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틀 만에 읍내마실
곁님이 열이틀 만에 읍내마실을 함께한다. 셋째 아이가 두 달 동안 곁님 몸에서 살다가 떠난 지 열이틀이 흘렀다. 이제 조금 걸어서 다닐 만하다 싶어 읍내에 살짝 다녀온다. 지난 열이틀 동안 눈코 뜰 사이 없이 몹시 바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니, 바삐 이것저것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차분하게 생각을 다스릴 겨를을 내지 못했다. 마침 읍내마실을 하던 날이 장날이라, 군내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곁님과 두 아이는 자리에 앉고 나는 가방과 짐을 지키면서 선다. 모처럼 아이들이 내 곁에 없으니 홀가분한 몸이 되고, 홀가분한 몸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셋째 아이가 스치고 지나간 나날을 되새긴다.
셋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우리한테 찾아왔을까. 셋째는 어떤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또 어떤 노래를 듣고 싶어서 우리한테 찾아왔을까.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우리 집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 더듬는다. 두 아이는 모두 사랑이고 기쁨이다. 사랑과 기쁨이 어우러져 언제나 웃음이고 노래이다. 셋째 아이도 틀림없이 사랑이고 기쁨일 테지. 사랑과 기쁨이 어우러져 웃음이요 노래일 테지.
셋째 아이를 뒤꼍 무화과나무 둘레에 묻고 난 뒤, 어쩐지 자꾸 그쪽에 발걸음을 한다. 무화과나무 둘레에서 돋는 가을풀을 날마다 뜯는다. 셋째 아이를 묻은 자리 옆에 탱자씨를 심기도 했는데, 이 아이가 탱자나무에 숨결을 담아서 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 집 뒤꼍 울타리를 따라 무화과나무와 탱자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덮으면 얼마나 이쁠까 하고 헤아려 본다.
아침 낮 저녁으로 뒤꼍에 올라 이웃걷기를 한다. 찬찬히 뒤꼍을 거닐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셋째를 묻고 첫째랑 둘째랑 곁님이랑 지내는 이 보금자리를 푸르게 가꾸는 길을 생각한다. 한 해가 저무는 십일월에 내 삶을 새로운 생각으로 짓는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