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54) 표하다表 1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지금까지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제인 구달/박순영 옮김-희망의 이유》(궁리,2000) 9쪽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 참으로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 참말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더없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 무척 고맙다는 뜻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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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을 나타내다”를 가리키는 외마디 한자말 ‘表하다’라 한다면, 이 낱말 앞에 ‘사의(辭意)’나 ‘조의(弔意)’나 ‘경의(敬意)’나 ‘의사(意思)’ 같은 낱말을 넣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의·조의·경의·의사’ 같은 낱말에 쓰인 ‘意’는 바로 ‘의견(意見)’이라는 말마디에 쓰인 ‘意’하고 같기 때문입니다. ‘사의·조의·경의·의사’ 같은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사의를 나타내다”나 “조의를 밝히다”나 “경의를 밝히다”나 “의사를 밝히다”처럼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의·조의·경의·의사’ 같은 한자말도 굳이 안 쓸 수 있습니다.
사의를 표하다 → 그만두겠다고 말하다 . 물러나겠다고 하다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다 → 유족한테 안됐다고 말하다
찬성의 뜻을 표하다 → 찬성한다는 뜻을 나타내다 . 찬성한다고 밝히다
경의를 표하다 → 우러른다고 말하다 . 받들어 모시다
엇갈린 의사를 표하고 → 엇갈린 뜻을 밝히고
여느 한자말이든 외마디 한자말이든, 쓸모가 있으면 쓸 노릇입니다. 어떠한 한자말이든 쓸모가 없다면 쓰지 않을 노릇입니다. 쓸 만하기에 쓰고, 쓸 만하지 않기에 안 써야 올바릅니다. 이냥저냥 쓴다든지 얼렁뚱땅 쓴다든지 남들이 쓴다고 따라서 쓰는 일은 조금도 알맞지 않아요. 말뜻을 하나하나 살피고, 말느낌을 곰곰이 되씹으며, 말쓰임새를 찬찬히 헤아려야 합니다. 쓸 만하지 않은데 자꾸 쓰니까 얄궂은 말투가 퍼질 뿐 아니라, 옳지 못한 말버릇에 익숙해집니다. 4336.10.16.나무/4342.8.6.나무/4347.1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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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기 앞서, 이제까지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더없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를 시작(始作)하기 전(前)에”는 “이야기를 꺼내기 앞서”나 “이야기를 하기 앞서”나 “이야기를 펼치기 앞서”로 다듬어 봅니다. ‘진심(眞心)으로’는 ‘참으로’나 ‘더없이’로 손보고, ‘감사(感謝)’는 ‘고마움’으로 손봅니다.
표하다(表-) : 태도나 의견 따위를 나타내다
- 사장에게 사의를 표하다 /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다 / 찬성의 뜻을 표하다 /
경의를 표하다 / 그런 식으로 엇갈린 의사를 표하고 나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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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592) 표하다表 2
뿐만 아니라 어미 마돈니나에게 늘 존경을 표했다
《엘케 하이덴라이히/김지영 옮김-검은 고양이 네로》(보물창고,2006) 17쪽
어미에게 늘 존경을 표했다
→ 어미를 늘 섬겼다
→ 어미를 늘 깍듯이 모셨다
→ 어미를 늘 고이 모셨다
→ 어미를 늘 우러렀다
→ 어미한테 늘 얌전히 굴었다
…
어미 고양이한테 어떤 모습인가 하고 밝히는 대목입니다. 어미 고양이를 ‘존경’한다는 말은, 어머 고양이를 ‘높이 여긴’다는 뜻입니다. ‘섬긴다’거나 ‘받든다’고 할 만해요. “깍듯이 모신다”거나 “어미한테 얌전히 굴다”나 “어미한테 늘 다소곳했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39.7.23.해/4347.1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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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라 어미 마돈니나를 늘 깍듯이 모셨다
“뿐만 아니라”처럼 적으면 틀립니다. “그뿐만 아니라”나 “이뿐만 아니라”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존경(尊敬)’이라는 한자말은 그대로 쓸 수 있을 테지만, ‘섬기다’나 ‘받들다’나 ‘높이다’나 ‘우러르다’ 같은 한국말로 풀어서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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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702) 표하다表- 3
그에 비해 크고 급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왜 굳이 ‘사소한’ 것들을 다뤄야 하는지 의문을 표하는 학자들도 있다
《강성민-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살림,2004) 33쪽
의문을 표하는 학자들
→ 궁금해하는 학자들
→ 묻는 학자들
→ 물음표를 찍는 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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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하구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묻습니다. 아무래도 알쏭달쏭하니까 묻습니다. 왜 이러나 싶어 궁금하다고 여깁니다. 궁금하다고 말하며, 궁금하기에 묻습니다. 4339.11.10.쇠/4347.1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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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크고 바쁜 일이 가득 쌓였는데, 왜 굳이 ‘하찮은’ 것들을 다뤄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에 비(比)해 크고 급(急)한 문제(問題)들”은 “그와 견줘 크고 서두를 문제들”나 “그보다 크고 바쁜 일이”로 다듬습니다. “산적(山積)해 있는데”는 “쌓였는데”나 “넘치는데”나 “많은데”로 손보고, ‘사소(些少)한’은 ‘작은’이나 ‘자잘한’이나 ‘하찮은’으로 손보며, ‘의문(疑問)’은 ‘궁금함’으로 손보거나 ‘고개를 갸우뚱하는’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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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39) 표하다表 4
그렇다고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오숙희-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그린비,1991) 12쪽
지지를 표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 따르는 쪽도 아니었다
→ 옳다 말하지도 않았다
→ 맞다고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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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기글에서는 한자말 ‘지지’를 그대로 두면서, “그렇다고 내 생각에 손뼉치며 지지를 밝히는 모습도 아니었다”처럼 고쳐쓸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렇게나마 고쳐쓰려고 마음을 쏟을 수 있다면 반갑습니다. 처음부터 빈틈없이 가다듬거나 추스르자면 만만하지 않으나, 이와 같이 하나하나 살피면서 말마디를 갈고닦는다면, 시나브로 말마디뿐 아니라 생각마디까지 아우를 수 있습니다. 살갑게 아우르고 아리땁게 아우르며 싱그러이 아우릅니다.
내 생각에 손뼉치며 맞장구치는 모습도 아니었다
내 뜻에 힘껏 손뼉치며 맞다고 하는 쪽도 아니었다
내가 하는 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매무새도 아니었다
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생각을 열면서 말길을 엽니다. 마음을 기울이면서 글 한 줄 갈고닦습니다. 차근차근 한 마디씩 손질하고, 천천히 한 줄씩 새롭게 적습니다. 4342.8.6.나무/4347.1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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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 생각에 기꺼이 손뼉을 치며 옳다 하지도 않았다
‘의견(意見)’은 ‘생각’으로 다듬습니다. ‘적극적(積極的)으로’는 ‘힘껏’이나 ‘기꺼이’나 ‘손뼉치며’로 손질하고, ‘입장(立場)’은 ‘쪽’이나 ‘모습’으로 손질해 봅니다. ‘지지(支持)’는 앞뒷말을 헤아리면서 ‘따르다’나 ‘옳다고 여기다’나 ‘맞다고 이야기하다’ 들로 풀어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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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7) 표하다表 5
인디언은 부족의 주신이 준 옥수수밭에 늘 감사를 표했다
《조지프 코캐너/구자옥 옮김-잡초의 재발견》(우물이 있는 집,2013) 223쪽
늘 감사를 표했다
→ 늘 고마워 했다
→ 늘 고맙다고 인사했다
→ 늘 고맙다고 노래했다
→ 늘 고맙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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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감사’를 자꾸 쓰기 때문에 ‘表하다’ 같은 외마디 한자말이 자꾸 뒤따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한국말 ‘고마움’을 쓸 적에도 “고마움을 표하다”처럼 엉뚱하게 쓰는 사람이 늘어요.
고맙다고 말할 적에는 “고맙다고 말하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고맙다는 뜻을 밝히려면 “고맙다는 뜻을 밝히다”라 해야 올발라요. 보기글에서는 옥수수밭을 지으면서 고맙다고 밝히는 이야기인데, 인디언 부족에서는 말로만 고맙다고 나타낼 수 있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수 있어요. 그래서, “고맙다고 노래했다”나 “고맙다고 얘기했다”나 “고맙다는 뜻에서 잔치를 열었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47.1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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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은 부족에서 섬기는 신이 준 옥수수밭을 늘 고마워 했다
“부족의 주신(主神)”이라고만 적으면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부족에서 섬기는 신”이나 “부족에서 모시는 높은 신”쯤으로는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감사(感謝)’는 ‘고마움’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