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Photo닷 2014.11 - Vol.12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93



사진잔치를 하는 곳

― 사진잡지 《포토닷》 12호

 포토닷 펴냄, 2014.11.1.



  서울과 대구에서 사진잔치를 엽니다. 강원도에서도 사진잔치를 엽니다. 사진과 얽힌 큰잔치가 하나둘 태어납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빚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사진잔치에 걸리고, 이웃나라에서 사진을 찍는 이웃이 엮은 고운 노래가 사진잔치에 찾아옵니다. 그런데, 한국 곳곳에서 열리는 사진잔치 이야기를 듣거나 자료집을 보면 으레 한 가지 아리송한 대목이 있습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12호를 읽습니다. 사진비평을 하는 진동선 님이 “이론과 실기 모든 측면에서 아마추어들의 실력이 전공자들의 수준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사진의 문화는 사진 전공자를 위한 프로만의 장과 공모전 중심의 취미를 위한 아마추어의 장으로 완전히 이분화되어 있다(82쪽/진동선).”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이야기마따나, ‘사진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끼어들 틈이 없는 사진잔치가 열리는구나 싶어요.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모이는 사진잔치가 아니라, ‘전문 사진가’가 엮은 작품을 내걸면서 이러한 작품을 사람들한테 내보이거나 알리는 자리처럼 사진잔치가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요.


  한국에서 열리는 책잔치도 이와 비슷합니다. 한국 곳곳에서 열리는 책잔치는 잔치라기보다 ‘책장사’이기 일쑤입니다. 책잔치에서도 책을 사고팔기 마련이지만, 장사판을 넘어서는 잔치마당으로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책을 쓴 사람과 책을 엮은 사람이 책을 읽는 사람과 어우러지는 자리가 아주 드물어요.


  사진잔치는 어떠할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얼마나 사진잔치에 함께 할까요? 사진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사진잔치에 함께 할 만할까요? 사진책을 내는 사람들은 사진잔치에서 얼마나 자리를 얻어서 이야기를 꾸릴 만할까요?





  “사진은 오직 작가가 만들어낸 순연한 결과물일까. 대부분의 현대사진은 사진의 힘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새로운 변화를 제시하거나, 연극의 퍼포먼스를 옮겨오기, 이미지를 낯설게 배치하고 조작하기, 지금-여기의 공시적 공간을 기록하는 등 사진의 의미를 찾아나서는 관객에게 많은 코드를 제시해 왔다(58쪽/최연하).”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최연하 님 말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현대사진’은 ‘퍼포먼스’처럼 보입니다. ‘이미지 낯설게 배치하거나 조작하기’를 넘어설 만한 사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사진을 찍는 사진’이란 어디에 있을까요?


  “두 달 뒤인 5월에 쓰나미 지역을 갔었는데, 그때 느낀 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그 장소에 있었던 생활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기척이었어요(36쪽/미연).”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일이란 삶을 찍는 일입니다. 퍼포먼스를 찍는다면 퍼포먼스도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퍼포먼스와 같으니, 현대사진은 자꾸 퍼포먼스로 나아가지 싶어요. 텔레비전과 손전화가 사람들을 휘어잡으니, 이러한 얼거리에 따라 사진가도 똑같이 퍼포먼스를 하려 드는구나 싶어요.




  그렇지만, 도시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시골을 떠나는 사람이 아직 훨씬 많으나,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는데에도 도시를 떠나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납니다. 대학 교육도 받고 전문 일자리를 누리면서도 도시를 떠나는 사람이 꽤 많아요. 그러면, 이러한 모습을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찍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러한 사람들 모습과 이야기와 삶과 사진을 엮는 사진잔치는 언제쯤 태어날 수 있을까요?


  “지도 위의 한 줄이 하나의 인생을 얼마나 바꿔 놓을 수 있을까? ‘변경/한국’은 북한의 평양, 남한의 서울에서 찍은 사진 두 장을 나란히 병치해 야기되는 모든 종류의 가능성을 고려해 보려는 프로젝트이다(78쪽/유스케 히시다).”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남녘과 북녘은 참으로 다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도시와 시골이 참으로 다릅니다. 더욱이, 서울에서도 이곳과 저곳이 참으로 다릅니다.


  남·북녘을 가로지르는 사진 못지않게, 한국 사회는 둘로 쪼개어진 채 시름시름 앓습니다. 서로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설 자리가 좁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진에서 어떻게 담아낼까요? 이러한 이야기는 퍼포먼스로 보여줄 수 있을까요?





  “너무나 찬란한 계절 가을이다. 20층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멀리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풍경을 주시한다(115쪽/조광제).”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도시에서도 가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도 하늘을 바라보면, 또는 한국 어디에나 있는 멧자락을 마주하면, 가을도 겨울도 봄도 여름도 모두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꼭 지리산이나 오대산이나 설악산이나 금강산이나 백두산에 가야 ‘멋진 가을빛’을 담지 않습니다. 아파트 옥상이나 20층에서도 가을빛을 담을 수 있습니다. 굳이 ‘멋진’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찍으면 됩니다. 이야기를 엮으면 됩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면 됩니다.


  그러니까, 현대사진에 없는 한 가지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사진에 퍼포먼스가 있고, 비틀기나 뒤틀기는 있으나, 정작 이야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없는 사회에 그대로 길들인 채 사진기만 손에 쥐면, 현대 물질문명 사회를 퍼포먼스로 그릴밖에 없어요. 이야기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모르고, 이야기를 처음부터 바라본 적이 없으니, 현대사진을 하는 젊은이는 그예 퍼포먼스와 비틀기와 뒤틀기로 예술을 할 뿐, 스스로 삶을 짓거나 빚어서 이야기로 꾸려서 보여주지 못합니다.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사진은 온마음을 다해 삶을 사랑하면서 찍습니다. 이한구 님이 겪은 군대 이야기가 깃든 ‘군용’에도, 사진가 아닌 여느 군인이던 젊은 사내가 군대에서 끼리끼리 어울려 웃고 울며 찍은 ‘기록’에도 애틋한 삶이 흐릅니다(127쪽/최종규).” 같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을 찍습니다. 군대에 가야만 군대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숲에서만 풀과 나무와 꽃을 찍지 않습니다. 골목동네에서도 나무와 꽃과 풀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우리 얼굴에서 꽃내음을 맡으면서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사진으로 담아야 할까요? 이야기를 담아야지요.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까요? 삶이라는 이야기를 담아야지요. 사진잔치는 어떻게 꾸리면 즐거울까요? 삶이라는 이야기를 담는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기쁘게 웃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꾸리면 즐겁습니다. 4347.11.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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