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81. 밥을 차리는 마음으로



  시골집에서 지내며 ‘대단한 풀’을 뜯어서 먹지는 않습니다. 집 둘레에서 돋는 풀을 고맙게 여기면서 뜯습니다. 따로 심어서 얻는 풀보다 저절로 돋는 풀을 무척 즐깁니다. 시골에서 살며 곰곰이 지켜보면,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심고 가꾸어도 먹을거리를 넉넉히 얻지만, 숲이 이끄는 대로 철마다 풀내음을 살펴 바지런히 뜯을 수 있으면, 한겨울에도 얼마든지 풀밥을 누릴 만합니다.


  들꽃을 좋아하면서 사진을 찍는 분이 많습니다. 시골에서 들꽃을 철마다 지켜보노라면, 참말 들꽃을 사진으로 찍을 만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해마다 다시 만나는 들꽃인데 해마다 느낌이 달라요. 한 번 피면 적어도 열흘이나 보름은 가고, 달포 남짓 잇는 들꽃도 있어요. 이런 들꽃을 보면, 한 송이일 적과 열 송이나 백 송이일 적에 느낌이 다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빛살이 다르고 꽃내음이 다릅니다. 봉오리가 터질 무렵과 씨앗이 맺을 무렵 꽃빛이 새삼스럽습니다. 들꽃 한 송이를 놓고도 사진책 한 권 엮을 만큼 수많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나는 시골집에서 날마다 풀을 뜯습니다. 날마다 새 풀을 뜯습니다. 뜯고 뜯으며 다시 뜯어도 풀은 새롭게 자랍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풀한테 밀려, 풀은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우지요. 꽃이 피는 풀은 굳이 더 뜯지 않습니다. 다른 풀을 뜯습니다. 꽃을 피운 풀은 씨앗을 맺어 스스로 둘레에 떨굽니다. 이제부터 이 풀은 이듬해를 기다립니다.


  날마다 새롭게 온갖 풀을 뜯고, 철마다 기쁘게 새로운 풀을 뜯어서 밥을 차리며 생각합니다. 나는 들과 숲에서 얻은 기운을 밥상에 얹습니다. 들이 베푸는 냄새를 맡고, 숲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밥을 차리는 마음이란, 아이들한테 맛난 밥을 베풀려는 마음이기도 할 테지만, 아이들한테 ‘배를 불리는 먹을거리’이면서 ‘숲에서 자란 푸른 숨결’을 함께 주고픈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바람을 마셔요. 풀이 자라면서 마신 바람을 함께 먹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빗물을 마셔요. 풀이 자라면서 마신 빗물을 함께 먹습니다.


  사진은 이야기를 찍습니다. 사진은 우리가 저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찍습니다. 사진은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웃고 노래하면서 저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찍습니다. 날마다 어떤 밥을 손수 차려서 누구와 즐기는지 떠올려요. 날마다 어떤 밥을 어느 곳에서 얻어 누구와 나누려는지 그려요. 이렇게 하면, 내 사진은 날마다 싱그러이 빛나면서 구수한 삶내음을 넉넉히 담을 수 있습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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