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빈들 책읽기



  도시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았기에 ‘빈들’이라고 하면 참말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들’인 줄 알았다. 나이 서른 줄에 접어들어 비로소 시골에서 산 뒤에 ‘빈들’이란 없고, 그저 ‘가을들’이 있을 뿐인 줄 깨닫는다. 왜냐하면, 시골자락을 스치듯이 바라볼 적하고 시골마을에 뿌리를 내려 살 적하고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시골사람이 도시를 바라보는 눈도 비슷하리라 느낀다. 시골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이 도시를 스치듯이 바라보는 느낌과 도시에서 태어나 오래도록 사는 사람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며 바라보는 느낌은 사뭇 다를밖에 없다. 시골사람은 도시에서 재미나 보람을 조금도 못 찾을 수 있지만, 도시사람은 도시야말로 재미와 보람이 넘치는 곳이라고 여길 만하다.


  가을 빈들을 읽는다. 볏포기를 베어 이제 더 볼 것이 없다는 가을 빈들을 읽는다. 나는 이 가을들에서 새로 돋는 여린 볏포기에 눈길이 간다. 목아지가 뎅겅 잘려 싯누렇게 바뀐 볏줄기 사이에서 새롭게 오르는 푸른 줄기에 눈이 간다. 이 여리며 예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가을들을 섣불리 빈들이라 말하지 못하리라. 예전에 나라님이 사람들을 들볶아 먹을거리가 없이 굶주려야 할 적에, 이 여린 줄기를 훑어서 먹었으리라 느낀다. 새로 오르는 여린 줄기를 나물로 삼아서 고마이 먹었겠다고 느낀다.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푸르게 올라오는 새 줄기는, 언제나 새로 기운을 내면서 이 땅에 두 다리를 붙이며 살아가는 시골내기 단단한 주먹과 같으리라 본다. 쟁기와 호미를 쥘 적에는 야무진 일손이 되고, 아이를 어루만질 적에는 가없이 보드라운 사랑이 되는 시골내기 두 손과 같은.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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