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22) 전의 1


그러나 이 책에 실려 있는 거의 10년 전의 이야기들은 바로 지금 이 땅의 중고등학교 모습 그대로이다

《새내기를 위한 책읽기 길라잡이》(서울대학교 총학생회,1998) 15쪽


 10년 전의 이야기들

→ 10년 전 이야기들

→ 열 해나 된 이야기들

→ 열 해쯤 된 이야기들

→ 열 해나 지난 이야기들

 …



  “10분 전에 왔어요”나 “10분 후에 오셔요”라 말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10분 앞서 왔어요”나 “10분 뒤에 오셔요”라 말하는 사람도 제법 많습니다. ‘前’이나 ‘後’ 같은 한자말을 굳이 안 쓰는 사람을 곧잘 만나지만,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는 거의 모두 ‘前’이나 ‘後’ 같은 한자말을 씁니다.


  한국말 ‘앞’이나 ‘앞서’를 쓰더라도 토씨 ‘-의’를 붙이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앞의 이야기”나 “앞서의 보기”처럼 글을 쓰는 분이 있습니다. 낱말은 가려서 쓸 줄 알아도 토씨를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모르는 셈입니다. 한국말은 토씨와 씨끝을 다르게 붙이면서 뜻과 느낌을 살리는 줄 모르는 노릇입니다.


  한국말은 “앞에 든 이야기”나 “앞서 들려준 보기”처럼 씁니다. “앞에서 다룬 이야기”나 “앞서 밝힌 보기”처럼 씁니다. ‘-의’만 덩그러니 붙여서 두루뭉술하게 쓰면 한국말이 아닙니다.


  “거의 1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닌 “거의 10년이 된 이야기”요 “거의 10년을 묵은 이야기”이며 “거의 10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말끝을 살살 달리 붙이면서 느낌과 뜻을 살살 다르게 들려줍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前 (2)’ 풀이를 ‘이전(以前)’을 뜻하는 낱말이라고 적는데, ‘전’이나 ‘이전’은 모양새가 살짝 다르나 똑같은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은 ‘예전’입니다. ‘앞’과 ‘앞서’ 또한 한국말입니다. 그렇지만 한국말사전에서는 ‘예전·앞·앞서’를 알뜰살뜰 여미어 쓰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자말로만 생각하고 말하며 이야기하도록 내몹니다. 이러면서 “10년 전의 모습” 같은 보기글까지 싣습니다.


 전에 한 번 → 예전에 한 번

 사흘 전 → 사흘 앞서

 10년 전의 모습 → 열 해 앞서 모습

 전 같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 예전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대서 한국말이 아닙니다. 생각을 가꾸고 마음을 추스르면서 찬찬히 읊을 때에 비로소 한국말입니다. 슬기롭게 말을 해야 한국말이고, 사랑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우도록 애써야 한국말입니다. 4339.6.5.달/4342.12.10.나무/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나 이 책에 실린 거의 열해쯤 된 이야기들은 바로 오늘 이 땅에 있는 중고등학교 모습 그대로이다


‘수록(收錄)한’이라 하지 않고 ‘실려 있는’이라 쓰니 반갑지만, ‘실린’으로 다시 손질합니다. “바로 지금(只今)”은 “바로 오늘”로 손보고, “이 땅의 중고등학교”는 “이 땅 중고등학교”나 “이 땅에 있는 중고등학교”나 “우리 중고등학교”로 손봅니다.



전(前)

1. 막연한 과거의 어느 때를 가리키는 말

   -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 전 같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이전’의 뜻을 나타내는 말

   - 사흘 전 / 조금 전 / 10년 전의 모습과 똑같았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32) 전의 2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엔도 슈사쿠/김석중 옮김-유모아 극장》(서커스,2006) 128쪽


 10년 전의 일이다

→ 10년 전 일이다

→ 열 해가 지난 일이다

→ 열 해가 흐른 일이다

→ 열 해나 된 일이다

→ 열 해가 지난 일이다

 …



  한자말 ‘전’을 쓰고 싶으면 “10년 전 일이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토씨 ‘-의’를 붙일 까닭이 없습니다. 한자말 ‘후’를 쓰고 싶으면 “10년 후 일이다”처럼 적으면 돼요. 이때에도 토씨 ‘-의’를 붙일 까닭이 없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일 수 있으면, ‘십년(十年)’을 ‘열 해’로 손질합니다. 4339.12.4.달/4342.12.11.쇠/4347.11.14.쇠.ㅎㄲㅅㄱ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950) 전의 3


파리로 돌아오신 후 선생님 가족은 다시 그 전의 생활을 되찾으신 거군요

《이응노,박인경,도미야마/이원혜 옮김-이응노 : 서울·파리·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1994) 39쪽


 그 전의 생활을 되찾으신

→ 지난날로 돌아가신

→ 예전 삶을 되찾으신

→ 예전처럼 살아가신

 …



  일본말로 된 책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그 전의 생활” 같은 말투가 나타납니다. ‘あの前の生活’이나 ‘かの前の生活’로 적은 일본글을 한글로만 옮긴 보기글이지 싶습니다.


  말뜻 그대로 다듬으면 “그에 앞서 살던 대로 되찾으신”입니다. 이렇게 쓰는 글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전 삶대로 되찾으신”으로 손보면 한결 낫고, “예전 삶을 되찾으신”이나 “예전대로 살 수 있으신”으로 더 손볼 수 있습니다. 4340.3.9.쇠.처음 씀/4342.12.11.쇠.고쳐씀.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파리로 돌아오신 뒤 선생님 식구는 다시 예전 삶을 되찾으셨군요


‘후(後)’는 ‘뒤’나 ‘다음’으로 고치고, ‘가족(家族)’은 ‘식구’로 고칩니다. ‘생활(生活)’은 ‘삶’으로 손질하고, “되찾으신 거군요”는 “되찾으셨군요”로 손질해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108) 전의 4


내가 고향을 마지막으로 떠난 것은 1946년 늦가을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의 일이다

《김병걸-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창작과비평사,1994) 13쪽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의 일이다

→ 올해로 마흔여섯 해가 지난 일이다

→ 이제까지 마흔여섯 해가 지났다

→ 어느덧 마흔여섯 해가 되었다

→ 마흔여섯 해가 훌쩍 지났다

→ 그동안 마흔여섯 해가 되었다

 …



  올해를 잣대로 삼아 헤아리니 마흔여섯 해라고 합니다. 올해로 치니 마흔여섯 해입니다. 올해부터 따지니 마흔여섯 해입니다. 어느 일이 일어난 때부터 올해까지 마흔여섯 해입니다.


  글쓴이가 고향을 떠난 지 어느새 마흔여섯 해입니다. 어느덧 마흔여섯 해이고, 시나브로 마흔여섯 해입니다. 마흔여섯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는 동안 ‘-의’는 조용히 사라집니다. 4340.10.7.해/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내가 고향을 마지막으로 떠난 때는 1946년 늦가을이었으니까 올해로 마흔여섯 해가 지났다


“마지막으로 떠난 것은”은 “마지막으로 떠난 해는”이나 “마지막으로 떠난 때는”으로 다듬습니다. ‘지금(只今)으로부터’는 ‘올해로 치면’이나 ‘올해부터’나 ‘올해로’로 손질하면 되는데, ‘어느덧’이나 ‘얼추’나 ‘어느새’로 손질할 수도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