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80] 아이와 함께 사는 곳
― 시골인가 도시인가
내가 오늘 사는 이곳은 전남 고흥이고, 고흥군에서도 도화면이요, 도화면에서도 신호리이며, 신호리에서도 동백마을입니다. 우리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야 읍내에 닿고, 군내버스는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갑니다. 아침 일곱 시 십 분이 첫 버스가 지나가고, 저녁 여덟 시 반에 마지막 버스가 마을 앞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마을을 가만히 살피면, 어느 집이든 새벽 네 시 안팎에 하루를 열고, 저녁 예닐곱 시 언저리에 하루를 닫습니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가면 거의 모든 집에서 불이 꺼지고, 저녁 여덟 시쯤이면 아주 고요합니다.
우리 집은 시골집입니다. 시골에 있으니 시골집입니다. 시골에서 사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이웃은 ‘자연에 둘러싸여 산다’고 말하는데, 곰곰이 살피면 ‘자연에 둘러싸여 산다’기보다 ‘자연을 이웃으로 삼아서 산다’고 말해야 옳지 싶어요. 그리고, ‘자연’이란 어디 머나먼 곳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숲’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시골집은 숲을 이웃으로 삼는 집입니다.
숲은 무엇일까요? 나무가 우거진 곳이 숲입니다. 다만, 나무가 우거진 곳은 나무숲이고, 풀이 우거진 곳은 풀숲입니다. ‘숲’이라고만 한다면 나무와 풀이 함께 우거진 곳입니다. 숲바람이 불고, 숲내음이 흐르며, 숲노래가 퍼지는 곳이 숲입니다.
시골집에서 숲과 이웃을 하며 지내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숲을 누리면서 지낼 만한 곳에서 아이를 키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즐겁게 꿈을 꾸고 사랑을 속삭일 만한 곳에서 산다고 느낍니다. ‘사랑’이 있는 곳을 찾아서 시골집에 깃들었고, ‘사랑’을 씨앗으로 심고 싶어서 숲을 이웃으로 삼습니다.
도시에서는 사랑씨앗을 심지 못할까요? 아니에요. 도시에서도 사랑씨앗을 심을 수 있어요. 씨앗은 늘 마음으로 심으니까요.
밭자락에 상추씨를 심든 무씨를 심든 늘 같아요. 먹을거리를 얻으려고 씨앗을 심을 테지만, 먹을거리를 왜 얻으려고 하느냐 하면, 삶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요, 삶을 왜 누리고 싶은가 하면, 하루하루 사랑을 지어서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볍씨 한 톨을 심을 적에도 사랑을 심는 셈입니다.
어디에서 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디로 나들이를 다니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꿀 수 있으면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보금자리입니다. 마음을 돌볼 수 있으면 언제나 사랑스러운 삶터입니다. 다만, 우리 집 사람들은 풀과 나무를 가까이하는 곳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요, 풀노래와 나무노래가 어우러진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일 뿐입니다. 숲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숲한테 우리 노래를 들려줍니다. 숲에서 퍼지는 냄새를 맡으면서, 우리가 짓는 밥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함께 지내는 이웃인 숲이요, 서로 아끼면서 사랑이 자라는 시골이며,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노래할 수 있는 보금자리입니다. 4347.11.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