 씁니다.


  만화 그리는 아줌마가 이녁 아이와 함께 즐겁게 그림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에서 손뼉을 쳐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한테 손뼉을 쳐 줍니다. 글 쓰는 아저씨는 오늘 이곳에서 네 식구가 함께 오순도순 사랑으로 글꽃을 피우는 삶을 일굴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살고 또 살면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꿈꾸고 또 꿈꾸면서, 노래하고 또 노래하면서, 웃고 또 웃으면서, 참말 아름답게 다시 깨어나는 멋진 꽃입니다. 4347.11.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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