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13) 있다 1
할머니도 아실 거예요. 날마다 사람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는 초록 운동장 말이에요
《페터 헤르틀링/박양규 옮김-할머니》(비룡소,1999) 77쪽
테니스를 치고 있는
→ 테니스를 하는
→ 테니스를 즐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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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나 탁구나 골프는 ‘칠’ 수 없습니다. 운동경기 이름일 뿐이기에, “테니스를 한다”나 “탁구를 한다”나 “골프를 한다”라 말해야 올바릅니다. “야구를 친다”라든지 “축구를 찬다”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구를 때린다”라든지 “농구를 넣는다”라 말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요. 테니스 ‘공’이나 탁구 ‘공’이나 골프 ‘공’이나 온갖 공을 치거나 찰 뿐입니다.
그렇지만, 옳고 바르게 말을 하지 못하면서 자꾸 ‘관용구’라느니 ‘관용 어법’이라느니 이야기합니다. ‘관용 표현’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잘못되거나 어긋난 말투가 퍼지고야 맙니다.
널리 쓰기에 널리 쓸 만한 말투인 관용구라면 나쁘지 않습니다. 생각없이 널리 쓰기에 그대로 두고 마는 말투인 관용구라면, ‘관용구 아닌 나쁜 말투’입니다. 법이라서 지킬 수 있으나, 나쁜 법이기에 이러한 나쁜 법은 없애자며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요. 나쁜 법이기에 지키지 말고, 이 나쁜 법이 사라지도록 힘쓰고 애써서 이 나라 삶터를 아름다이 일구자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을 치고 있어요 (x)
공을 쳐요 (o)
“-고 있어요”처럼 쓰는 말투는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서양 말투입니다. 때로는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가 될는지 모릅니다. 현재진행형이라든지 과거분사라는 말법은 한국 말법이 아닙니다. 서양 말법을 배우면서 살피는 말법이지, 서양 말법을 억지로 한국 말법에 끼워맞출 수 없어요.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말법과 말투와 말느낌을 차근차근 헤아리면서 사랑해야 아름답습니다. 4344.5.9.달/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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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도 아셔요. 날마다 사람들이 테니스를 하는 잔디밭 운동장 말이에요
“아실 거예요”는 “아셔요”나 “아시겠지요”로 다듬습니다. “초록(草綠) 운동장”은 “푸른 운동장”이나 “잔디밭 운동장”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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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914) 있다 2
교실에서 작년보다는 아주 조금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 앞에 서있을 수 있었다
《쿠로다 야스후미/김경인 옮김-돼지가 있는 교실》(달팽이,2011) 58쪽
서있을 수 있었다
→ 설 수 있었다
→ 있을 수 있었다
→ 마주할 수 있었다
…
“서있다”처럼 적으면 틀립니다. 띄어쓰기가 틀립니다. 그렇지만, “서 있다”로 띄어서 적는다 하더라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서다”이든 “있다”이든 어느 한 가지로 갈무리해야 올바릅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었다”나 “아이들 앞에 있을 수 있었다”뿐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라든지 “아이들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처럼 적을 만합니다. 이러한 뜻을 에둘러 나타내려 하면서 “서다”나 “있다”를 넣었다 할 테지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지낼 수 있었다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느낌을 옳게 헤아리면서 알맞게 쓸 말입니다. 마음을 차분히 곱씹으면서 올바로 적을 글입니다. 찬찬히 헤아리고 차분히 살피면서 ‘있다’를 털어냅니다. ‘있다’를 뒤에 붙여 “서 있다”처럼 적어야 비로소 잘 짜거나 엮은 말마디라 여길는지 모릅니다. 뒤에서 받치는 움직씨, 곧 보조동사로 여기는 ‘있다’로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이런 생각과 마음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말마디마저 한국 말투로 여기고 말아, 이런 말투가 자꾸 퍼지거나 뿌리를 내리려 하겠지요. 4344.5.9.달/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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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지난해보다는 아주 조금 느긋하게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작년(昨年)’은 ‘지난해’로 다듬고, “아주 조금 여유(餘裕)를 가지고”는 “아주 조금 느긋하게”나 “아주 조금 마음 가벼이”나 “아주 조금 홀가분하게”로 다듬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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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915) 있다 3 : 숨어 있는 성격
그 아이의 내면에 숨어 있는 원초적 성격이 터져 나왔을까. 한 장 한 장에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시카와 다쓰조/김욱 옮김-인간의 벽 1》(양철북,2011) 185쪽
숨어 있는 원초적 성격
→ 숨은 성격
→ 숨었던 모습
→ 숨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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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살아간다고 할 때에는 “숨어 산다”고 이야기하고, 이러한 뜻을 나타내려고 “숨어 있다”처럼 이야기한다면 틀린 말투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보기글처럼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다”를 이야기하려고 “숨은 성격이다”는 뜻으로 쓴다면, “숨어 있는 성격”이 아닌 “숨은 성격”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보기글을 살피면, 숨었던 성격이 터져서 나온다고 합니다. 어쩌면, 성격이 숨었다기보다 성격을 숨겼다 할 만하고, 꽁꽁 눌러 두었다고 할 만합니다.
마음이 담겨 있다
→ 마음이 담겼다
뒷 글월에 나타난 “담겨 있다” 또한 “담겼다”로 바로잡습니다. 뒤에서 받치는 움직씨로 여겨 ‘있다’를 붙이는 일은 맞갖지 않습니다. 단출하게 적바림하고, 깔끔하게 적으며, 보드랍게 어루만지면 좋겠습니다. 4344.6.5.해/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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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숨은 모습이 터져 나왔을까. 한 장 한 장에 아이들 마음이 담긴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고스란히 담긴다
“그 아이의 내면(內面)에”는 “그 아이 마음속에”로 다듬고, “아이들의 마음이”는 “아이들 마음이”로 다듬습니다. “원초적(原初的) 성격(性格)”은 맨 처음 성격을 뜻합니다. 이 글월은 말뜻 그대로 “맨 처음 성격”으로 손질하거나 “맨 처음 모습”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앞글 “내면에 숨어 있는”을 헤아린다면 ‘원초적’을 덜어 “마음속에 숨은 성격”이나 “마음속에 오래도록 숨긴 모습”이나 “마음 깊이 숨긴 오래된 모습”으로 적바림할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